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24일 오전 11시 마산 애국노인회 회원 80여 명이 당시 영창인쇄소 앞 거리에 모였다. 지금 3.15의거기념탑 근처다. 이들이 치켜든 펼침막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노(老) 대통령은 요번 기회에 민주 정치를 바로잡자/ 책임지고 물러가라 갈아치울 때는 왔다/ 행방불명자 색출하라 체포 학생 석방하라.' 이렇게 마산 애국 할배 시위대는 대통령 퇴진과 정권 교체를 요구했다.

애국 할배 시위대는 영창인쇄소에서 출발해 북마산파출소 앞을 경유했다. 오후 1시 40분 포교당에서 자진 해산했다. 시위대가 무학국민학교 근처 향원다방 앞에 도착했을 땐 인근 대로와 철로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시내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마산 할배들이 주도한 이 시위는 3만~5만 명까지 늘어났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경찰은 노인들까지 강압적으로 해산할 수 없었기에 사복 경찰을 투입해 술을 권하며 회유했지만, 할배들에겐 안 통했다.

원래 마산 애국노인회는 우익 보수 단체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3.15의거 관련해 이들의 활동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이들을 1946년 1월 결성된 우익 반탁 단체 우국노인회로 짐작했다. 이창현 신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1954년 4월 11일에 조직된 단체로 봤다. 이 교수는 이 단체가 친목 도모·고령층 교육·유교적 덕목 장려 등을 목표로 설립된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지역 효자·효부·열녀 표창 기록이나 한 회원이 지은 이승만 대통령 탄생 80주년 축시가 확인된다. 이를 통해 이 단체는 3.15 부정 선거 전까지는 이승만에게 우호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들은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고 이를 항의하던 학생들 피해가 끊이지 않자, 거리로 나섰다.

이 교수는 "마산 애국노인회는 '이승만'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수준에서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국제신보>에 실린 할배들의 발언도 눈에 띈다. "젊은 아이들이 죽었는데 우리들이 앉아서 있을 수 있느냐."

마산 애국 할배들에게 진정한 애국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지금 마산 애국 할배들의 후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최근 3.15의거 관련 단체 주요 임원 중 내란을 옹호하고, 대통령 파면 결정을 부당하다 여기는 이들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만큼은 민주 성지 마산의 이름에 걸맞는 애국 할배들의 부활을 보고 싶다.

/백솔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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