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느끼는 생태여행]5. 양산 원동습지
북에서 남으로 흐르던 낙동강이 합천 황강을 합치고 창녕 남지에 못미쳐 남강을 받아들인다. 이후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 창녕·창원·김해·밀양에서 커다란 습지를 만든다. 밀양 삼랑진에서 밀양강과 물을 섞고, 다시 양산과 김해 사이를 지나며 남동 방향으로 흐른다.
원동습지는 이 낙동강 흐름 방향과 나란한 당곡천을 따라 형성됐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일 때 쌓은 둑 때문에 직접 낙동강과 만나지 않는다. 당곡천은 직접 낙동강과 합류하지 않고 원동천과 합친 후 북남 방향으로 부산을 지나는 낙동강과 하나가 된다. 흐름이 이처럼 복잡한 데 더해 부산 앞바다와 가깝다 보니 원동 지역은 역류에 따른 범람이 잦았다. 원동에서 멀지 않은 밀양 삼랑진에도 이런 역류의 흔적이 담겨 있다. 삼랑진(三浪津)이란 이름은 한자 그대로 세 물결이 만나는 나루란 뜻이다. 세 물결이란 밀양강, 낙동강 상류 그리고 역류한 바닷물을 말한다.
◇습지의 생명력 = 문득 기차 소리 들린다. 원동역을 오가는 화물차의 긴 행렬이다. 더러 무궁화호도 지난다. 원동습지는 양산 원동역에서 밀양 삼랑진역으로 이어진 철도 제방과 1022번 지방도로 둘러싸인 모양이다. 2000년 환경부는 습지보전법에 따라 원동 일대 자연환경을 조사했다. 2001년 펴낸 보고서에서 안동대 생명자원과학부 정규영·권현조 팀은 "담수·해수의 범람 영향을 심하게 받는데도 왕버들을 비롯해 희귀식물인 선제비꽃이 있는 등 습지로서 안정돼 있다"고 했다. 또 부산대 생물학과 주기재·박성배 팀은 같은 보고서에서 "낙동강 습지가 90% 넘게 없어진 현실에서 원동습지의 경우 생태계 기능의 소실을 막아야 하며 지역 주민과 중요성을 공유하고 생태관광지로서 가능성도 일깨워야 한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지난 세월 이곳은 잦은 범람으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습지였다. 이달 초 양산시는 13만㎡ 규모로 조성한 '원동습지 생태공원'을 개방됐다. 사업비 19억 원을 들여 훼손된 습지를 복원하고 서식지 보존을 최우선으로 멸종위기종 자생지를 마련하고자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진행했다.
원동습지는 현재 멸종위기종 2급 식물인 서울개발나물, 선제비꽃이 동시에 자생하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희귀한 습지다. 서울개발나물은 1902년 서울 청량리에서 처음 발견된 식물이다. 멸종된 줄 알았다가 2011년 양산에서 다시 서식이 확인됐다. 서울·호남·경남 등지에 자생한 기록은 있으나 현재는 원동습지에서만 확인된다. 키가 1m 가까이 자라는 제비꽃인 선제비꽃도 원동습지에서만 자생하는 멸종위기종이다. 2021년 경기도에서 새로운 자생지가 발견되긴 했지만,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다. 이외에도 버드나무·생이가래·개구리밥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수달을 비롯해 큰기러기·큰고니 등도 관찰할 수 있다. 원동습지는 겨울철에도 가창오리·말똥가리 등 조류 월동지로 다양한 야생 동·식물을 접할 수 있는 생태계 보고다.
