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클래식 이야기
영화 <두 교황>(2019)
“우리는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려 깊은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합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남긴 어록이다. 그가 제시하는 행복의 십계명에는 이런 것도 있다.
“개종시키려 하지 말자.”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이런 말씀도 하셨다.
“착하게 산다면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날 것입니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던가. 특히 개종과 천국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만 본다면 전도는 최고의 사명이었고, 천국은 믿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라니, 더구나 천주교 최고의 수장이 아닌가. 물론 기독교와 천주교는 다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어느 종교를 불문, 기억하고 좇아야 할 부분들로 가득하다. 과연 어떤 삶을 사셨을까? 궁금하다면 영화 <두 교황>이 좋은 자료가 되겠다.
◇서로 다른 교리에 신경전 = 영화는 누군가가 전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전화 상담원은 교황과 이름이 같은 데다 우편번호까지 바티칸 시티라고 하니 ‘재밌네요’ 하며 끊어버린다.
장면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바뀌었다. 길거리 미사를 집전하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르리오’(이후 호르헤)가 급히 로마로 향한다. 교황이 돌아가신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은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시스티나 성당으로 모였고, 광장은 이 순간을 목격하기 위한 인파로 가득하다. (이러한 콘클라베 장면으로 인상적이었던 영화라면 <천사와 악마>(2009)가 떠오른다. 하지만 <두 교황>만큼은 아니었다. 모든 의식이 마치 실제처럼 보이며, 콘클라베가 행해지는 시스티나 성당의 위엄도 대단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영화를 위하여 지어진 세트라니 놀랍다.
호르헤를 지지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마침내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선출된 이는 독일 출신의 요제프, 베네딕토 16세다. 보수적인 성향의 절대파인 그의 선출에 교리가 지켜지리라 환영하는 인터뷰와 함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천주교가 더욱 세상일과 단절되리라는 걱정과, 그의 어릴 적 일로 나치라 비판하는 이들까지.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조국 아르헨티나에서의 소명에 열심인 호르헤가 다시 로마로의 비행기에 오른다. 추기경 직을 내려놓겠다는 편지를 여러 번 보내었지만 답변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엔 교황을 만나 직접 사인을 받을 작정이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교황의 여름 별장. 이때부터 생각이 다른 두 지성의 격돌이 벌어진다. 주고받는 대화가 차분하고도 지적이지만 풍겨오는 긴장감이 만만치 않다. 베네딕토가 타협했다 공격하면 호르헤는 변한 것이다 반박한다. 세상이 움직이듯 하나님도 움직이신다는 말에 베네딕토는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디서 찾아야 하냐’며 변치 않는 절대자를 주장한다. 이렇듯 교리와 교회의 사명에 관한 서로의 주장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러다 맞이한 저녁 시간. 식사 후 만나 자리는 평화로웠고, 다음 날 아침엔 바티칸으로 가는 헬리콥터에 함께 올랐다. 베네딕토의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호르헤는 여기에서마저 추기경 직을 내려놓기 위한 서류를 내민다. 이미 여러번 내어 밀었던 서류다. ‘당신의 의견에 하나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교황이니 그냥 사인을 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왜인지 자꾸 딴청을 피운다.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인 것일까?
◇씻을 수 없는 죄 터놓고 = 천지창조가 그려진 시스티나, 이곳에서 교황은 마침내 하려던 이야기를 꺼낸다. 교황의 직을 내려놓을 생각이며 호르헤가 이어받기를 바라는 눈치다. 격렬히 반대하는 호르헤. 일단 교황은 종신직이니 내려놓을 수 없다며 그를 말린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독재정권에 전향적이었던 전력과 범죄를 알고도 눈감았던 어두운 과거. 서로가 죄인으로서 고해성사를 하였으며, 또한 사제로서 서로를 죄로부터 용서하는 의식이 이어졌다. 이렇듯 흐뭇한 순간이 지나고 난처한 상황이 발생한다. 시스티나가 관광객으로 가득하여 이들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경비를 부를까 했지만 교황은 이전과는 다른 자세를 취한다. 문을 열고 나가 그들과 조우하며 웃음 짓는 베네딕토 16세. 권위적이던 그가 이처럼 달라진 것은 호르헤와의 대화로 인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일까?
이러한 장면과 함께 사람의 목소리로 지어지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등장한다. 바로 ‘모차르트’의 ‘전주와 피아노협주곡 20번’(Prelude and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No. 20, K.466)이다. 선율은 교황이 호르헤를 배웅하는 장면으로까지 이어진다.
언제나 주장하는 바는 모차르트는 단조의 작곡가라는 것이다. 그가 창조한 작품 중 단조의 비중이 작으나 걸작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피아노협주곡 20번 역시 D단조로, 그가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중 최초의 단조 작품이다. 이는 창작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 작품이 완성되던 1787년의 문학계는 격정과 어두움의 서정으로 가득했고 모차르트도 이러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다. 당시 모차르트의 경제적 상황은 악화되어 출판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야 할 정도였던 것이다.
◇마침내 마음 연 두 교인 = 이러한 상황에서도 어찌 이리 천국일까. 오케스트라의 긴박한 총주로 전주가 지나면 영롱한 피아노의 선율이 햇살처럼 내려온다. 그러다 애상적인 가락이 얼핏이라도 들려온다면 마치 그가 흘리는 눈물처럼 여겨져 마음이 아파 온다.
이처럼 슬픔을 바탕으로 한 웅혼한 감성은 이전의 모차르트의 작품들과는 결이 달라, 이후 등장할 베토벤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협주곡 중 이 20번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작품을 위한 카덴차를 작곡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왜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갔을까? 이는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와 천의 목소리 ‘바비 맥퍼린’이 협업한 <모차르트 세션> 음반에 수록된 버전이기 때문이다. 새로이 창조된 ‘전주곡’ 부분을 바비가 맡아 부른 것으로, 이렇듯 목소리로 이루어진 전주곡 부분이 끝나면 협주곡의 1악장으로 절묘하게 이어진다.
잘 가라는 교황의 인사에 호르헤는 포옹으로 대응하고, 급기야 춤으로 이어진다. 어색해하는 교황과 달리 호르헤의 얼굴엔 장난기가 넘치고 이를 지켜보던 바티칸 스태프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생각은 달라도 소통은 가능하다. 소통하였기에 이해하였고, 마침내 배려하였으며 친구가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호르헤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되었고, 둘은 함께 TV를 시청 중이다.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결승전. 이 순간, 그들은 그저 자기 팀을 응원하는 우리다.
“같이 있으니 좋네요.”
외롭던 베네딕트가 수줍게 내민 고백이었다.
/심광도 시민기자
※ 이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사업 보조금을 지급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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