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36.5] 정호 작가
다음달 1일까지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서
개인전 〈숢; 느린 호흡〉열어

※ [주파수 36.5]는 문화체육부 기자들이 36.5도 생기 가득한 지역민의 삶에 주파수를 맞추고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국립창원대학교 앞 인사이드 커피전문점 지하에 있는 인사이드 갤러리. 전시장 바닥이 물에 젖어 있다. 그런 가운데 모래를 쌓고 그 위에 솔방울들을 얹어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다시 그 위로 두꺼운 철사로 만든 지지대가 있다. 지지대 위에 제습기 3대가 놓여 있다. 제습기에서 나온 물방울이 모래와 솔방울 위로 떨어진다. 모래와 솔방울이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물기가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13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열리는 정호(41) 작가의 전시장 모습이다.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이 설치작품은 ‘거대한 호흡, 순환, 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정 작가. /주성희 기자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정 작가. /주성희 기자
정호 작가가 지난 1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숨을 주제로 한 설치작품. /주성희 기자
정호 작가가 지난 1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숨을 주제로 한 설치작품. /주성희 기자

살아간다는 것, 숨을 쉰다는 것 = 예술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이어온 정 작가가 4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그런데 그동안 그가 선보인 작품과는 다르다. 정 작가는 지금까지 평면 작업을 주로 해왔다. 극단적으로 확대한 손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손-풍경’ 연작이 대표적이다. 또, 권위에 대한 비판, 문화 행정에 대한 비판을 자화상에 담기도 했고 미술·미술가란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을 담은 영상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설치 작업이 중심이다. 그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작가는 2018년 첫 아이가 생기면서 육아와 가사에 집중했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면서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졌다. 생계를 위해 일용직 노동을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작업을 할 물리적 시간과 정신적인 여유가 줄었고, 육아 우울증도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것, 그럼에도 순환하는 것들, 느리더라도 이어지는 삶’에 고민이 이어졌고, 긴 호흡으로 차곡차곡 준비해 온 결과가 이번 전시다.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전시를 구상하며 기록한 자료들. /주성희 기자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전시를 구상하며 기록한 자료들. /주성희 기자

구체적으로 그는 코로나19가 바꾼 인간의 모습, 인간이 바꾼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2021년부터 가족과 주변 사람이 쓰던 마스크를 모으고 씻어 말려 보관했다. 팬데믹이 지나면 우리가 겪은 현상을 마치 보고서 쓰듯 작품으로 풀어내려 했다.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어느덧 사회에선 마스크가 코로나19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마스크를 전면에 내세우려고 했던 작업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는 다시 1년 동안 가족이 쓰던 마스크 안에서 덩굴 식물을 키워 천장에 매달았다.

정 작가는 “2020년 이후 전시하기까지 4년이라는 긴 호흡이 필요했던 것을 작게는 솔방울에서 크게는 설치물의 ‘숨’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숨이 곧 그의 삶이었기에 전시명을 ‘숢(숨 + 삶)’이라 지었다.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전시장 입구 설치 작품 속에 큰 딸과 함께 있는 정호 작가. /주성희 기자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전시장 입구 설치 작품 속에 큰 딸과 함께 있는 정호 작가. /주성희 기자

