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해 산업화해야 한다던 정부
농사·농촌·농부의 소중함 변질되어 가

우리나라 농사가 비롯된 지는 줄잡아 4000년이 넘는다. 그 농사를 도맡아 한 것이 농투성이 즉 농부다. 그 농사는 하늘 아래 가장 큰 바탕, 농사(자)천하지대본(農事(者)天下之大本)이 되어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수 있었다. 곰네님의 아드님이신 단군왕검께서 세우신 고조선 때부터였다. 조선왕조가 왜놈 총칼로 무너지고 빼앗긴 1910년까지 참으로 오래도록 우리나라 역사의 젖줄이었고, 겨레붙이들의 목숨을 향기롭게 이어 내리게 한 하늘의 은총으로 지은 농사였다.

왜놈들한테 빼앗긴 들녘에서도 곡식들은 변함없이 자랐고, 농부들이 온몸으로 지은 곡식들은 왜놈들에게 모조리 빼앗기면서 천신만고로 살아남아, 세계사의 홍수에 떠내려가던 조국을 붙들어 해방을 보았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기나긴 세월 흙을 딛고 서서 흙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면서 한 번도 놓지 않았던 농사는 '민주주의'라는 낯선 제도 아래서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변화는 농사의 역사적 무게와 농민의 인간적 가치를 크게 약화시켰다. 한국 정부는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정치 이념으로 내걸고 민주주의만이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했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화라는 세계적 추세를 받아들이면서, 농사와 농민에 대한 오래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농산물로는 이 같은 산업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새로운 자원이란 농산물을 제외한 지구의 다른 물질들이다. 그 물질들은 땅 위나 땅속에 있는 것으로서, 농사짓는 데 쓰이는 도구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 소비재들을 만들 수 있는 것들이면서, 농촌이 아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 쓰이게 될 것이라 했다. 도시는 농촌이라는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자식이다. 그 자식이 자라면서 어머니 농촌의 모든 것을 더 빨리, 더 많이 빨아먹고 탐욕적인 몸짓으로 성장했다. 마침내는 어머니를 수탈하고, 병들게 하고, 식민지로 삼아버린 인류 역사 최고의 불효자이며 괴물이 되었다.

그렇게 등장한 새로운 소비재를 사고파는 곳을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생활 방법으로 고안해낸 국내 시장과 국제시장으로 불렀다. 그 시장은 모든 경쟁의 거점이자 패배자의 무덤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피도 눈물도 없는 치열 준엄한 수단과 방법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이익이 생기고, 이익은 커질수록 절대적인 가치가 되고, 그 가치는 인간의 전통적 가치로는 지켜낼 수 없는 정치적인 술책으로 만들어내는 힘이었다.

1960년부터 중화학공업과 경제개발 정책은 국가 최고 가치로 여겨졌다. 그때부터 농사, 농촌, 농부의 소중함이 하루가 다르게 변질되어 갔다. 이 농사와 농민에 대한 시대적 변질은 농민들이 농촌에서 가난을 참고 견디며 소박한 꿈을 꾸게 하는 오래디오랜 신앙 같은 인내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겼다. 전국 곳곳에서 공장들이 생기고, 수 십 개 공장이 공단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농사짓던 들판을 잠식해 들어갔다. 공장 일손은 농사짓던 젊고 가난한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난에 시달리던 늙은 농부들은 그들의 젊은 자식들에게 그 가난을 물려주기 싫다며, 젊은 자식들은 그 가난을 물려받기 싫다며 고향을 떠났다. 공장이 있는 도시 변두리의 낯설고 애달픈 천막촌의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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