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대부분 지역서 농경지 침수 등 큰 피해
작물은 물론 하우스 등 농업시설 파괴돼 막막
경제적 손실·복구 문제 탓에 내년 준비도 걱정
"기후 위기 탓에 농사 짓는 일이 도박 같다"
이번 폭우는 인명 피해는 물론 주택 침수 등으로 큰 생채기를 남겼다. 그러나 피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농민들 생계 터전인 논·밭·시설하우스와 가축 피해도 적지 않았다.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곳은 산청군이며, 합천군 등 다른 지자체 피해도 적지 않다. 극한 폭우에 침수됐던 농경지 물은 대부분 빠졌지만 그 후폭풍은 여전하다.
합천군 율곡면 내천마을 일대는 19일 오후 황강 둑이 붕괴하면서 마을 앞 들판이 모두 물에 잠겼다. 다행히 주택 침수는 적었지만 마을로 오가는 황강옥전로가 잠겨 마을이 고립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21일 오전 찾은 이곳 들판은 침수됐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이곳 마을은 벼농사를 비롯해 콩·연근·딸기 농사를 주로 짓는다. 완전히 물에 잠겼던 콩은 그대로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연근과 벼는 아직은 푸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조만간 시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농민들은 우려했다.
시설하우스 피해도 크다. 이곳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청년농부 이경식(32) 씨는 지난해 새로 지은 하우스 5동이 완전히 침수됐고, 애써 키웠던 딸기 모종도 다 떠내려갔다.
그는 "19일 아침에 비가 너무 와서 하우스 정비를 하고 있었는데 오후 1시 30분께 둑이 터졌다"라며 "아버지가 찾아와서 피할 수 있었다. 도망치면서 보니 물이 순식간에 들판을 덮쳤다. 물이 2m 높이까지 들어찼는데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지난해 4억 원 넘게 들여 지은 하우스 자동화 설비가 망가져 철거하고 다시 설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우스 골조와 비닐은 물론 최첨단 시설인 농업용 정수기, 자동 양액기, 제어 패널과 컴퓨터 시스템, 자동 개폐기, 무인 방제기 등이 모두 쓸모없게 됐다.
그는 "빚을 내고 많은 투자를 해서 시작했다. 첫해 농사에 성공했다고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돈이 없어 내년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모종도 다 떠내려가고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막막해서 밤에 잠이 안 온다.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소연 했다.
인근에서 콩과 양상추를 키우는 진옥조(74) 씨도 도로에 앉아 망연자실 들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벼가 잠겨 벼농사도 문제지만 콩은 흙탕물이 덮여 모두 죽을 것이다"라며 "가을에 양배추를 심을 하우스도 물이 들어차면서 곳곳이 휘고 변형돼 복구를 해야 하는데 돈도 그렇고 인력도 그렇고 난감하다"고 말했다.
시설하우스 농사를 많이 하는 함안군에서도 수박·멜론·토마토 하우스 60여 동이 침수됐다. 특히 대산면 들판 일대 하우스가 큰 피해를 봤다.
대산면 구혜마을 들판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김수태 씨는 지난 19일 하우스 3동이 침수되면서 수박 1500개가량이 피해를 봤다. 21일 찾은 하우스에 물은 거의 다 빠졌지만 출하를 앞둔 실한 수박들은 그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또 하우스 안은 수박 썩는 냄새와 그 냄새를 맡고 몰려온 파리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김 씨는 "주말이 지나면 출하할 수박이었는데 며칠을 못 참고 모두 침수됐다. 올해 수박은 다 실하고 당도가 좋았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 위기 탓에 농사짓는 일이 갈수록 힘들다. 일조량이 부족해 망치고, 너무 고온이라 망치고, 물난리에 망치고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지 갑갑하다"라며 "과학과 기술과 실력으로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맡겨야 하니 농사가 도박 같다"고 걱정을 쏟아냈다.
/유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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