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극우 집회에 꼭 등장하는 물건이 있다. 집회 상징물인 태극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성조기(the stars and stripes)’다. 한편으론 괴기스럽고 한편으론 부끄러운데, 성조기와 미국을 숭배하는 집회 당사자들은 조금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이들은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이래로 사실상 한국을 ‘재조산하(再造山下·나라를 다시 만들었다는 뜻)’했다고 믿는다. 작가 박완서는 여기다 미국의 자선(식량 원조)이 식민지적 심리를 강화시켰고,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충성심을 확고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사대적인 대미 정서는 지금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세대 전체가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는 정신적으로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파시즘적 대안을 갈구하는 과정에서 패권국인 미국을 떠받드는 ‘기현상’이 나타난다고 봐야할 것 같다.

특히 그 밑바탕에 ‘강력한 외세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의존’이 밈 형태로 깔려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가 일본에 들렀다 경호 경관에게 피습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대국 코털을 건드리다니?” 공포가 전국을 휩쓸면서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발령되고, 신사를 비롯한 전 종교시설이 쾌유를 비는 기도에 돌입했다.

범인인 쓰다 산조의 고향 일대에서는 ‘쓰다’와 ‘산조’를 더는 이름으로 쓰지 않았고, 마침내 사죄를 외치며 자살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이지만, 현재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외세를 떠받드는 태도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극우 집회 참가자들은 트럼프가 어떤 짓을 하건 ‘묻지마 찬양’으로 그를 숭앙하고, 만사를 심판할 최종 종결자로 신이 아닌 그를 지목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보수언론을 비롯한 한국 기득권이야말로 원조 종미(從美) 세력이 아니었던가?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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