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간 농촌 청년 여전히 차별에 절규
지역 따라 새로운 신분·서열구조 생겨나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공단지대 변두리에 사글세 쪽방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가수 오기택이 부른 '고향무정'이었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1965년을 앞뒤로 농촌 젊은이들이 도시 공단지역으로 일확천금을 노려서가 아니라, 정직하게 돈을 벌어서 고향의 부모 형제들이 더는 배곯지도, 가진 자들에게 업신여김당하지도 않게 하겠다는 피맺힌 맹세를 다짐하면서 떠난 지 60년이 되는 2025년이다.

1970년대 들어 공단의 활기와 함께 도시로 온 농촌 젊은이들도 공장생활에 익숙해져 갈 때, 가수 나훈아는 '고향역'을 불러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을 적셔주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오기택과 나훈아가 그토록 목메게 불러 찾았던 고향 농촌은 60년이 지난 지금 어떤 모습인가? 1990년대 어느 날 가수 조용필은 '꿈'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이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을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조용필의 '꿈'에는 1965년 무렵 20대 청년이었던 한 농촌 청년이 도시 변두리를 떠돈 지 30년여 년 동안 귀향을 꿈꾸었지만, 나이 쉰 고개를 훌쩍 넘도록 여전히 춥고 험한 타향살이로 떠돌다 절규하는 이들의 집단 슬픔을 상징하고 있다.

도대체 고향이 뭐라고,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초라한 생존의 문턱에 걸터앉아서 뜨거운 눈물을 삼키는 것일까? 이 같은 상징이 허구가 아니라면 우리나라 정치와 지성의 역할은 과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배운 것이 짧고, 가진 것도 변변찮아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를 묻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는 시대를 살면서 차별받고 따돌림당하며 살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왜일까? 그러다가 슬픈 노래 부르면서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는 이 절규 앞에서 한국 정치와 시대정신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농촌은 점점 병약해지고, 인구는 수도권과 도시지역으로 집중되면서,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그들이 사는 지역이 어딘가에 따라, 새로운 신분제도·서열구조가 생겨나고 있다.

서울→서울 주변 도시→지방 대도시→지방 중심도시→읍면 소재지 농촌→깡촌이라는 서열구조가 한국인의 의식구조로 굳어져 간다. 이런 의식구조는 인구집중이 더해질수록 삶의 질은 더욱 나빠지는 것이 농촌이다. 인구 소멸에 앞서서 인간차별이 구체화하고 있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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