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
영화 〈뉴 노멀〉(2023)
홀로 아파트에 사는 현정의 집에 벨이 울린다. 가스 점검을 나왔단다. 경비실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기에 난감했지만, 퇴근해야 하니 빨리 문을 열어 달라는 점검원의 독촉에 그만 문을 열어주고 만다. 하지만, 불편하다. 어쭙잖은 농담에다 조심스럽지 않은 행동까지. 그러다 최근 일어나는 연쇄 살인마에 대한 농을 건넨다. 겁을 주려는지 아직 안 잡혔다는 둥, 그쪽처럼 예쁜 여자만 노린다는 둥 자꾸 선을 넘는다. 위협을 느낀 현정, 과연 그녀는 그를 제압할 수 있을까?
대학생 현수가 데이트 앱으로 알게 된 이성을 기다리고 있다. 매칭 지수가 높은 걸로 보아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늦는 데다 문자 속 어투도 왠지 이상하다. 아니다 싶어 자리를 비운 채 화장실에 있던 현수에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한다. '찾았다!' 자신은 화장실에 있기에 이게 뭔 소린가 싶던 중 사람들의 비명에 밖으로 나가 맞이한 광경은 처참하다. 칼에 찔려 길에 쓰러진 여성. 더욱 아연한 것은 그녀의 가방 색이 노랗다는 것으로 자신을 찾을 때 쓰라고 준 힌트였다. 위험에 노출된 현수, 그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자 친구 사귀기에 재능이 없는 훈. 오늘도 혈액형과 별자리에 빗댄 친구의 놀림을 당하곤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그러다 우연히 자판기에서 미션과 사연이 담긴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하나하나 미션을 수행하며 거리상으로, 정서적으로 그녀와 가까워져 가는 훈, 그러다 과정 속 주어진 그녀의 사진에 흐뭇하다. '이제 나에게도 사랑이 오는 것일까?' 운명을 믿지 않던 훈이었지만 이젠 다르다. 그리고 마침내 맞이한 마지막 장소. 그곳엔 하트로 그려진 예쁜 꽃들이 놓였다. 곧 내려오겠다는 그녀,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백수 기진은 옆집 여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방식이 좋지 않다. 시간을 맞춰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 향기를 느끼는 것까진 그렇다 치지만 빈틈을 타 그녀의 집에 몰래 침입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달이 벌어진다. 그녀가 돌아왔다. 몰래 빠져나오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러다 기회가 생겼다. 그녀가 샤워하러 화장실로 간 사이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남자 친구와 맞닥뜨린 것. 샤워를 하는 중이니 오해가 증폭되는 상황인 데다 이 남자, 아니 사랑하는 그 여인마저도 뭔가 이상하다. 과연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는 연진의 삶은 별다른 무서운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공포다. 가난. 야간 아르바이트이니 생활의 밤낮이 바뀌었고, 지내는 곳은 볕도 잘 들지 않는 지하 단칸방, 가수의 꿈은 묘연한 데다 날마다 찾아오는 '진상'(무례한) 손님들을 대하기도 지쳤다. 그런 연진은 매일 상상으로 자신을 죽인다. 세상에 대한 증오가 이러니 온라인상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글에 잔인하고도 구체적인 댓글도 단다. 그러던 어느 날, 계획을 실행했다는 글이 올라온다. 잠시의 분노로 적은 글이라 생각했는데 실행했다니, 그것도 자신이 조언한 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에 살인자는 구체적인 장소를 지목하며 확인하고 싶다면 와 보라고 한다. 찾아가는 연진, 그녀는 그곳에서 과연 무엇을 발견했을까?
두 번째 챕터, '옳은 일을 하라!' 중학생 승진이 버스를 기다리던 중 곤란에 처한 할머니를 돕는다. 누군가를 도와 뿌듯하다는 친구들의 말에 '봉사활동 점수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을 왜 도와줘?'라고 했다가 핀잔을 들은 후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승진은 할머니의 집 앞까지 도움을 주기로 한다. 할머니의 휠체어가 영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승진의 행동에 할머니의 칭찬이 이어지고 그러던 중 도착한 장소. 집이라기엔 낡은 상가에 가까웠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으쓱한 공간을 지나야만 하는 곳이다. 착하니 강아지를 한 마리 주겠다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밀어달라는 할머니. '빨리 도망쳐!'라는 말이 끓어오르는 이러한 상황에서 승진은 어떤 일을 맞이할까?
이렇듯 장면들이 불안한 가운데 이를 더하던 음악이 있다. 바로 러시아의 작곡가 프로코피예프(Prokofiev·1891-1953)의 '피터와 늑대'(Peter and the Wolf an Orchestra Fairy Tale, Op. 67)로, 아동극을 위한 음악이다. 1936년 작곡되었으니 16년이란 긴 망명을 끝내고 돌아온 지(1935) 얼마 되지 않은 시기다. 작업은 모스크바 중앙 어린이 극장 측의 의뢰로 이루어졌다. '모스크바의 아이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작곡에 임했으니 열심이었고, 나흘이면 충분했다.
'한 농장에 피터라는 용감한 소년이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장에 침입한 늑대가 오리를 삼켜 버렸고, 이에 피터는 기지와 용기를 발휘, 새와 고양이의 도움을 받아 늑대를 포획해 사냥꾼들과 함께 동물원으로 끌고 간다.'
작곡가가 직접 대본을 쓴 이러한 짤막한 이야기가 음악을 입은 것이 바로 '피터와 늑대'다. 피터와 할아버지, 새와 오리 그리고 늑대와 사냥꾼이 등장하며 각자의 성격에 맞는 악기로 묘사된다.
피터는 현악합주다. 유쾌하고도 밝은 선율로 영화 속 학원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 들려온다. 고양이는 클라리넷, 할아버지는 바순 그리고 새는 플루트가 담당, 이들의 테마 역시 이 챕터의 장면 곳곳에 배치된다.
그리고 승진이 할머니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순간, 오리의 테마가 오보에의 소리로 들려온다. '잠깐, 오리라고?' '피터와 늑대' 속 오리가 어떻게 되었나. 늑대의 배 속으로 한입에 삼켜지지 않았던가. 승진이 피터인 줄 알았더니 희생자란 말인가? 그렇게 불안했던 마음이 할머니의 집 앞에 이르자 그만 내려앉는다. 엘리베이터를 향한 검고도 좁은 길이 마치 늑대의 입속처럼 보였고 이때 늑대의 주제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들려오는 음악이 이러하니 소리칠 수밖에 없다.
"도망가!"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진 승진은 어찌 되었을까? 그 결말을 예상함에 오직 참담함뿐이니 나도 이러한 뉴 노멀에 적응하고 만 것일까? 필사의 도주에 그 끝을 막아선 자는 버스 정류장에서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자였다. 소년은 그를 힐끔거렸다. 위험해 보여서? 아니, 귀에 자신이 갖고 싶은 헤드폰이 걸려서. 그렇게 승진이 갖고 싶은 것을 지닌 이가 최종 빌런(악당)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당들이 갖고 싶은 것을 누리는 것인가? 하는 짓이야 어찌 되었든, 어떻게 돈을 벌었든 상관없다. 풍요로운 이가 그저 부러운 'ⅹ 같은 세상'이다. 그렇게 영화는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며 이러한 세태가 뉴 노멀이라 피력한다. 하지만, 그 본질은 물질 만능주의이며 실체는 결국 돈이다. 가진 이는 가진 대로 없는 이는 없는 대로 지옥이다.
/심광도 시민기자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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