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한반도 전역을 짓누르고 있다.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는 서민들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예상대로 올해 더위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울 것 같다.

기후 변화가 역사 전개의 동인(動因)이라는 건 이제 정설로 통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직접적인 인과를 확인할 수 있는 과학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단, 재이(災異·재앙이 되는 괴이한 일)를 하늘이 내리는 경고로 해석했던 옛 사람들은,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중국 <한서(漢書)>를 보면 한나라 원제 시절 승상(재상, 백관의 우두머리)으로 있던 우정국은 어느 해 책임을 지고 8년째 재직 중이던 그 자리를 물러난다. 그해 봄이 되어서도 서리가 내리고 여름에도 추우며 햇볕이 따뜻하지 않은 이상기후가 나타나자, 황제가 "대신들의 정치에 잘못이 있지 않느냐"며 그를 질책했기 때문이다.

선제 시절 승상 병길은 외출 중에 사람들이 난투를 벌여 죽거나 다친 현장은 모른 체 지나치면서도, 길 가던 소가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는 것을 보곤 즉시 그 원인을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사안의 경중(輕重)을 가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의아해하는 부하에게 병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의 난투는 치안부서가 단속할 몫이다. 그런데 초봄인데도 소가 헐떡거리는 것은 많이 걸었거나, 더위를 먹은 탓이다. 더위 때문이라면 이는 음양의 조화가 깨어진 것이니 내가 근심스럽게 챙겨야 할 사안이다."

언뜻 보면 둘 다 불합리한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 이상기후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둬야 하고, 또 위정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었다.

정확한 원인은 몰랐지만, 기후 변화가 몰고 올 파장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합리적이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연일 경보음을 울려대는 올여름이 진짜 걱정이다.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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