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던 전 국무총리 한덕수 씨. 특검이 계엄 과정을 다시 살펴보니 문건을 놓고 계엄 주역들과 머리를 맞댔는가 하면, 계엄에 합법성을 부여하고자 적극적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전임 정부에서도 총리를 지내며 고위직을 오래 역임한 분이 왜 민주주의를 짓밟는 일에 이렇게나 앞장섰을까?"
답은 자명하다. 한국 근현대사를 보고 겪으며 '기회주의적 처신'이 생존과 영화를 보장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계엄을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덕수 같은 인간은 지금 우리 근처에도 우글거린다.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합리화하는 데 익숙한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원조 선배'로 모시는 이가 있다. 중국 오대(五代) 시절을 풍미했던 재상 풍도(馮道)다.
<자치통감> 저자인 사마광은 재상으로서 다섯 왕조와 여덟 성(姓) 황제를 거리낌 없이 섬긴 풍도를 절개와 염치가 없다고 크게 질타했으며, 이런 시각은 후대 유자(儒者)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반면 명나라 이탁오 선생은 오대라는 전란기에 권력의 향배에는 아랑곳없이 백성들을 살리려고 전심전력한 풍도를 높이 평가한다.
바로 "절개도 염치도 없이 권력에 몸을 굽신거렸지만, 그렇게 처신한 진짜 이유는 만백성을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 분석이 기회주의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방패막이 복음'이 된 것이다.
매국노 이완용은 실제로 3·1 독립운동을 "거짓 선동"이라고 혹평하면서, "나를 매국노라고 하는데, 내가 바른말을 하는 데도 너희가 안 듣는 건 너희가 무지한 때문"이라며 자신을 우국지사로 포장했다.
계엄 실패로 곤경(?)에 빠진 기회주의자들. 이제 풍도를 들먹이며 이렇게 말하리라. "그때는 그것이 혼란을 방지할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개소리다.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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