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적 특성 닮은 땅…기도는 어머니 몫
물을 제수 삼은 건 만물의 근원이란 믿음

농사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일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고 또 끝나지 않을 거룩한 일이다.

땅은 하늘과 마주보면서 하늘의 일을 그대로 내려받아 똑같이 이루어내는 기적이기도 하다. 하도 놀랍고, 기쁘고, 고맙고 그지없는 일이다 보니, 고대 중국철학사에는 <노자>의 철학에서 '하늘(천)'은 수컷이자 남성을 상징하는 '양(陽)', '땅(地)'은 암컷이자 여성을 상징하는 '음(陰)'으로 표현했다.

또한 <노자>의 철학에서는 농사를 도맡은 인간의 영역인 땅이, 우주적 영역인 하늘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농사짓는 인간의 활동이 우주 자연이라는 더 높고, 크고, 넓은 데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농사를 도맡은 인간들은 자연·우주를 운행하는 힘의 근원으로 여긴 신(神)에게 놀랍고,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기도라는 의식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 의식은 여성인 할머니와 어머니의 몫이었다. 농사가 이뤄지는 영역인 땅은 음(陰)의 공간인데, 흙속에 뿌린 곡식의 씨앗이 습도와 온도의 도움을 받아 움이 트고 새싹이 땅 바깥으로 솟아나며,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익어서 번창을 지속시키는 모든 과정을 음의 세계로 여겼다. 마치 여성이 자식을 잉태·출산·양육과 성장을 도맡은 모습과 땅의 역할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우주의 신에게 기도 의식을 올리는 여성은, 땅에서 가장 신성한 곳을 골라 제단을 차리고, 제단 위에 제수를 올려 놓고 치성을 드렸다. 그 제수로 선택한 것이 물(水)이었는데, 우리의 고대사에서 '정화수'라는 물이 그것이다. <삼국유사>에서 '곰네(웅녀)'가 신단수 밑에 제단을 차리고 자식 점지를 빌 때 올렸다는 그 정화수다. 정화수는 맑고, 깨끗한 물이다. 이와 똑같은 의식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인 구약성경에도 여러 군데 나타나 있다.

정화수는 일반적인 우물, 샘물, 개천, 강물과는 엄격하게 다른 신성구역으로 정해져 있는 '샘'에서 솟아나는 물이다. 그래서 샘터를 정하는 데서부터 정화수를 올려 놓고 기도를 올리는 정화수를 사방에 뿌려서 제의 공간을 정화하는 것은 세속의 보편적인 민속으로도 전해져 올 만큼 그 역사적 뿌리는 깊다.

우리 고대사의 어머니인 '곰네' 이후 모든 '어머니'는 우주신에게 기도하는 신앙인이었다. 국가 행사인 기우제 때 제관은 임금이나 벼슬아치 등 남자가 맡았지만 비를 부르는 것은 무당(여성)이 주재했던 것은, 음(陰)의 영역이 모성적 특성을 지녔음과 관계된 것이었다.

물은 관념적이지도 예언적 기능을 지니지도 않은 분명한 물질이다. 그런데도 종교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는 철학적 믿음이 인류사의 보편 지식으로 자리 잡아 왔기 때문이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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