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세상]
딥페이크 범죄 15건 형량 분석
대부분 집행유예 솜방망이 처벌
제작·유포만으로는 실형 어려워
정부 논란 확산하자 처벌강화 의지
첨단조작기술(딥페이크)을 이용한 불법 합성물 성범죄 피해가 불어나고 있다. 경찰청이 공개한 관련 범죄 적발 건수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 2024년 7월 기준 297건으로 증가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 안에 깊숙이 자리매김했던 온라인 성폭력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3년간 일어난 딥페이크 관련 사건 1심 판결문 15건을 찾아봤다.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가 나오는 등 처벌 수위는 약했다. 낮은 처벌 수위가 딥페이크 사건을 급증시킨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절반 이상 집행유예 = 경찰청은 불법 합성물 성범죄 피의자 대부분이 10대였다고 밝혔다. 10대 피의자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1년 65.4%였으나, 2022년 61.2%에서 2023년 75.8%까지 급증했다. 2024년 7월 기준으로는 73.6%를 기록했다.
이들은 여자친구, 사촌 등 지인을 피해자로 삼았다. 연예인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사례도 발견됐다. 범행은 피해자 사진을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 개인 계정에서 가져와 음란물과 합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첨단조작기술 프로그램을 설치만 한다면 손쉽게 불법 합성물을 제작할 수 있었다.
불법 합성물 성범죄 문제가 불거지면서 ‘낮은 형량’도 문제가 됐다. 대부분 집행유예 선고에 그쳤다. 딥페이크 관련 사건 판결문 15건 가운데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은 10건이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2021년 9월 6회에 걸쳐 모두 6만 원을 받고 불법 합성물을 제작해 준 피고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지난 4월 여자친구 등 지인 4명의 사진을 가져다 불법 합성물을 제작한 피고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형사처벌 전력이 없거나, 수사에 협조를 잘했다는 이유 등을 감경 요소로 판단하고 있었다.
수년간 일상적으로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이도 집행유예를 받았다. ㄱ 씨는 2020년 6월부터 2023년 8월까지 2132차례에 걸쳐 불법 합성물을 만들었다. 텔레그램 등에 불법 합성물을 올린 횟수만 해도 2027차례에 달했다. ㄱ 씨는 3년 동안 2000건이 넘는 불법 합성물을 만든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제주지방법원은 ㄱ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20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수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만든 불법 합성물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보기에도 인위적으로 합성된 것이라고 눈치챌 수 있다”라며 “영리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할 정황이 없고, 최초 수사단계부터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는 등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판시했다.
◇성폭력 범죄 혐의만 여러 개 = 불법 합성물 제작과 유포만으로는 실형이 나온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 다른 성폭력 범죄 혐의까지 추가된 사건에서야 실형으로 이어졌다.
ㄴ 씨는 2020년 7월 자신의 거주지에서 걸그룹 멤버의 얼굴 사진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하고, 자신이 만든 사이트에 게시한 혐의를 받았다. ㄴ 씨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합성물을 유포했다.
ㄴ 씨는 불법 합성물을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음란물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해당 사이트에 음란물 1068건을 게시했다. 그는 불법 도박 사이트로 연결되는 배너 광고를 만들어 3301만 원에 달하는 광고 수익을 얻기도 했다.
창원지방법원은 2021년 5월 ㄴ 씨에게 징역 4년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에 각 10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ㄴ 씨는 2003년과 2004년에도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ㄷ 씨는 2020년 3월 첨단조작기술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 여교사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과 온라인 강의 화면을 수집해 불법 합성물 12개를 만들어냈다.
그는 게임을 하다가 알게 된 피해자에게 알몸 사진을 받고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도 있다. ㄷ 씨는 피해자에게 유사 성행위 영상 등을 찍게 만들어 텔레그램에 게시했다.
창원지방법원은 2021년 8월 12일 ㄷ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에 각 7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국회 관련 법안 제출 = 현행법은 딥페이크와 같은 허위 영상물 처벌에서 사각지대를 두고 있다. 특히 배포 목적이 증명되지 않는 한 마땅한 처벌 근거를 두지 못하고 있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딥페이크 관련 법안만 7건이다. 허위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만이 아니라 구입, 소지, 저장, 판매하는 행위에 처벌 규정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을 위한 범정부 대책 회의를 열고서 관련 법안이 신속하게 제·개정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텔레그램 한 채널 범죄에 동조한 가담자만 22만 명이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이건 사건이 아니라 사태”라며 “얼굴 노출도 꺼리게 될 정도로 일상에 안전망이 없다고 느끼게 했다”고 공분했다.
그는 “이는 단순히 미성년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범죄라던가, 기술 발달 때문에 급증한 범죄라고 볼 수 없다”라며 “이미 2016년부터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에 대응해 달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때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일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법 합성물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배경에는 낮은 수준의 양형 기준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0년 12월 불법 합성물 성범죄 제작과 반포(세상에 퍼트려 알림) 양형 기준을 6개월에서 1년 6개월까지로 정했다. 성 착취물 반포 최대 2년 6개월, 영리 목적 반포 최대 8년보다도 낮은 수준의 양형 기준이다.
이경하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반포할 목적으로 제작하거나 편집·가공한 경우에 처벌하는 조항만 있고 혼자 보고 있었다면 처벌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며 “불법 합성물을 소지하거나 시청한 사람들도 어떤 의미에서 확산시킨 공범이라 볼 수 있는데 처벌하더라도 경미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사회 전반적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시기에 법이 제정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 몸을 찍은 게 아니지 않느냐고 보는 미비한 인식이 있었다”며 “하지만 불법 촬영물과 피해 정도를 비교했을 때 그 피해 정도가 낮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김다솜 기자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