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36.5]
MBC경남 <정오의 희망곡> 18년 진행한 방송인 조복현
라디오에 빠진 아이가 라디오 진행자로 성장
"애정 가득한 청취자 덕분에 오래 진행할 수 있어" ·
※ [주파수 36.5]는 문화체육부 기자들이 36.5도 생기 가득한 지역민의 삶에 주파수를 맞추고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평일 낮 12시, 경남 지역 라디오 FM 100.5MHz를 맞추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가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친절한 복자 씨'란 애칭으로 불리는 MBC경남 FM4U <정오의 희망곡> 진행자 조복현(46) 씨다.
지난달 25일 <정오의 희망곡> 생방송이 진행되는 MBC경남 창동 공개스튜디오에서 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게 된 가수 정홍일을 인터뷰했다. 대화 도중 자연스레 조 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역에서 20년 밴드를 하면서 수많은 좌절이 있었어요. 18년간 라디오를 이끈 복자 씨에게도 그런 순간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걸 애착을 가지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거죠. 그런 면에서 우리는 축을 같이 하고 있다고 봐요."
정홍일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고, 문득 18년이란 시간 동안 늘 그 자리에서 청취자에게 밝은 에너지를 건네는 조 씨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라디오 세상에 살던 아이 = 어릴 적 조 씨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집에 있는 유선 전화기가 울릴 때면 누구보다 먼저 쪼르르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어느 날에는 다니던 교회에서 시 낭송을 했는데,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가 예쁘다며 칭찬을 들었다.
학창 시절에는 라디오에 푹 빠졌다. 중학교 때는 카세트테이프에 라디오 방송을 녹음해 친구들과 돌려 듣기도 했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는 머리카락 사이에 이어폰을 감추곤 라디오의 세계로 푹 빠져들었다. 라디오는 그에게 텔레비전보다 더 가까운 세상이었다. 특히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듯한 그 친밀감을 참 좋아했다.
경상대학교에 입학하자 곧장 교내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방송 원고도 쓰고, 인터뷰도 하고, 음악 선곡도 했다. 직접 방송 음향을 조절하기도 했다. 대학 생활 중 7할을 방송국 활동에 썼으니, 방송이 그의 대학 생활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교수들이 출석 부를 때 그를 '방송국'이라고 호명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학교 3학년 때, 당시 마산 MBC(현 MBC경남)에서 라디오 진행자(DJ)를 모집했다. DJ 부문엔 아쉽게 떨어졌지만, 리포터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2년간 리포터로 활약하다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서울에 있는 한 증권방송에서 아나운서로 일했다. 조건이 좋은 일자리였지만 방송이 딱딱하고,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분위기에서 어쩐지 힘이 빠지던 그였다.
그러다 2002년 MBC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오후 6시부터 남자 아나운서와 함께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베테랑 아나운서와 연출(PD), 작가 2명에 조연출(AD)까지 제작진을 제대로 갖춘, 그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라디오 방송이었다. 조 씨는 기쁜 마음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경남으로 돌아왔다.
◇청취자가 주는 힘 =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4년간 진행한 후 2006년 4월 24일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그게 지금의 그를 만든 <정오의 희망곡>이다. 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1년 뒤에 낳은 첫째 아들이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그렇게 18년이란 세월이 흐를 동안 그는 변함없는 자세로 청취자를 만났다.
청취자들 이야기를 할 때면 더욱 목소리가 들뜨는 그다. 방송이 시작되면 실시간으로 그를 반기는 댓글들이 쭉쭉 올라온다. 그러면 지치는 날에도 절로 힘이 솟는다. 예를 들어 아이디 '우리별 1호' 청취자는 매일같이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가 몸이 안 좋을 때, 닭죽을 쒀서 직접 스튜디오로 가져다준 김효순 씨도 잊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청취자가 있다. 어느 날 다정해 보이는 부부가 창동 공개 스튜디오를 찾았다. 몇 달 뒤 어쩐 일인지 아내만 혼자서 다시 방문했다. 암 투병하던 남편이 떠나고, 다시 그날을 추억하려 스튜디오를 찾았다고 했다. 아내는 당시 라디오를 통해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미안하고 사랑해. 나 다시 힘내서 잘 지내볼게." 이날 함께 울었던 조 씨는 요즘도 문득 그 청취자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고 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지치는 날이 있다. 조 씨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는 늘 밝은 에너지를 전파에 실어 보낸다. 늘 애정을 듬뿍 담아 귀 기울이는 청취자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있기 때문이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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