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어른 생각한줌] 고사리 손끝에서 봄이 몰려온다

선생님 따라 감자 심는 원아들
호기심 가득 흙 파보고 토닥여
성취감 돌봄 가치 배우는 과정
마음 들여다보고 보듬어준다면
아이들 봄꽃 담아져

토닥토닥, 토닥토닥! 흙내음이 상큼하다. 발바닥과 손끝에서, 떠도는 공기에서, 재잘대는 목청에서 자연의 감촉을 느끼는 벅찬 순간이다. 맑은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면서 흙 살을 두들긴다. 겨우내 찬 공기를 온몸으로 맞았던 텅 빈 화분은 사랑이 고팠는지 흙삽으로 마구 흔들어대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인연을 반기는 게 섭리인지라 순순히 제 몸을 내어준다.

봄은 마음에서 먼저 온다고 한다. 봄 마중 나온 아이를 햇살과 구름이 두 손 벌려 반긴다. 덩달아 흙살을 열어주고, 그 사이를 아이들이 비집고 파헤친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격언처럼 눈물겹도록 엄동을 견딘 꽃이 통통한 열매를 맺는 법이다. 3월 신학기 처음 등원한 꽃송이 같은 아이도 어린이집 몇 개월이면 도톰한 마음 양식을 챙길 줄 안다. 무엇이 기쁘고 소중하고 슬픈지를 가늠하는 생각의 힘살이 뿌리를 내린다. 

감자 심기에 나선 아이들. /박영희
감자 심기에 나선 아이들. /박영희

어떤 아이가 플라스틱 작은 화분에 담긴 빨간 제라늄을 툭 내려놓으며, 우와 선생님 붉은 꽃이 '예쁘게' 피었어요. 탄성을 지르는 게 영락없이 천사 같고 말괄량이 같다. 살살 어루만지고 흙을 덮어주고 활짝 웃는다. 작은 정원에서 자라줄 꽃이 어느새 친구가 되었고 눈인사로 속마음을 전한다. 너도나도 향기가 되고, 꽃이 되고, 햇살은 노래를 불러주고, 아이들은 팔랑팔랑 나비가 된다. 어른들은 아이가 얼마나 감성이 풍부한지 모른다. 어른들이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짜고짜 '눈물 뚝'으로 다그치면 감성이 샘솟는 눈물샘이 마르는 이치다. 

작은 구멍을 파고 감자 씨를 텃밭 상자에 한 개씩 놓은 후 흙으로 덮었다. "감자야, 잘 자라라." 인사를 하는 아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 애간장이 타는지 흙을 토닥이는 아이도 있다. 조그마한 뿔이 올라온 감자를 만지지 못하는 아이, 자기 감자 씨가 작다며 바꿔 달라는 아이, 심은 감자들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지 궁금해하는 아이는 연방 질문을 해댄다, 성에 차지 않는 아이는 땅속을 파고 또 파본다. 

감자 씨를 심는 방법과 자라는 과정을 열심히 설명하시는 할머니 선생님이 어느새 아이와 짝꿍이 되어 흐뭇한 미소를 흘린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탐구심으로 담아내려는 열정 가득한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씨감자에서 싹이 나고 주렁주렁 감자가 달리는 자연의 순환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한 학습' 놀이도 아이들의 산 경험이다. 아이에게 '사랑'이라는 물을 주면 사랑 꽃이 핀다. 거름을 주면 감자 뿌리에서 튼실한 꿈이 열린다. 어린이집 앞마당 가득 수확의 설렘이 넘실거리면 공동체가 꿈틀거린다.

아동학대 예방 연극을 본 아이들. /박영희
아동학대 예방 연극을 본 아이들. /박영희

자신의 권리 보호를 위한 안전교육이 있는 날이다. 김해시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찾아와 '소중한 어린이들을 지켜주세요.'라는 아동학대 예방인형극을 열었다. 대학생으로 구성된 '아동 인권 지킴이단'은 매년 어린이집을 방문하여 아동 인권 증진 및 아동학대 예방 사업 봉사활동을 한다. 이는 아동의 주변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학대 사례를 유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각색하여 여러 편의 인형극 공연을 한다. 주인공이 어려움이나 난관에 부딪히면 아이들은 "도망가, 싫어, 안 돼" 라면서 땡고함이나 도움을 주려고 감정이입을 한다. 주인공이 울면 아이도 함께 울어버린다. 인형극 등장인물 중 아이를 도와주는 경찰관이 인기를 도맡는다. 등장하기만 해도 아이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주인공이라도 된 듯, 크게 박수를 보낸다. 아이들은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본능적으로 착한 주인공을 따른다. 

특히 가까운 주변 인물이 부모님께 말하면 안 된다고 말할 때,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져 스스로 묻고 답하게 한다. "친구들, 부모님께 말을 해야 할까요?" 집중하던 아이들은 큰 소리로 "응. 말해. 도와달라고 해. 괜찮아. 말해도 돼"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상처는 관심이 치유한다. 관심은 아이가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저장시킨다. 

현대사회는 아이들 안전이 위태위태하다. 소극적이고 무관심이 우리 아이들 위험 지수를 키운다. 아이들은 인형극을 통해 위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영·유아기 때부터 자기 보호와 자기 결정권에 대해 인식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그보다 앞서 우리 공동체와 어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기에 필자가 부모교육과 상담 봉사를 하는 이유이다.

풍선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박영희
풍선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박영희

영·유아기의 인생을 계절로 나누어본다면 겨울에서 초봄으로 진입하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 자신의 성격. 잠재력. 가능성. 재능 등이 보인다. 비축한다. 파릇한 새싹이 돋을 무렵이면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미지의 세상을 탐험한다. 감성 물이 드는 봄은 민감하다. 겨우내 얼었던 화단에 산수유 노란 꽃봉오리가 터져 나오는 소리에도 놀랜다. 그러니 아이는 땅속부터 모든 만물과 교감하는 소우주다. 

아이들은 봄꽃을 심고 탐색하면서 자기 주도적인 성취감과 돌봄의 가치를 배운다. 흙으로 꽃을 덮어버리는 아이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눈빛만큼은 놀라울 만큼 진지하다. 예쁘게 심어주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만큼은 간절하다.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꽃자리를 찾아가 "잘 자라라"면서 응원한다. 

등·하원때마다 물을 주고 꽃의 안부를 물어보는 천진성이 아이의 본마음이다. 식물을 돌보면서 책임감을 배우고 또래와의 관계에서 마음을 열고 경계를 허물고 상대를 인정해주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한다. 감자밭을 일군 유아들은 농작물을 기르는 차원을 넘어 경제관념을 익힌다. 농부의 땀방울을 알고 소중함을 익힌다. 감자의 성장 과정을 통해 섬세하게 관찰하고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어른은 마음속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때는 거침이 없다. "이거 하고 싶어. 왜 안 돼?" "이거 할 거야. 이거 안 해. 싫어." 그들의 솔직함이 질문과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때는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런 아이는 봄이 더 아프다. 고사리 손끝이 얼어붙는다. 애정을 담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럴 때 봄꽃이 아이를 닮는다. 아이가 봄꽃을 닮을 때는 봄 햇살처럼 화사하다.

  /박영희(국공립장유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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