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 생각한줌> 길 위에 펼쳐진 아이들의 교통기관 놀이

종이로 만든 기차 타고 노는 아이들
멈추고 달리며 조절·절제 방법 배워

평범한 아이 일상 속 ‘놀이’ 더하면
규칙·공존 깨닫고 문제 해결법 찾아

아이들의 기차놀이. /박영희
아이들의 기차놀이. /박영희

길 위에 선다. 아니 마음이 먼저 길을 걷는다. 길에는 사연이 포개진 오랜 친구도 있다. 기억이 길을 만들면 스쳐 간 인연이 손짓한다. 길을 걸을 때는 가슴에 와 닿는 바람만 있어도 그냥 좋더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길은 마음 벽부터 허물어진다. 가을에 걷는 길은 혼자 걷는 길도 좋고 당신이 동행해주면 기쁨이 몇 배는 될 것이다. 길에는 책에 없는 것, 옳고 그름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아도 되는 내면이라는 샘물이 솟고 영감이 꿈틀거린다. 이는 ‘초심’의 영역을 넓히는 ‘양심’이다. 그러니 우리가 걷는 길은 맑고 투명한 길이다.

그을린 웃음이 내려놓은 자리에 푸름이 앉았다. 햇살은 투명하고 흘러내리는 빛은 살랑인다. 바람은 등을 살며시 떠밀며 어디로든 가보자 속삭인다. 아이들의 눈빛은 호기심을 짊어진 층간을 오르는 사다리를 금세 뚝딱 만든다. 그런 다음 난간을 만들고 손으로 조종간을 잡는다. 발끝을 모아 구름 비행기가 되어 날아오른다. 햇살과 구름 사이를 해 집은 아이들은 푸른 창공을 노래하는 연주자가 된다. 비행기가 남기고 간 하얀 선에 올라탄 아이들은 우주로 여행을 떠난다. 종이 비행기 하나가 맑은 마음을 붙들고 끝없는 창공으로 솟아오른다. 아이들의 웃음은 구름 위를 달리고 있다. 가을은 그렇게 아이들의 발걸음을 놀이의 세계로 초대한다. 상상이 깊어지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놀았던 유년처럼 아이들은 길 나서면 바람도 줍고 나무도 줍고 살짝 서운했던 친구도 환하게 줍는다.

공원에서 자연과 함께 노는 아이들. /박영희
공원에서 자연과 함께 노는 아이들. /박영희

종이 상자 하나가 금세 자동차가 된다. 운전석과 뒷좌석을 장착하고 번호판을 달고 문고리를 만들어 열어주니, 아이들은 차례차례 승객이 되어 앉는다. “부릉부릉~ 출발합니다!”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교실 바닥을 도로로 바꾸어 놓는다. 다음날 종이 자동차를 연결하니 단박에 지하철 놀이가 시작되었다. “승객 여러분!!” 잠시 후면 장유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시는 문은 왼쪽입니다. “아~ 장유역! 장유역에 도착했습니다. 안전하게 하차해주시고 안녕히 가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친구의 손을 잡고 아쉬움을 남긴다. “칙칙폭폭~!” 종이 상자를 붙잡은 아이들이 기차가 되어 달린다. 놀이는 찰나를 넘나들면서 이어진다. 곧 “부릉부릉~!” 어느새 기차는 자동차로 변신한다. 순서를 기다려 차례로 올라타고 함께 흔들거리며 까르르 웃음기를 발동한다. 종이 상자는 아이들에게 도로이면서 철로가 된다. 감정을 풀고 상상을 띄우고 놀이로 여행을 나선다.

