카카오 화재 교훈에도 국정자원서 또
소는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말이 있다. ‘시기에 늦어 기회를 놓쳤음을 안타까워하는 탄식’이라는 뜻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언제나 어디서나 사고가 나면 항시 만시지탄이다. 잘 준비돼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뒤늦은 후회를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 화재를 보면서 든 첫 생각은 역시나 만시지탄이었다. 불과 3년 전이었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SK C&C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면서 카카오 데이터센터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적이 있다.

지난 2022년 가을, 카카오 서비스가 한순간에 멈췄다. 카카오톡, 카카오페이, 카카오 T 등 국민 생활과 맞닿은 서비스가 멈추자 일상도 함께 흔들렸다. 그때 우리는 하나의 민간기업 서비스 장애가 사실상 국가적 재난으로 번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정부도 ‘통신 재난에 준하는 사고’라며 점검을 지시했지만, 선언은 곧 흐려졌다.

3년이 지난 지금, 유사한 장면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국정자원 화재다. 대전 유성 전산실에서 불이 나며 정부 행정시스템 647개가 중단됐다. 주민등록, 세금, 복지, 민원 서비스까지 모두 타격을 입었다. 카카오 때는 민간 불편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국가 전체가 흔들렸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발화 지점은 UPS(무정전전원장치) 배터리실이었다. 노후 배터리 관리 부실, 열폭주 현상은 민간과 공공을 가리지 않았다. 복구가 늦은 이유도 같다. 이중화와 재해복구 체계가 허술했다. 센터 하나가 멈추면 다른 곳으로 자동 전환되지 못했고, 수동 복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역사 속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다. 세종실록에는 경복궁 화재 뒤 전각을 서둘러 다시 지으면서도, 방화벽과 소방체계를 강화하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종실록에는 창덕궁 화재 후 목재 관리 부실이 지적되며, 목재 보관 장소를 분산하라는 지시가 나온다. 선조실록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란으로 실록 보관처가 불타자, 춘추관 대신 사고(史庫)를 여러 지역에 두는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랬던 선조의 지혜를 하나도 계승하지 않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을 찾을 수 없다.

두 사고에 차이는 있다. 그럼에도 국민은 묻는다. “왜 3년 전의 교훈이 제도로 이어지지 못했는가.”

이제는 분명히 해야 한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전산실이 아니다. 도로, 전력망처럼 국가 기간인프라다. 그럼에도 우리 제도는 여전히 느슨하다. 배터리 교체주기는 권고에 머물고, 소방설비는 일반화재 기준에 맞춰져 있다. 이중화는 기업이나 기관의 ‘선택사항’일 뿐이다. 그러니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일정규모 이상 데이터센터는 ‘중요 정보통신시설’로 지정해 안전의무를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 둘째, 권역별 이중화센터를 두고 자동전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모의훈련과 외부점검을 정례화해 실제 작동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민간도 예외일 수 없다.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를 운영하는 이상, 같은 안전기준을 따라야 한다.

왕조실록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교훈은 단순하다. 사고는 막을 수 없더라도,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 때 놓친 교훈을 국정자원 화재로 또다시 확인했다. 더 늦기 전에 제도와 투자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비록 소는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정성인 편집부 부국장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