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신단수, 삼한시대 소도 문화로
중국 관계 없는 고대 북방민족 문화유산

농사가 나라의 가장 크고 소중한 살림이던 때가 있었다. 농사는 하늘의 것을 땅에서도 이루어내는 일이고, 농촌은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사는 곳이다. 신과 인간, 인간과 만물 관계의 평등, 모두 함께 사는 신명을 이상이 아닌 현실의 기쁨으로 누리는 삼위일체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과 시대와 사람이 함께 있었던 적이 있다. 산업화 이전 수천 년 동안을 '농사천하지대본(農事(者)天下之大本)'이라 부른 까닭이다.

불교, 그리스도교 같은 고등 종교가 생기기 전이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하늘, 산, 물, 바다, 바람도 그 나름의 존엄이 있다 믿었고, 눈에는 안 보이지만 틀림없이 존재한다 믿은 신(神)이 만물 속에서 함께 산다고 여겼다.

우리 민족의 새벽을 알리는 단군신화 속 신단수(神壇樹)와 그 아래 제단은 고대 인류 공통의 신앙이었다. 쑥물을 마시고 여자 몸 받은 곰네가 단군을 낳게 된 신화가 생겨난 그 나무와 제단 이야기는 수렵, 어로와 농사를 아우르는 우리 고대 민족 문화의 대서사시다.

이 이야기는 고대 유럽, 아프리카, 시베리아에서도 있었다. 그중에서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전승되고 인류학자들의 값진 연구 성과로 입증되고 있는 것은, 농사와 농촌이 지닌 불멸의 아름다움이다.

단군 잉태의 신비를 상징하는 신단수는 우주 중심에 뿌리 박고 있는 큰 나무이고, 그 나무가 서 있는 공간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옛 농촌에는 마을마다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비는 마을굿이 이 나무 아래서 올려졌고, 나무 둘레에는 금줄이 둘러쳐졌다.

이렇듯 큰 나무 숭배는 신과 인간의 소통 통로인데, 신의 뜻이 땅으로 강림하고, 인간의 기도 소망이 신에게 전해지는 매우 신성한 통로였다.

이 공간은 제단으로서의 아실룸(asylum)이자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겸했다.

우리의 삼한시대에 나타난 소도(蘇塗·솟대)의 기원이다. 이를 우리는 당산나무라 불렀다. 해마다 정월에 날을 받아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당산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나무 아래에 둘러쳐진 금줄 안으로 죄지은 자가 도망쳐 들어가면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체포할 수 없고, 죄지은 자는 일정 기간을 그 안에서 지나면 죄가 소멸한다 믿었다. 이 신앙 또한 고대 인류가 공유했던 것이다.

구약성경 <사무엘서> 하 14:4에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를 하나님께서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출애굽기> 21:12에는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다. 만약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가 거기로 도망할 것이며…" 등으로 전해내려 온다.

이렇듯 삼한시대 소도 문화는 삼한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북방 알타이산맥 초원 계속을 통해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유라시아에서 고조선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이것이 삼한 특유의 신앙으로 변화하며 1950년대 우리 농촌 문화의 뿌리이자 생명사상이며 하늘 신 섬긴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중국과 관계되지 않고 우리의 고대 북방민족들이 품어 키워 삼국시대로 전해준 문화유산이므로, 결국 중국의 영향은 없었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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