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세상] 간병 살인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간병의 굴레는 깊고 어둡습니다. 그 굴레에서 겪는 고통은 우발적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17일 오후 양산시 물금읍에 산다는 50대 남성은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고 자수했습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뇌경색으로 혼자 거동이 어려웠던 아내를 돌봤습니다.

‘간병 살인’은 간병에 지친 간병인이 피간병인을 살해하는 범죄다. <서울신문>이 보도한 기획 기사에 따르면 2006~2018년 간병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213명이다. 한 해에 16.4명, 한 달에 1.4명이 간병 살인으로 숨을 거뒀다. 가해자인 간병인도 뒤따라 숨져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된 사건은 통계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간병 살인은 가정을 넘어 이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창원지방법원 전경. /경남도민일보DB
창원지방법원 전경. /경남도민일보DB

◇법정에 선 간병살인 = 살인죄 권고형의 하한은 최소 5년이다. 법정 안에서 간병 살인은 살인죄 권고형의 하한을 벗어난 형을 받기도 한다. 재판부가 가해자의 상황을 참작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자수했거나 오랜 간병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이 감형 대상이었다. 대부분 사건은 유족들이 선처를 바랐다.

지난해 1월 인천지방법원에서 유의미한 판결이 나왔다. 딸을 살해한 어머니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것이다. 이 사건을 놓고 검사는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살인죄의 권고형 하한선을 넘어선 판결이었다.

김주희(가명) 씨는 딸 민상은(가명) 씨를 살해했다. 민 씨는 난치성 뇌전증, 지적장애 등을 앓았다. 민 씨는 2022년 1월 28일 대장암 3기를 진단받았다. 김 씨는 38년 동안 돌본 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고통을 없애주기로 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38년이 넘게 피해자를 돌봐왔고,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통상적인 양육에 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을 것으로 보인다”며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부족한 점이 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여 오로지 피고인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유경석(가명) 씨는 박점화(가명) 씨를 1987년에 만났다. 두 사람은 30년 넘게 사실혼 관계로 살았다. 박 씨는 2020년 무렵 헌팅턴병을 진단받았다. 유전자 특이 서열로 발생하는 질병으로 정신 증상, 치매, 신경 문제 등으로 도움 없이 생활하기 어렵다. 택시기사로 일하던 유 씨는 2023년 4월 일을 그만두며 박 씨 간호에 전념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박 씨를 살해했다. 재판부는 그가 처한 상황과 처벌을 원하지 않는 유가족을 고려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간병 살인이 무조건 선처 대상은 아니다. 조문석(가명) 씨는 당뇨에 치매 증상까지 보이던 아버지를 살해했다. 조 씨는 2022년부터 아버지를 학대했다. 살해된 조 씨 아버지의 사망 원인은 영양불량과 당뇨 합병증, 화상 등이었다. 재판부는 고의가 없었다면서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조 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간병 살인,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 = 오영숙 요양보호사는 하동군의 한 민간요양병원에서 일한다. 그는 “중증 치매노인은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고, 때로는 고집을 부리면서 폭력을 행사한다. 가족이 돌보려면 죽을 만큼 힘들다”며 “24시간 동안 가족이 돌봐야 하는데, 도움받을 곳도 없이 장기간 돌본다면 지옥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초생활수급자는 요양원에 (피간병인을) 보내면 무료지만, 그런 정보가 없어서 요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며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면 본인부담금이 커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간병 살인은 사회적 문제다. 이전에는 간병을 가족의 몫으로만 남겨뒀으나 간병 범죄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가 역할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

박숙완 경상국립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간병 범죄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통계 자료를 취합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자료를 토대로 ‘다기관복지정책’을 수립하고, 중증질환과 장기 돌봄 환자들을 도울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가족 간병인의 심리적 문제가 간병 범죄의 주요 원인인 만큼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며 “주요 선진국은 가족 간병을 사회가 할 일을 대신하는 노동으로 인정해 경제적인 보답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부담을 덜어내는 간병비 급여화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최소 15조 원 이상의 재원을 투입해야 할 문제라 어려움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총선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간병 부담을 덜기 위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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