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이 술술] 〈고지도로 보는 창원의 옛 모습〉
'조선왕국도(1735)', '한국 또는 조센(1883)' 등
고지도 43점으로 창원 지역 역사 살펴

고지도는 지역사를 파악하는 기본 자료다. 앞선 시대 사람들이 우리 지역 지리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가 발행한 〈고지도로 보는 창원의 옛 모습〉(2024)은 고지도 43점 속 옛 창원의 모습을 한데 모은 자료집이다. 현재 통합 창원시를 이루는 역사 권역인 창원부·진해현·웅천현·칠원현을 중심으로 1899년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를 수집했다. 자료집을 만든 박영주 전 경남대학교박물관 비상임연구원을 만나 이번 자료집의 의미를 들어봤다.

조선을 제대로 그린 최초의 서양 고지도 '조선왕국도'(1735)에 창원 지역이 표시돼 있다. /창원시정연구원(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조선을 제대로 그린 최초의 서양 고지도 '조선왕국도'(1735)에 창원 지역이 표시돼 있다. /창원시정연구원(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서양 고지도에 처음 등장한 창원 = 자료집은 5장으로 이뤄졌다. 군현지도첩·지리지 및 읍지부도·대축적전국지도·진지도 및 기타지도·해설 순이다. 군현지도첩은 전국 각 지역 지도를 한 장씩 만들어 모은 첩이다. 지리지 및 읍지부도는 지역 전반적인 상황을 기록한 저서인데, 부록으로 지역 지도가 실려있다. 대축적전국지도는 전국 지리를 한 장으로 엮은 지도다. 진지도는 군사 기지를 파악하고자 만들어졌다. 특히, 이번 자료집에선 국내 고지도 외에도 해외에서 발행된 고지도 속 창원을 살펴본 게 유의미하다. 

1735년 제작된 '조선왕국도'는 조선을 일본과 중국과 구별해서 제대로 그린 최초의 서양 고지도다. 이전까지 조선은 중국 동쪽 귀퉁이 섬이나 일본 지도에 같이 그려졌다. 게다가 서양 고지도 중 처음으로 창원이 등장한다. 덕분에 창원이란 지명이 서양에 처음 알려진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지도에서 경상도는 실제와 달리 동쪽으로 더 치우쳐져 있는 모습이다. 창원은 이 지도에서 위도 34도~35도 사이, 경도 12도~13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북·서쪽에서 시작돼 남해로 흐르는 낙동강과 남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산 모습도 간략하게 표현됐다. 낙동강 하류 동쪽에 동래, 서쪽엔 김해가 있다. 김해 서쪽으로 창원을 비롯한 웅천, 칠원, 함안, 진해, 사천, 고성 등과 같은 군현 지역 이름이 적혀있다. 지도 속 바다엔 가덕과 거제 두 섬도 보인다.  

해외 고지도 '한국 또는 조센'(1883)에 마산포 지정학적 위치가 표기돼 있다. 이는 일본이 마산 일대를 장악한 역사적 흐름과 축을 같이 한다. /독일 에르푸르트대학 고타연구도서관 소장
해외 고지도 '한국 또는 조센'(1883)에 마산포 지정학적 위치가 표기돼 있다. 이는 일본이 마산 일대를 장악한 역사적 흐름과 축을 같이 한다. /독일 에르푸르트대학 고타연구도서관 소장

러일 충돌했던 마산포, 열강들이 이미 주목 = 1883년 제작된 '한국 또는 조센'는 독일어로 된 가장 오래된 지리학 저널 '피트만 지리 리포트'(1855~2004)가 발간한 한국 지도다. 일본 육군참모국이 1875년 제작한 '조선전도'를 수정하고, 독일어로 번역했다. 조선팔도 지형과 지역 위치, 군대 주둔지, 교통망 등이 상세히 나와 있다. 창원은 김해, 거제와 함께 큰 글자로 표기돼 있다. 창원 동쪽에 자여역, 해안 쪽엔 회원을 표시했다. 구산포, 제포, 가덕도 등도 파악하고 있다. 

이 지도에 그려진 마산포도 주목할 만 하다. 이는 외국인들이 당시 마산포를 주요한 항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산포는 지도가 발행된 지 15년 후인  1899년 5월 정식으로 개항된다. 마산포 개항 이후, 러시아와 일본은 마산포를 차지하고자 경쟁했다. 가포지역엔 러시아 조계 지역이, 자북동과 월영동엔 일본 조계 지역이 만들어졌다. 훗날 신마산이라 부르게 되는 지역이다.

특히 마산 조계지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세력 다툼이 치열했는데 1905년부터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결국 이 지역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로 나아갔고, 신마산 일대를 행정 중심으로 삼은 것은 물론 현 진해지역 군항 조성과 함께 이 일대 병영 건설에도 박차를 가한다. 일본인 소학교와 병원, 이사청(통감부 지방기관)과 일본제일은행출장소 등 공공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일본인 이주어촌인 지바무라(千葉村)가 가포에 들어선 것도 이때 일이다.

박영주 연구가는 "마산포에서도 일본과 러시아 두 국가 간 충돌이 있었다"며 "지도에 따르면 마산포는 1800년대부터 이미 해외에서 주목하던 요지라는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가는 이어지는 자료집에서 일제강점기 속 마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고지도를 모아 정리할 예정이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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