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세상] 연애 빙자 사기
1939년에 막을 올린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제목에 충실한 작품이다. 주인공 홍도는 오빠의 뒷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된다. 홍도는 오빠의 친구 영호를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홍도는 영호의 정혼자를 살해하고 순사가 된 오빠에게 붙잡힌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사랑은 사기 범죄의 범행 수단이기도 하다. 연애 빙자 사기(로맨스 스캠 사기)가 대표적이다. 사기범은 피해자에게 이성적으로 접근해 호감을 사고 이익까지 취한다. 피해자는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사랑을 잃는 상처까지 떠안게 된다.
지난해 국가정보원이 접수한 연애 빙자 사기 신고 건수는 126건으로 2020년(37건)보다 3.5배 늘었다. 지난해 연애 빙자 사기 피해액은 55억 1200만 원으로 2020년(55억 1200만 원)보다 17배 증가했다.
◇사랑에 속은 피해자들 =ㄱ(52) 씨는 온라인 채팅 사이트에서 여성을 만났다. 여성들에게 자신을 자산가이자 에어프랑스 기장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그가 전화를 걸면 휴대전화에는 국제전화 국가 번호가 찍혔다. 여성들은 그와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ㄱ 씨는 “모든 자산이 미국에 있다. 미국 정부의 이민정책 때문에 자산을 현금화할 수 없으니 돈을 빌려주면 이자까지 쳐서 주겠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방식으로 2015년 2월 23일부터 2020년 8월 20일까지 139회에 걸쳐 피해자 4명에게 9억 7000만 원에 달하는 피해를 줬다.
지난 14일 ㄱ 씨가 창원지방법원 법정 215호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에어프랑스 기장 복장이 아니라 죄수복을 입고 나타났다.
재판부는 “연모의 감정이나 신뢰를 이용해 돈을 편취했다”며 “피해자들이 입은 경제적 피해가 대단히 크고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피고인에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ㄴ 씨는 2020년 4월 2일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알게 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 돈을 빌려주면 보험금을 받아 갚겠다”고 말했다. ㄴ 씨는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일삼아서 2888만 원을 가로챘다. ㄴ 씨에게 이렇게 속은 피해자만 3명이었다. 피해자들은 ㄴ 씨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어 쉽게 지갑을 열었다.
ㄴ 씨는 2022년 8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ㄴ 씨는 상습적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2015~2017년 사기죄로 벌금형을 받은 적만 네 번이었다. 2019년 사기죄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고서 항소심을 하고 있었으나 범행을 계속했다.
ㄷ 씨는 남성이지만, 사회관계망 서비스 속에서는 여성인 척 행세했다. 불특정 다수 남성에게 친구 신청을 하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ㄷ 씨는 자기 여자친구에게 대신 통화하게 하여 피해자를 속였다. ㄷ 씨는 2021년 1월부터 그해 3월까지 15회에 걸쳐 1965만 원을 받아냈다가 2022년 10월 징역 5월에 집행유예 2년에 처했다.
◇온라인을 조심하라 = 사기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심리전이다. 사기범들은 ‘유대감 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피해자와 종교 활동을 함께 하거나, 피해자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주거나, 피해자의 취미 생활을 함께하는 식이다. 연애 빙자 사기도 피해자와 유대감을 쌓는 방식 중 하나다.
송명호 변호사(송명호법률사무소)는 “가해자는 돈을 받고자 자신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라고 투자하라고 속이거나, 불쌍하고 돈이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스로 자존감이 낮은 상태의 피해자는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을 알고 가해자가 접근하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범죄가 두드러진다”며 “온라인을 통한 만남에 몰두하지만 않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범진 고려대학교 디지털포렌식학과 대학원생은 지난해 3월 <로맨스 스캠 현황 및 대응 방안>을 논문으로 썼다. 해당 논문은 제도와 기술로 연애 빙자 사기 범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연애 빙자 사기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새로운 수법, 범죄 관련 단서들이 신속하게 관련 기관에 전달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며 “연애 빙자 사기 범죄의 필수 요소인 계좌, 사칭 계정, 가짜 범죄 사이트에 적절히 대응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개정해 범행에 이용되는 계좌에 지급정지를 하는 규정을 명확히 하고, 계좌이체를 할 때 사기 이력을 자동으로 조회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금융회사에서도 사기 의심 거래를 감지해 거래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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