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등에 기표 도장 남기는 대신
미리 준비한 인증 용지에 찍어

야구단·연예인·만화 캐릭터 등
유권자 관심·취향 담겨
SNS 통해 유행처럼 번져 눈길

나만의 굿즈로 소장 가치 커
정치 참여에도 긍정적 영향

지난 5~6일, 이틀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되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많은 유권자 사이에서 눈에 띄는 유권자가 있다. 그는 조그만 메모장 크기의 종이를 들고 투표소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이들은 사전투표소를 알리는 표시가 되어 있는 벽보를 찾고는 한 종이를 꺼내어 사진을 찍는다. 결과물을 확인하고 난 이후엔 메모장에 찍은 도장이 번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가방에 챙긴다. 투표를 할 수 있는 선거철이 다가오면 손등에 도장을 찍어서 투표했음을 알리는 SNS 게시글이 많다. 그러나 개별로 챙겨온 종이를 통해 투표 완료 인증을 하는 모습은 최근 젊은 층의 유권자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증 방식이다. 이는 여러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수많은 손등 인증사진 속 눈에 띄는 인증 용지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투표를 하나의 일상 콘텐츠로

SNS 속 해시태그를 이용한 '#투표인증샷'이나 '투표인증' 게시글을 찾아보면 수많은 유권자의 투표 인증이 보인다. 사전 투표가 끝난 6일 기준으로 인스타그램에 약 31만 8000개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에는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이전 인증 게시글도 포함되어 있지만, 선거철이 돌아오면 해당 해시태그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이용하고 있다.

이번 투표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인증하는 사진들이 특히 눈에 띈다. 생소한 캐릭터가 그려진 용지들은 모두 투표 인증 용지다. 투표 현장에서 유권자에게 모두 나눠주는 용지가 아니다. 투표하러 가기 전에 인증 사진을 위해 직접 프린트하거나 그리는 것이다. 사용 방법은 투표를 위해 받은 용지에 유효표를 행사한 뒤, 용지에 인증용 도장을 찍으면 된다.

인증 용지 속에는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비워놓은 여백이 있다. 이 여백에 도장을 찍으면 인증 사진을 위한 준비는 끝난다. 보통 용지는 '투표 완료'나 '투표했어요'와 같은 문구를 새겨놓아 직접적으로 투표를 완료했음을 알리는 디자인이 많다. 혹은 도장의 동그란 모양을 이용하여 용지를 개성 있게 꾸밀 수 있기도 하다.

그 때문에 젊은 세대가 올린 투표 인증사진을 보면 용지 속 각기 다양한 그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소설과 만화, 아이돌, 이모티콘 캐릭터 등으로 유권자 개인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다. 최근에는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는 유권자를 위한 용지도 등장했다. 수많은 인증 용지 속 개인이 좋아하는 분야에 따라서 어떠한 디자인의 투표용지를 들고 갈지는 달라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투표 인증 용지를 구하고자 젊은 유권자들은 투표일이 다가오면 바빠진다. 혹여나 놓친 디자인이 있을까 SNS 게시물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리고 좋아하는 분야가 너무도 많아 어떠한 용지를 들고 갈지 후보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보통은 한두 장의 용지를 챙겨 가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유권자는 여러 장을 한 번에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다음 차례의 유권자를 위하여 바로 빠르게 투표한다.

# 투표와 덕질을 동시에

직접 제작한 투표용지가 등장한 건 이번 선거가 처음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있었던 21대 총선 당시에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하여 손등에 인증용 도장을 찍지 못했던 상황이 유행을 만들었다. 피부에 직접 닿지 않고 인증할 방안을 고안하던 도중, 일부 유권자들이 별도의 종이를 준비했던 모습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돌 열성팬 사이에서는 맛있는 걸 먹었을 때나, 여행 중일 때에도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토 카드를 들고 인증사진을 찍는 문화가 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자연스레 투표용지 대신 포토 카드에 도장을 찍어 인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팬은 본인의 정치적 성향이 인증사진으로 드러나면 안 된다며 포토 카드 속 인물이 특정 후보를 유추할 수 있는 포즈나, 특정 색상의 옷을 입었는지를 고민한다. 물론 이 고민도 투표 기간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일상 콘텐츠라 여겨진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선별된 포토 카드를 챙긴다. 이후 투표소에서 도장을 연예인의 얼굴에 연지곤지, 페이스 페인팅처럼 찍어 완성한다.

