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 생각 한 줌> 놀이로 아이의 뇌를 깨우다
초교 입학 전부터 경쟁 압박감
'4세ㆍ7세 고시'신조어 등장해
'다름' 원리로 성장하는 아이 뇌
욕구 의사 반영한 양육 필요해
흙 만지고 놀면서 몸ㆍ마음 활짝
규칙 조율 협력 속 관계 확장해
끼익. 삐걱삐걱. 용쓰는 아이들이 펌프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잡고 힘껏 누른다. 마치 밤하늘 예열로 데워지는 착한 별처럼 물을 받기 위해 '꾸르륵', '꾸르륵' 소리를 만든다.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면서 갸우뚱거리는 아이에게 물 한 바가지 부어 주었다. 시동을 건 펌프가 일순간 생기가 돌면서 꿀렁거린다. 아이들의 눈망울은 반짝이고 손놀림이 빨라진다. 물방울이 솟아오르자 "우~와 우~와" 물벼락 맞겠다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쑤우욱, 쏴아악" 땅속 깊은 곳에서 물줄기가 솟구친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펌프질을 하려고 달려들고 손 내밀고 키득거린다. 아이들 세상은 놀이가 학습이라는 걸 아이들이 먼저 알아차린다. 체험분원 정원은 때아닌 물 축포로 초여름을 연다.
아이들은 억제된 호기심이 발동하면 하늘도 뚫을 기세로 놀이라는 먹잇감을 찾아 달려든다. 오늘은 펌프질 물놀이다. 대나무 통을 이리저리 연결해서 물길을 만든다. 물의 흐름에 따라 기울기를 맞추고 방향을 조절한다. 대나무 배를 물 위에 띄우고 상상의 세계로 떠난다. 물을 가득 채운 물총으로 색색의 꽃을 향해 먹이를 주고 말을 건넨다. "목말랐지?" 어루만지는 말로 사랑을 보탠다. 그 말에 감격했는지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대나무 통에 물을 담아 물 그림을 그리면서 물놀이에 흠뻑 젖어든다.
놀이가 점점 익어가면 아이들의 눈빛은 단순한 재미를 넘는다. 즐거운 감정을 느낄 때 아이의 뇌는 왕성한 활동을 한다고 학계에 소개되고 있다.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이도록 두뇌의 세포가 설계되고 인지되고 학습된다. 물흐름 완급을 조절하고 실험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차이'를 가려내는 고도의 판단력을 키워간다. 이때 뉴런(신경세포)은 시냅스 연결망으로 점점 촘촘하게 두꺼워져 전두엽의 기능이 향상된다.
아이를 풀밭에 풀어놓으면 놀이 선수가 되고 책 읽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라면 사유의 전 단계인 '생각'에 잠긴다. "재미있겠다." "나도 하고 싶어요." 이는 감정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동기를 일으키는 인정 욕구의 초보 단계다. 아이가 손으로 물을 만지고, 눈으로 물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감각이 통합된 균형점을 찾는다. 펌프에서 물이 나오는 원리를 직접 경험하면서 과학적 원리 이전에 '스스로 해냈다'라는 성취감으로 자기 주도성을 북돋운다. "같이 해볼까." "내가 도와줄게." 친구와 함께 물길을 만들고 베인 물을 주는 과정에서 아이는 감수성과 공존의 의미를 배워간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놀이하는 아이의 초조감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놀이 시간보다 조기교육과 사교육 시장에 아이를 몰아넣지는 않는가. 명품 신발과 옷을 걸친 아이가 공동체를 끌어당기는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가. 그뿐 아니다. 필자가 어린이집에서 진행한 부모교육 '뇌 발달 들여다보기 ? 4세 고시, 7세 고시' 중 학부모들은 "한 명의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유아 교육 기관을 선택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저도 좋은 대학을 가라고 부모에게 공부를 강요받았고, 제 자녀도 그런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부모의 불안이 가장 큽니다."라고 현실적 접근성이 밀착되는 현장에서 직접 털어놓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교육부는 통계청에 의뢰해 처음으로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학부모의 57.3%가 사교육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학벌 중심 사회의 불안 심리 구조를 이용한 자본 논리가 복합적으로 형성된 결과물이다. 특히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신조어가 회자될 만큼,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험과 평가라는 경쟁 압박 속에 놓여 있다. 영·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조기교육과 사교육의 무게는, 아이들의 자율성과 자기 주도성을 침해한다는 건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피부로 느낀다.
