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 생각 한 줌] 장꾼들의 놀이터, 장날이 서다
창가에 기대서서 호수공원을 보고 있다. 붉은 불빛이 같은 간격으로 서로 비추고 있다. 구슬이 구슬을 꿰고 비춘다는 '인드라망'처럼 이 불빛이 생명공동체의 화신으로 다가온다, 서로 손을 맞잡고 마음을 나누고 공감이 스며드는 공동체는 그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시나브로 불빛을 받은 호수는 잔잔하다. 나도 조금씩 평온해진다. 내가 서 있는 교육적 토양이 아슬아슬하지만 거기서 유아교육의 희망을 걸어야 하고 미래를 담보해야 한다.
◇영유아학교 기관장 직무연수 현장 = 전국에서 모인 (가칭)영유아학교 기관장 150여 명은 2박 3일 동안 세종시에서 직무연수를 받았다. 유아교육 현장을 주도한 것은 치열한 토론이었다. 2005년 유보통합의 필요성이 대두된 이래 진척은 지리멸렬하기만 했다. 토론은 언제나 난상 토론이었고 해답은 요원해 보였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처한 현실은 지역과 규모와 정책 방향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치 지구 온난화 대처처럼 개별적 입장에 매몰되다 보니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대한민국의 선진국 도래와 합계출산율 저하는 유아를 공공재적 성격으로 규정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본격적인 유보 격차 완화와 온종일 돌봄 체계의 구축을 위한 연구가 착착 진행되었다. 작년 9월에 비로소 현장의 목소리와 지역의 특색이나 조건을 조율하면서 '유보통합' 지원 요건과 시범 기관을 검토하고 선정하면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 과정에 나타난 갑론을박의 현상은 당면한 '유보통합'의 지렛대로 활용될 것이란 확신이 생기면서 기대 반, 희망 반이 꿈틀거렸다.
처음 가는 길은 때때로 암초를 만나고 삐거덕거린다. 교육부와 도교육청의 고민이 깊어간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교육부 영유아교육지원과 이병승 과장의 '유보통합 정책 이해와 기관장의 역할'에 관한 강의를 집중해서 들었다. 가뭄에 단비처럼 유보통합을 바라보는 인식의 눈이 번쩍 뜨이면서 영유아 교육의 방향성과 앞으로 실행될 통합 절차가 그려졌다. 지난 4개월 동안 진행한 영유아학교 시범사업 실제 사례 나눔을 협의하면서 꼼꼼하게 복기를 반복했다. 더구나 필자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에서 진행한 공동육아시스템인 '부모 참여를 통한 지역사회연계'가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영유아 교육과 보육의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질적 향상을 이루었는지를 타 기관장들과 공유할 때는 뿌듯한 마음이 쑥쑥 들었다.
◇특별했던 김장과 마켓 = 행사 하루 전날, 일과가 모두 끝난 시간이지만 교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30년 이상 근무하신 조리사 선생님은 육수 만들 재료와 배추김치 담그는데 넣을 양념을 준비하는 데 한치의 여념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조밀한 요리 순서도를 만들고 연령별로 나누어 점검했다.
행사 당일은 긴장되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어제 만들어놓은 양념 때문인지 구수하고 매콤하고 달콤한 향이 스며든다. 1층과 2층 보육실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앞치마를 가방에서 꺼낸 친구들은 벌써 들뜬 마음이 들었는지 앞치마를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은 요리가 놀이다. 진지한 놀이라 눈망울이 커진다. 겨울이 오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손맛이 최고야!' 김치 담그기에 동참한다. 올해 김장 행사에 여섯 분의 조부모님이 신청하셨다. 귀염둥이 지온이 할머니는 먼 거리의 의령에 거주하면서도 매년 참석하신다. 올해는 직접 농사지은 상추를 들고 와 우리를 기쁘게 했다.
1·2세 영아는 미리 준비해놓은 보육실에서 두 분의 할머니 선생님과 함께 김치를 만든다. 절인 배추를 잘게 썰어 나누어주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조물조물하다가 어느새 콧등과 양 볼에 빨간 자국을 내고 입속으로 넣는다. 이런 꼬맹이들이 어른들 앞에 서면 웃음 전도사가 되었다.
식당에서는 요리 경험이 있는 유아들이 배추 4분의 1쪽을 각자의 쟁반에 담아 잘 치대었다. 할머니 선생님은 무,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려 발효시켜 먹는 김치를 천천히 설명해주셨다. 창원에 거주하는 서윤이 할머니는 손녀에게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아 뼈가 튼튼하게 자란다면서 손녀 사랑을 은근슬쩍 내비쳤다. 아이들은 절인 배추 포기 하나하나가 가족 사랑이고 몽클한 감동이었다.
조리실에서는 고소한 수육 삶는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와 입맛을 돋우었다. 칼칼한 김치 양념 향과 어우러지면서 어린이집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식당 한쪽에서는 할머니와 아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수육은 풍성한 국물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전통적인 한국 가정에서 볼 수 있었던 한겨울을 준비하는 풍경이라 소소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 기준에서는 이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고 생각에 잠기는 철학이 되었다.
오후 4시부터 '장블리마켓'이 열렸다. 각 가정에서 보낸 잘 쓰지 않는 물품과 장난감, 작아진 옷, 신발 등을 전시하였고, 문구와 장난감은 어린이집에서 준비하였다. 그리고 '영유아 정서 심리 지원'을 위한 '김해시가족센터'와 협약을 체결해 기증받았던 동화책과 지역 운영위원이 주신 50개가 넘는 인형과 지인에게 받은 영어책을 강당에 펼쳐놓았다. 1층 식당에서는 오늘 만든 '영양 만점 수제 김치'와 떡볶이, 어묵, 찐빵 등의 먹거리 장터로 채웠고, 마켓마다 선생님과 도우미 부모님이 상인이 되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깨에 낡은 티셔츠로 만든 장바구니를 메고 부모의 손을 잡고 입장하였다. 1층 입구부터 꽝이 없는 행운권 추첨으로 '장블리마켓'이 시작되었다. 시장인 강당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의 눈동자는 빛이 났다. 한바탕 시끌벅적한 장터가 끝났다. 상인이 되었던 선생님은 100만 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는지 수익금을 챙기느라 눈이 반짝거렸다. 어느새 100만 원이 넘자 선생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수익금을 기부할 곳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유1동행정복지센터'와 '김해시가족센터' 두 곳에 기부했다. 아이들이 직접 수익금을 기관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돕는 기쁨과 공동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장블리마켓' 활동을 통해 장기적으로 경제적 사고를 기르고, 아이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사회적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박영희(국공립장유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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