양산시는 원동습지를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받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원동습지 생태공원 개장으로 멸종위기종 자생지 보호시설이 설치되면서 보호지역 지정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환경부에서 관심이 많은데, 지난해 2월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는 관련 단체 전문가 양산 시민과 함께 서울개발나물과 선제비꽃의 자생지에서 멸종위기종 살리기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원동습지 생태공원은 오후 6시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휴장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이다. 다만, 비가 많이 오면 안전을 위해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 시는 원동습지와 함께 2021년 9월 개관한 당곡생태학습관을 생태계 체험학습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학습관은 1295㎡ 터에 전체면적 468.356㎡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1층은 당곡천 생태탐방라운지·다목적 생태교육실·미니 수족관을 갖췄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은 당곡천 수생식물갤러리로 꾸며져 있다. 2층은 테마전시실로 운영하는데 당곡천 디오라마·VR체험존·습지 속 작은생물 홍보관·생태교란종 전시실로 구성됐다. 3층은 건물 옥상인데 '하늘놀이터'란 이름으로 휴식 공간과 포토존, 작은 놀이터, 원동습지 전망대가 설치됐다. 원동습지를 전체적으로 관찰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당곡생태학습관에는 개인과 단체가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구체적으로 화·수요일은 생태미술과 함께하는 습지이야기, 목·금요일은 그림책과 함께하는 자연이야기, 토·일요일에는 원동습지를 둘러보며 진행하는 습지생태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된다. 2층 전시 관람은 수금토일 오전 10시 30분부터 가능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당곡생태학습관 누리집(yangsan.go.kr/ysdanggok) 또는 전화(055-382-0953)로 미리 예약하면 된다.
◇1400년 역사의 가야진사와 소박한 원동역 = 원동습지 근처 낙동강 변으로도 훌륭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가야진사 건물이 있는 원동문화생태공원이다.
1983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야진사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건물로 낙동강 나루터신을 모신다. 세 마리 용과 관련된 설화가 전하는데, 그래서 나루터신을 삼용신이라고도 부른다. 가야진사 건물은 1406년(태종 6)에 세워진 것이다. 원래 원동면 용당리의 비석골에 있다가 1965년 지금 자리로 옮겨졌다. 건물 앞 제단은 2011년 조선시대 자료를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원동습지 앞 낙동강 지역은 신라시대에 가야국을 정벌하기 위해 왕래하던 나루터 가야진이 있던 곳이다. 실제 2010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며 용당리 낙동강변 지역에서 조선시대 가야진사 주변 건물 흔적 등 여러 유적을 확인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야진에 있는 가야진사에서 해마다 봄과 가을에 장병의 무운과 낙동강의 순조로운 수운과 범람을 막기 위해 국가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매년 봄 가야진용신제보존회 주최로 '가야진용신제'가 열린다.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1400년 동안 역사의 맥을 이어온 국가제례(중사)인 셈이다. 이 행사는 현재 경상남도무형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올해 국가유산청의 국가무형유산 신규 조사 대상 종목으로 지정됐다.
원동문화생태공원은 특히 낙동강 종주 자전거길을 달리는 이들에게 좋은 휴식처다. 휴일이면 낙동강 자전거 타는 이들로 붐비며 자전거를 세워두고 넉넉한 낙동강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원동습지에서 가까운 원동역은 작고 소박하다. 시골 역이지만 등산객에게는 중요한 관문이다. 경남, 부산, 대구 등에서 영축산, 신불산, 천황산,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산행을 하는 이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산행이 아니어도 신흥사, 배내골로 가는 여행객이 이 역을 이용한다. 원동면 영포리 영취산에 있는 신흥사는 통도사의 말사다. 초창기에는 건물만 110여 동에 이르는 큰 절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거점 노릇을 했다. 신흥사 중심 건물인 대광전은 1992년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이 법당은 기록상 조선 효종 8년(1657년)에 지은 것으로 나타난다. 대광전 내부에 있는 다양한 벽화가 인상적이다. 배내골은 영남알프스의 중심에 자리한 계곡이다. 가지산 여러 봉우리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시원한 계곡을 만들었는데, 계곡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랐기에 한자로 이천동(梨川洞), 우리말로 배내골이라 불렀다.
원동역 작은 역사에서 다시 기차 소리를 듣는다. 덜커덩덜커덩 추억의 기차소리다. 그 추억을 따라 낙동강과 그 옆 원동습지가 펼쳐져 있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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