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님 응답은 세상 모든 만물 향한 것
새 생명 든 여의주 오면 일제히 노래해
하늘에 계신 칠성님께 새 생명 한 점 점지해주시길 소망하는 어머니는 물 위에다 기도문을 쓰신다. 이 세상 어떤 글자도 아니고, 빛이나 소리 또는 향기나 맛으로 적은 것도 아니다.
오직 흰 그릇에 담긴 맑고 차가운 물이다. 어머니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시는 그냥 까막눈이시다.
그런데도 글자 따위로는 다할 수 없는 어머니 마음을 고스란히 다 전할 수 있는 것이 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셨다. 마음은 본디 제 스스로 마음이라 할 수가 없어서, 한 물건에 의지하여 그 안에 들어 있다는, 심불자심 인색고유심(心不自心 因色故有心)이라는 참선 수행자 마음법문을 알고 계셨다는 것일까? 마음은 글자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주임을 어찌 아셨을까?
어쩌면 세상 모든 어머니 자궁은 '우주 기억의 집'이니까, 인위적 이론과 가치관 따위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우주적 존재로서의 깨달음을 지니고 태어나셨기 때문일까?
그런데도 칠성님은 그 물 한 그릇에 녹아있는 어머니 마음을 읽으시고는 반드시 그 소망을 들어주는 응답을 하신다. 천지창조 이전이나 이후 단 한 번도 응답 안 하신 적 없다.
어머니는 오직 한 사람이 아닌 세상의 모든 어머니다. 그 어머니의 소망에 응답하심은 인간생명에 그치지 않고 생명 지닌 만물에게 응답하심이다.
어머니 자궁에 잉태되고, 자궁의 '양수(良水)' 속에서 자라고, 시간이 되어 세상에 태어나며, 나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빛, 공기, 물 그리고 먹고 마셔서 자랄 수 있는 만물의 생명을 아우른다.
칠성님이 응답하시는 방법은 '미르'에게 새 생명을 물어다 어머니 사는 땅의 가장 맑고 깊은 물속까지 실어나르게 하는 것이다. 세종 임금께서 만들어 세상에 펼친 훈민정음에 '미르·룡(龍)'이라 적어 놓았다.
그 미르를 언제부터인가 유학을 읽은 조선 지식인들이 중국 글자 龍을 중국말로 '롱(long)'을 흉내내어 '용'이라 하자, 글 모르는 사람들이 따라서 '용'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무튼, 미르는 별들이 사는 미르내(은하수)에 살지 않고, 바닷속 용궁에 살았다. 칠성님이 용궁에 기별을 넣어 미르를 하늘로 불렀다. 칠성님은 새 생명의 종자를 넣은 '여의주(如意珠)'를 미르의 입에 넣고 물도록 했다.
如意珠란 하늘의 일이 땅에서도 똑같이 번성한다는 뜻이다. 미르가 땅으로 내려올 때는 반드시 천둥 벼락과 비바람이 미르를 에워싸서, 그 어떤 마귀나 악령도 미르를 볼 수도, 다가갈 수도 없도록 지켜준다.
땅 위의 목숨 지닌 모든 것들도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그치기를 기도한다. 미르는 물고 온 여의주를 내려 놓을 정확한 자리를 거듭 확인한다.
높고 험준한 산맥의 오래된 폭포가 떨어지면서 동글고 깊게 닳아서 움푹 파인 물웅덩이 속에다 여의주를 넣어 두고는 바다로 돌아간다. 흔히 용소(龍沼)라 부르는 곳이다.
날씨가 개고 나면 산과 들은 초록 날개로 춤추고, 온갖 물줄기들은 일제히 노래한다.
새들과 나비들, 크고 작은 길짐승들도 신령스러운 공기와 햇볕과 바람을 반기면서 암수의 정감으로 다디단 정이 들고 마침내 인간의 마을에도 밤이 깃든다.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