"투표용지나 포토 카드에 도장을 찍으면 세상에 하나뿐인 굿즈가 된다. 투표를 매일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시간이 지나서 돌아봤을 때 내가 당시에 어떠한 분야를 좋아했는지도 기념할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투표 인증 용지가 소장 가치도 있고, 이를 사용하고 싶어서 괜히 투표일이 기다려진다." ㄱ씨는 이번 사전 투표를 위하여 직접 용지를 챙겨 갔다. 고심 끝에 챙겨간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고는 개인 다이어리에 붙여놓았다.

'굿즈'가 되어준다는 말은 좋아하는 캐릭터와 도장이 함께 찍힌 용지가 특정 브랜드나 애니메이션, 아이돌과 관련한 공식 물건이 됐다는 거다. 물론 공식적으로 발매되어 돈을 내고 구매하는 굿즈는 아니지만, 덕질(특정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행위)하는 캐릭터가 새겨진 용지 자체를 굿즈의 하나로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가 다가올 때만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희귀성을 더욱 높여준다.

#투표 인증 문화와 투표율의 관계

"투표일이 다가오면 덕질을 위해 만든 SNS에 온갖 투표 인증 용지 도안이 올라온다. 만약 투표일을 잊었다고 해도 곳곳에서 도안이 올라오니 스스로 상기되는 거 같다." ㄱ 씨는 투표 인증 문화가 실제 투표율 상승에도 도움이 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출력한 투표 인증 용지를 사용하려면 직접 투표소에 가서 본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SNS 상에서 공유되는 투표 인증숏과 투표 독려는 오늘날 젊은 층 유권자의 정치 참여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닐슨 코리아에서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5.1%가 SNS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며, 3명 중 1명 이상이 선거일에 투표소에서 인증해 본 경험이 있었다. 이러하듯 청년 세대의 인증사진 문화는 투표율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인증사진과 투표 참여 독려는 특정 시기에만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문화가 아니다. 이러한 문화가 언제, 누구에 의하여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내에서 투표 인증을 하는 모습은 하나의 선거 문화로 자리 잡았다.

청년들은 "선거철만 되면 예쁜 용지 디자인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콘텐츠다", "용지에 도장 찍고 인증하는 게 재미있어서 다음 선거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투표 인증 용지에 도장 찍으러 투표하러 간다" 등 식으로 자신의 정치 참여를 유쾌한 방식으로 발산하고 있다. 또한, 용지를 나누며 투표소에서 유의해야 할 점과 투표 시에 무효표가 되지 않도록 주의 사항들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젊은 층의 유권자들은 모두가 투표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만약 투표 인증을 위해 용지를 따로 챙겨 왔다면 몇 가지 유의 사항을 알고 가야 한다. 우선 인증 사진은 투표소 내에서 촬영하면 안 된다. 실제 투표하는 모습을 찍고 싶어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하게 되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긴다. 투표를 끝낸 이후 투표소 밖에서는 얼마든지 촬영할 수 있다. 기표소 안에서 투표 인증 용지에 도장을 빠르게 찍고, 투표소 밖으로 나와서 인증 사진을 찍으면 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젊은 층의 유권자를 따라 투표 문화를 즐거운 일상 콘텐츠로 소화해 보는 건 어떨까. 투표용지를 챙기지 못하였다면, 다가올 선거에서 본인의 개성이 가득한 투표용지를 챙겨 특별하게 인증해 보는 걸 추천한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이를 기념할 수 있는 나만의 '굿즈'를 만들어보자. 이는 높은 투표율도, 즐거움도 함께 잡을 기회가 되어준다.

  /정유정 시민기자

#총선 #경남

※ 이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사업 보조금을 지급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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