요즘 아이 부모는 양육 문제의 핵심인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눈에 불을 켜지만 실은 조마조마하다. 미래학자들은 '30년 주기를 기준점에 놓고 진단하는 미래는 삶의 질과 가치관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부모는 그 중심에 놓인 자녀의 중추신경이 집합한 '뇌' 발달에 관심을 배양시켜야 한다. 아이의 뇌는 "빠름'이 아니라 '다름'의 원리로 성장한다. 어떤 아이는 자극에 즉각 반응하고, 또 어떤 아이는 생각을 거쳐 행동하거나 특정 흥미에만 반응하며 뇌를 활성화하기도 한다. '다름'이 존중받는 사회가 천지개벽처럼 밀려와 뿌리를 내릴 것이다.
아이의 고유성인 '다름'의 힘찬 물줄기가 '뇌'의 성장을 추동한다. 그런 뇌는 무한한 잠재력과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밀고당기고 늘리고 좁히면서 산소를, 인지능력과 감수성을 키울 것이다. 무엇보다 부모의 양육이 아이의 뇌를 자극하고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이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라는 말이 있다.
작은 손으로 콩콩, 망치질로 못을 겨누고 조그마한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이는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꾹 다문 채 조심스럽게 돌린다. 지붕을 만들고 텐트를 세우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할수록, 아이의 눈썹은 좁혀지고 입술은 굳어진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별을 손으로 따고 나무 위에 생각의 집을 짓는다. 목공놀이는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실행 기능 훈련이다. '알고 싶다'라는 탐구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뇌의 본능을 단련시키는 경험이다. 다양한 경험은 뇌 기능의 발달 촉진제이다.
흙 놀이터 한쪽에서 아이들이 노란 중장비 장난감을 밀고 당기며 땅을 다지고 있다. "여기는 길, 여긴 주차장이야. 지금 공사 중이에요!" 진지한 눈빛과 힘이 들어간 어깨로 흙을 퍼 나르며 몸도 마음도 활짝 펴나간다. 흙은 아이들의 감정 매개체이다. 아이들은 바삐 중장비를 움직여 텃밭을 만들고 모래 속에 채소와 꽃을 심고 울타리를 세워 정원을 가꾼다. "이건 내 꽃", "응, 나는 당근을 심을게", "우리 같이하자" 서로 역할을 나누고 감정을 주고받는다. 규칙을 조율하고 협력하는 사회성을 배우고 관계를 확장해 나가고 '어울리고 싶다'라는 뇌의 본능을 단련시킨다.
'김해체험분원'에서 아이들은 각자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 간다. 작두펌프를 누르는 손, 물길을 만드는 눈, 물총을 들고 꽃님에게 말을 거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이 모든 순간에 뇌는 자라고 깨어나는 자연스러운 성장통을 겪는다. 아이의 뇌는 호기심과 탐험의 끝없는 여정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볼까." "어떻게 될까?" "다시 해보자, 더 재미있지 않을까?"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는 어른은 그 존재만으로도 아이의 뇌는 충분히 안정을 취하면서 자란다. 마중물은 단 한 바가지면 충분하다.
/박영희 국공립장유어린이집 원장
☞ 필자는… 아이, 교사, 부모의 세계를 잇고 유보통합을 선도하는 '영유아학교 시범기관' 국공립어린이집의 원장이자, 교육학 박사입니다. 어려움과 관계의 갈등을 함께 마주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성장과 배움의 기쁨을 나누는 전문상담사입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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