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르강 직선화로 수질 악화·수해
윈헨시의회·시민단에 재자연화 추진
1989년부터 8㎞ 복원에만 22년 걸려
이해 조정·합의 이끌어낸 저력 보여
지난 7월 2일부터 15일까지 독일의 여러 지역과 기구에서 에너지와 정치, 생태 공동체를 살펴보고 온 전희식 작가의 탐방기를 여섯 차례 싣는다. 전 작가는 후쿠시마 핵 발전소 폭발 직후인 2012년에도 열흘 동안 독일의 탈핵 프로그램을 취재하여 본보에 연재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이자르(Isar)강에 가는 날이다. 4대 강 사업으로 지금껏 논란을 벌이는 우리는 재 자연화(복원)된 이자르강을 만난다는 기대에 들떠있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시 트램으로 갈아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다가 다시 수영은 어려울 거라고 했다. 말이 바뀌는 걸 보니 이날 일정이 유동적인가 보다.
어떻든 상관없다. 내 복장이 수륙양용(?)이라서가 아니다. 그날그날 일정을 조율하며 상대측과의 섭외를 맡고 있는 담당에 대한 신뢰가 커서 그렇다. 함께 지낸 지가 열흘쯤 되다 보니 늘 최상의 판단과 선택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믿음이 쌓였다. 젊은이 중심으로 통역, 교통편과 길 찾기, 인원 점검과 장 보기, 사진과 글 기록 등 분야별 담당이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랐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재잘재잘 유쾌하게 걷고 또 걸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저 사람이 누구야? 저분이 왜 저기에? 한눈에 알아보았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예인? 아니다. 문화방송 엠비시(MBC) 노조 위원장이었고 해고자였다가 사장까지 지낸 최승호 피디였다. 내가 후원금을 내던 '뉴스타파'라는 로고가 큼직하게 새겨진 카메라맨도 함께였다. 뉴스타파의 다큐 제작과 우리의 답사가 이자르강에서 조우할 줄이야.
임혜지 박사. 그분과 이자르(Isar)강 옆을 4킬로미터나 걸으며 이자르강의 재자연화 이야기를 들었다. 이자르강은 뮌헨을 거쳐 도나우강으로 가는 289킬로미터의 강이다. 1900년대 초에 독일은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길고 긴 제방을 쌓았다. 지금 우리의 한강처럼 강의 양옆에 콘크리트 벽을 만들었다. 내세운 목적은 수질개선이었고 홍수 예방이었고 지하수 확보였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들이다. 4대 강 사업의 판박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4대 강 악몽이 살아나는 이때, 우리는 그 이자르강에 간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반대였다. 수질이 나빠졌고 지하수는 고갈됐다. 심지어 홍수 피해도 심해졌다. 완충지대가 없는 인위적인 직선 수로와 수초와 모래사장이 사라진 강의 시멘트벽은 홍수 피해를 키웠다. 뮌헨 시 의회와 시민단체, 시민 등은 '이자르강 재자연화 사업'에 착수했다. 1989년이었다. 이걸 알면서도 이명박 정부는 4대 강 사업을 벌인 것이다.
뮌헨시는 10년 동안이나 철저한 조사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고는 12년에 걸쳐 8킬로미터의 구간을 복원했다. 독일에서 건축사로 공학박사가 되어 30여 년을 독일 고건축 현장에서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작업을 한 임혜지 박사의 생생한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8킬로미터 복원에 총 22년이 걸렸고 458억 원이 들었다고 해서 우리는 입이 딱 벌어졌다. 4대강이 복원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들까 싶었다.
이자르강 복원은 대성공이었다. 여울과 모래톱이 생겨났다. 포장하지 않고 강변의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강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살아났다. 우리가 갔을 때 많은 시민이 강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거의 다 걸어서 왔거나 자전거로 왔다. 임혜지 박사는 이를 인간과 기술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22년에 걸친 재자연화의 과정이 눈에 선했다. 시민 간의 이해충돌도 있었겠지. 이자르강에 기대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생존권 위협이 어찌 없었겠는가. 이미 보상금을 다 받아서 써 버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강의 복원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걸 조정하고 합의 보는 데에 걸린 22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길어 보이지 않았다. 멀고 험한 길을 무사히 완주한 '시민의 힘'을 느꼈다.
