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 작가 가오양이 청나라 말기 거상(巨商) 호설암의 생애를 그린 소설 <호설암>에는 뇌물 전달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대목이 나온다.

<호설암>에 따르면 청대 말기 베이징에서 고관대작들에게 뇌물을 주고자 하는 이는 골동품 전문 골목에서 먼저 자문을 받는다. 즉, 어느 고관대작에게 어느 정도의 뇌물을 쓸 것인지를 설명하면, 골동품점 주인은 전문가답게 어느 서화(書畫 )를 선물로 해야 할지 알려준다.

물건값을 내면 골동품점 주인은 해당 고관대작의 집으로 가서 그 집에 걸려있는 서화를 구입한 후, 이를 뇌물을 주려는 사람에게 넘긴다. 뇌물 공여자가 이 서화를 다시 그 고관에게 선물하면, 돈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뇌물 전달이 멋지게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이뤄진 모든 행위는 합법적이며, 서화 가격의 모호한 특성이 안전을 보장한다. 골동품점 주인 역시 입을 꾹 닫고 관례에 따른 수수료만 받는다.

'유교적 체면과 검은 뒷거래'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스토리로, 가오양은 실제로 존재했던 19세기 청대 습속을 글에 담았다.

'뇌물 백태(百態)'중에서도 첫 손꼽히는 이 이야기는 그 수법의 신묘함도 놀랍지만, 자그마한 빈틈도 놓치지 않는 뇌물의 악마성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일깨운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게 통일교 자금이 여러 차례 전달됐다는 보도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앞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집에서는 5만 원권 현금다발 가방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두 사람이 가진 위치와 영향력을 겨냥한 전형적인 '파고들기'가 틀림없다. 그런데 보도에서 드러난 구체적인 전달 경로는 '큰 절 후 가방 수령'으로 매우 투박하거나, 어쩐 일인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바쁘디 바쁜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고관대작들에게 <호설암> 스토리와 같은 운치(?)를 기대한다면 악취미일까?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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