솔, 들 그리고 연못 = 제습기, 일회용 마스크 같은 인공적인 것 외에 이번 전시에는 나뭇가지, 모래, 솔방울과 아이비 같은 자연 재료가 많이 쓰였다. 전시장 입구 밖 야외 공간에는 벽에 기댄 나뭇가지들이 있다. 정 작가는 나뭇가지가 벽에 의지하고 기대 있는 그 모습이 자신과 아내, 자녀 즉 가족과 같다고 봤다. 전시장 곳곳에 기대어 있는 나무 의자 또한 같은 상징을 나타냈다. 솔방울과 나뭇가지는 모두 그가 이사하기 전 자택에서 작업실로 오가는 길에서 가져왔다. 솔방울은 물을 머금으면 겉면이 닫히고, 건조해지면 겉면이 활짝 열린다. 이러한 과정은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전시장 곳곳에 매달린 덩굴 식물 아이비는 자연을 되새기게 한다. 접지도 번식도 쉬운 아이비는 약용으로도 쓰이지만 공기정화에 탁월하다. 정 작가는 “아이비는 원래 종자를 찾을 수 없고, 복제한 것을 다시 복제하는 것만이 즐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 또한 코로나19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현상이라고 보고 작품에 적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이번 전시의 유일한 회화 작품인 '심연'. /주성희 기자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이번 전시의 유일한 회화 작품인 '심연'. /주성희 기자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이번 전시의 유일한 회화 작품 앞에 큰 딸과 함께 있는 정호 작가. /주성희 기자
정호 작가가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개인전 〈숢; 느린 호흡〉을 창원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다. 이번 전시의 유일한 회화 작품 앞에 큰 딸과 함께 있는 정호 작가. /주성희 기자

이번 전시에서 ‘심연’은 유일한 회화 작품이다. 정 작가는 이전까지 극단적으로 확대한 손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표현해 왔다. 이번에는 캔버스 한가운데 지극히 단순한 연못 형상을 통해 내면을 더욱 깊이 들여다본다

“자신에 대한 불신과 의문은 자화상 작업을 하게 하였고 자화상 작업을 하며 깊어진 나의 감정에 대한 호기심은 손의 모양에 대한 흥미로 손을 그리던 작업과 연결되어 ‘손-풍경’ 연작이 되었다. ‘손-풍경’ 연작을 하며 발견한 원형(Archetype)의 이미지들은 심연(Abyss)의 풍경을 만나며 원형(circle)·동굴·연못이 되었다.” (전시 설명 중에서)

쉽게 말해 이 작품은 지난 작업과 현재 작업을 미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작가명을 ‘정호연’으로 새로 지었다. 당장 본격적으로 드러내진 않겠지만, 앞으로 서서히 조심스럽게 사용해 보려고 한다.

정호 작가가 2018년 경남도립미술관의 〈N아티스트〉에 출품한 작품 '손-풍경'. /정호
정호 작가가 2018년 경남도립미술관의 〈N아티스트〉에 출품한 작품 '손-풍경'. /정호
정호 작가가 2020년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 전시 〈이미지 사회〉에서 선보인 작품. /정호
정호 작가가 2020년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 전시 〈이미지 사회〉에서 선보인 작품. /정호
정호 작가가 2020년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 전시 〈이미지 사회〉에서 선보인 'NOTFORSALE;구매불가' 작품들. /정호
정호 작가가 2020년 인사이드갤러리에서 한 전시 〈이미지 사회〉에서 선보인 'NOTFORSALE;구매불가' 작품들. /정호

끊임없이 사회와 마주해야 = 그는 2020년 전시 <이미지 사회; IMAGE SOCIET>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미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드러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에게 다시 미술이 무엇인지 물었다. 고개를 숙이며 깊이 생각하던 정 작가는 미술의 명제나 정의를 고정하고 작업하는 게 아니라 미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작품을 대하는 게 미술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방과후 수업에 나설 때, 제가 미술을 접했던 때와 사회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해요. 그 때문인지 미술에 흥미를 느끼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의 성향이 달라지기도 했죠. 그들이 성인이 되고 미술의 심리적인 구조가 지금과 달라져 있을 텐데 그때 전 어떤 미술을 할까요? 저 개인만 봐도 10대부터 40대 때까지 마주하는 사회가 다르거든요. 일부 예술인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여기고 작품을 창작하죠. 하지만 예술인도 사회와 결부돼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생각으로 정 작가는 변화하는 사회 구조를 민감하게 바라보면서 작업을 했고,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자화상이 손 그림으로 다시 이번 전시에서 솔방울 더미로 바뀌었듯, 내년에는 또 어떤 형태로 작품이 변화할지 알 수 없다. 다만, 정 작가는 예술과 삶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며 작업을 이어 나갈 것이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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