그 시민의 힘을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주도이자 독일에서 6번째로 큰 도시 슈투트가르트. 이곳에서 17년째 텐트를 치고 <슈투트가르트21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우리는 월요일 주례 집회를 같이했다. 우리 쪽 대표단이 단상에 올라 연설도 했다. 마침 우리 일행 중에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반대 대책 위원도 있었기에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경계가 컸다.
여기서 시민의 힘을 느꼈다는 것은 다음 사실에 있다. 슈투트가르트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중부 유럽의 동서남북 방향으로 허브와 연결로를 더 효율적으로 재정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이 프로젝트는 부동산 수익을 올리는 목적과 함께 유서 깊은 중앙역을 모두 철거하고 수백 년 된 나무들을 자르는 문제가 있었다. 이 활동으로 지난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전체 주민 투표를 했는데 근소한 차이로 공사 진행이 가결되어 버렸다.
투표 과정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시민단체는 계속 반대 집회를 하고 반대 활동으로 집권한 녹색당은 투표 결과를 받아들여 공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우리는 집회 다음 날 시청사를 방문하여 녹색당 시장과 관계자를 면담했다. 농성하는 시민단체와 녹색당은 서로 상대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태도였다. 이렇게 공사를 저지하는 반대 집회를 한국에서 17년이나 계속한다면 공무집행방해를 비롯하여 집시법 등 민형사 소송이 줄줄이 엮였을 것이다. 그래서 참 대단한 독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정명부식 선거제 극단 대립 없는 연정체제 구축
독일의 시민사회와 정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와 타협은 어떻게 가능할까? 곧장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정치와 노사갈등, 남발되는 고소·고발. 오늘도 우리나라의 거대 양당은 서로 헐뜯기 바쁘다. 자기 자신에게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험담을 상대 정당을 향해 거칠게 쏘아붙인다. 왜 그럴까?
인간성 문제인가, 습관인가? 아니라고 본다. 정치 구조상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승자독식의 1등 독차지 선거제도와 황제 같은 대통령제가 핵심이다. 이른바 싹쓸이 도박판 같은 정치제도가 문제라는 것은 독일의 비례대표제와 정당투표제로 대표되는 연정(연합정부)은 현재의 독일을 이루는데 절대적인 장치가 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가 직접 분석해 본 비교 자료다. 한국은 현재 정당별 국회의원 수가 더불어민주당 173석, 국민의힘 103석, 정의당 6석이고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이 각 1석이다. 보수 정당 두 곳은 총 의석 수 300석의 94%를 차지하고 있다. 근데 두 정당은 21대 총선 때나 지금이나 합산 지지율은 기껏 67% 내외다. 67% 지지로 94%의 의석을 가져가니 도둑질도 그런 도둑질이 없다. 우리 선거법과 정당제도가 그런 도둑질을 보장해 준다. 그 법은 국회의원들이 만들었다.
독일을 보자. 2021년 연방의회 선거 결과다. 사민당 206석, 기민/기사연 197석, 녹색당 118석, 자민당 92석, 대안당 83석, 좌파당 39석이다. 총 736석이다. 39석 이상 되는 정당이 7개나 된다. 그러니 서로 협상하고 양보하고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함부로 다른 정당을 헐뜯거나 막말했다가는 고립된다. 온전한 비례대표제와 정당명부식 선거제도 덕에 시민들의 지지율이 그대로 의석 분포율에 반영된다.
독일 녹색당은 1980년에 창당해 3년 뒤인 1983년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내가 당원으로 있는 한국 녹색당은 창당한 지 12년이 됐다. 의석이 단 하나도 없다. 내년 22대 총선에서도 단 1석도 장담 못 한다. 위의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1석도 기만적인 비례대표 당선자들이다.
벌써 내년 총선을 앞두고 흑색선전과 가짜 뉴스를 동원하며 표 따먹기에 돌입하는 형국이다. 정치제도의 개혁이 시급해 보인다.
/전희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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