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도시문명과 다른 한국 농촌문화
자연의 신성함 바탕한 철학체계 모체
독일 사람 슈펭글러가 쓴 <서양의 몰락>은 역사철학으로 분류된다. 서양의 도시는 농촌이라는 어머니 젖을 먹고 자란 문명이라 했다. 처음엔 어머니 젖을 먹고 자라는 아이는 성장을 보듯 볼만했으나 나이 들수록 차츰 괴물로 변질되었다. 나중에는 어머니의 살과 뼈, 영혼까지 수탈하여 철근과 콘크리트로 비만해져서는 어머니도 자식도 함께 몰락한다고 썼다. 1930년 이전의 글이다.
이런 그의 견해에는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농촌문화에 대한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와 좋은 비교가 되는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다. 도시의 발생과 성장이 농촌의 수탈에 근거했음은 사실이다. 한국 도시문명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구 도시문명을 바탕하여 등장했다. 농촌에다 빨대를 꽂고 무작정 배를 불리고 체구를 키워 비만으로 널브러진 괴물로 변질되는 과정 또한 서양을 빼다 박았다.
한국의 농촌문화는 여러 가지 측면과 바탕에서 서양사회와는 많이 다르다. 서양은 유목과 수렵이 주된 것이었지만, 한국 고대사회는 철저한 농경사회였다. 따라서 한국 농촌문화는 한국 철학사상 원류이자 종교의 근원이고, 정치와 인문의 샘물이라는 점에서 서양의 자연과학과 절대신앙이 지닌 특성과는 다르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이 다른 차이를 서양 우세주의로 매몰시켜버리고, 서양을 흉내 내면서 살아온 근대의 비극을 이제는 털어내야 하는데, 우리나라 대학의 학문 대부분이 서양에서 형성된 것을 수입하여 의존해 온 역사로 하여 우리는 점점 더 유사 서양인으로 변질되면서 시들어 간다.
한국 농촌문화는 과거나 미래의 것을 수탈하여 현재를 만들지 않고, 현재를 비추는 태양의 햇볕을 동력의 근원으로 살아왔다. 농사는 곧 햇볕과 비와의 관계로 진행되는 문화다. 그런데 도시문명의 화석연료와 그것을 태워서 생긴 에너지를 무한으로 쓸 수 있는, 소비주의적 권리가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는 착각은 종교적 믿음보다 더 강한 신념에 존재의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에 속하는 그 무엇이든 필요하다 싶으면 망설임 없이 끌어다 탕진해 버린다. 인위적 이론과 가치체계로 지은 철학적 전통, 관습도 부정하고 파괴해 현재 욕망을 충족시킨다.
한국의 농촌문화는 흙과 자연을 못자리로 삼아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한국인을 번창시켜온, 마치 '천지창조'의 완전함, 신성함을 기억하며 땅 위에 다시 펼쳐낸 듯한 우리나라 철학체계의 모체다. 농촌문화는 흙, 농사,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늙어 죽은 장소에서 비롯되지만, 거기에는 인종, 남녀, 신앙, 인문과 사회, 자연과학, 먹거리와 음식, 정치, 시장, 세계와 무역, 그리고 전쟁과 현실 너머의 시간까지 아우르는 신비가 아닌 현실이 발생,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귀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런 우리 농촌문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 도시문명이라는 자식놈의 패륜적 작태 때문이다. 그 작태가 정치로 작용하고 있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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