그뿐인가. 박정선 작가의 <동글동글 바퀴> 그림책을 본 아이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숨어 있어도 힘을 발휘하는 마법 같은 바퀴의 원리를 발견하면서 궁금증을 만든다. 어디에 바퀴를 달아줄 것인가. 금세 궁금증을 일으키는 물건에 손길이 간다. 경쾌한 리듬을 타면서 종이컵에 사람을 그리고 바퀴를 끼우자 “우와! 신기하게 진짜 움직이네!” 호기심이 번지고 눈이 반짝인다. 입이라는 동력장치로 ‘후~후’ 불어서 바퀴를 굴린다. 이렇게도 바퀴가 잘도 굴러가는구나. 작은 교실이 경주장이 되고 입으로 일으킨 한 줄기 바람은 과학 원리로 탄생한다. 인형 발에도 바퀴를 달아주면서 “이제 달릴 수 있겠다.”라고 설명해 주니까, 스케이트 선수가 된 것처럼 큰 벽돌에 블록 바퀴를 만들어 끼우는 지혜를 발휘하는 기발한 생각을 바로 실천하고 있다. 전지를 부착한 로봇을 만들어 조종한다. 종이 비행기의 날개에 쓱싹쓱싹 색연필로 그려주니, 하얀 벽 사이를 스쳐 날아오른다. 장난기를 발동한 아이들이 웃고 함성을 지른다. 손끝에서 튀어나간 작은 종이는 아이들의 상상을 싣고 끝없는 창공을 향해 솟구친다. “내 바뀌는 꽃 모양이야!”, “나는 별 모양으로 할래!” 놀이가 무르익는다. 목소리는 점점 퍼질러진다. 도화지 위에 핀 꽃 바퀴, 별 바퀴는 아이들의 세계를 굴러가게 하는 창조적 동력이다. 생각하는 아이는 상상을 키우고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근력이 만들어진다.

종이상자로 만든 기차를 탄 아이들. /박영희
종이상자로 만든 기차를 탄 아이들. /박영희

강당에서는 신호등 색깔이 아이들의 몸을 멈추게 하고 걷게 한다. “초록 불~ 출발!”, “빨간 불, 멈춰!” 규칙은 곧 진지한 놀이로 바뀐다. 아이들의 일상도 ‘놀이’를 가미하면 흥미가 따라오고 진중하게 접근한다. 굴착기에 올라타 커다란 타이어 튜브를 몸에 두른 채 달리면서 차오른 호흡을 고르기도 한다. 에어바운스 자동차 위에서는 “부릉부릉~” 합창 소리로 울려 퍼진다. 함께 웃고 달리면서 보내는 동안은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학습한다.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도 단단해진다. 멈추고 달리기를 반복하면서 자기 절제와 조절을 배우고 사회성을 키운다.

자신만의 교통수단을 골라 색종이를 붙이고 손바닥은 알록달록 물감을 묻혀 찍은 단풍잎으로 장식한다.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리며 움직임의 원리를 탐구하고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블록으로 만든 기차와 버스를 복도에 나란히 세우고 “우리가 운전한 자동차로 어디로 갈까?” 손가락이 가리킨 길을 따라 움직이고 궁금증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종이컵으로 만든 자동차로 노는 아이들. /박영희
종이컵으로 만든 자동차로 노는 아이들. /박영희

아이들의 또 다른 교실은 가을 숲이다. “여기 구멍 있어요! 뭐가 살았나 봐요!” 도토리를 손에 든 아이가 눈을 크게 뜨며 외친다. “진짜야, 안에 있어, 움직여!” 친구들이 고개를 바짝 들이밀자, 도토리 속 작은 거위벌레가 꿈틀거린다. 그 순간 아이들의 입에서 “우와 아아~” 감탄사가 연달아 터져 나온다. 숲은 모험이 가득한 경이로움이 사방에 널려 있다. 작은 생명과 마주하는 공간마다 자연이 스승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파라슈트 위에다 곤충들을 놓고 “우리랑 놀고 싶은가 봐!”, “같이 타고 싶나 봐!” 숲이 선물한 생명의 놀이터는 자연학습장 역할을 한다. 파라슈트 위에 앉아 곤충을 바라보는 동안 숲은 교통기관 역할을 맡아 신비로 채워진 세계로 데려간다.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규칙을 배우고 공존을 익히며 문제 해결 능력을 확장한다. 작은 바람으로 자동차를 굴리며 움직임의 원리를 깨닫는다.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리며 하늘을 입체화시키는 공학을 상상한다. 블록을 하나하나 조립하며 구조와 균형을 탐구한다. “자동차가 바다를 건너면 어떨까?”, “비행기가 우주까지 간다면 어떨까?” 놀이가 흥미로 변신하면 질문하는 아이가 된다. 마음속에는 생각 씨앗 한 톨이 뿌리를 내린다. 생각 나무로 자라고 숲을 이룬다. 아이들 놀이 숲에 햇살이 들어앉는다.

/박영희 국공립장유어린이집 원장

☞ 필자는… 아이, 교사, 부모의 세계를 잇고 유보통합을 선도하는 ‘영유아학교 시범기관’ 국공립어린이집의 원장이자, 교육학 박사입니다. 어려움과 관계의 갈등을 함께 마주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성장과 배움의 기쁨을 나누는 전문상담사입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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