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의 5000명 규모 마을
주민자치 통해 생태친화적 조성
자전거 트램이 교통 대부분 차지
시민 선뜻 내놓은 공유공간 다수
녹색당 집권기 에너지전환 이뤄
지난 7월 2일부터 15일까지 독일의 여러 지역과 기구에서 에너지와 정치, 생태 공동체를 살펴보고 온 전희식 작가의 탐방기를 여섯 차례 싣는다. 전 작가는 후쿠시마 핵 발전소 폭발 직후인 2012년에도 열흘 동안 독일의 탈핵 프로그램을 취재하여 본보에 연재한 적이 있다.
도시 근교나 중소도시에서 정원이 딸린 집에 살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따질 게 많다. 시장이나 마트가 가까운가. 목욕탕이나 도서관, 농협 등 공공시설은 있는가. 병원이나 약국, 근처에 산책을 할 만한 공원이 있는지도 본다. 요즘 맨발 걷기가 유행이니 방부목 덱 길보다는 흙길이면 좋겠다.
또 뭐가 있을까? 좋은 이웃? 그렇다. 임의롭게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이웃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다들 자신이 누군가의 좋은 이웃이 되어 주겠다는 마음보다 좋은 이웃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여기까지는 옛날이야기다. 요즘은 다르다. 중요한 한 가지가 추가된다. 이 모든 것이 자동차가 아니라 걸어갈 수 있거나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이길 바란다. 자동차로 씽 달려가는 걸 피하려 한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교양인의 기본 선택이다. 환경 좋은 데를 찾기보다 자연환경에 좋은 이웃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의 보봉(Vauban)마을에 갔다.
"자동차 없이 살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애초부터 이 도시는 그걸 기본으로 설계했습니다. 자동차가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장터, 유치원, 학교, 집, 일터, 병원, 농장 등과 무엇보다도 중요한 발전소 등을 조화롭게 배치한 것입니다."
우리를 안내했던 프라이부르크시의 보봉마을 홍보 담당 공무원의 말이다. '프라이부르크 그린시티 투어' 사이트에 들어가면 그룹으로 안내 신청을 할 수 있다. 1시간 반에 134유로이다. 겨우 인구 5000명의 보봉마을. 탄소중립(carbon neutral) 마을, 탄소제로 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마을 인구보다 수백 배 많은 외지(외국)인이 방문하는 이런 마을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 과정도 모범적이다. 전문가와 시민들과 공무원이 힘을 합쳐서 보봉 포럼을 만들어 에너지, 교통, 경제, 주택, 교육, 주민공동시설을 미래지향적이고 생태 친화적으로 뜻을 모아갔다고 한다. 보봉 포럼이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보봉 시민 자치 조합'이 결성되어 잘 운영되다 보니 주민자치의 본보기가 되었다.
마을 집들은 3~4층을 넘지 않았고 자동차는 단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대신 자전거가 두세 대씩 있었다. 자전거도 각양각색이다. 아이를 보행기처럼 태우는 자전거 트레일러가 흔했다. 핸들 앞으로 툭 튀어나온 짐칸이 딸린 자전거도 있다. 자전거 신호등이 따로 있을 정도다. 집들은 정원이 개방되어 있어서 공유 정원이라고 해도 될 듯싶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3박이나 하면서 프라이부르크 대학, 도서관,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성당 옆에 있는 제주 막걸리 집도 순회했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숲이 울창해서 흑림으로도 불리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도 갔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생태 마을들을 다녀 본 나는 보봉마을에 관심이 컸다. 그래서 자주 갔다. 숙소에서 걸어가면 2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보봉의 트램(독일의 교통 체제를 따로 얘기할 텐데 트램은 지상과 지하를 자동차와 같이 다니는 도시에 최적화된 전철이다) 정거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 정거장을 많이 이용했다.
한번은 정거장 근처에서 개인 집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현수막 끝부분에는 토끼 그림도 있었다. 얼른 구글 이미지 번역기를 대봤다. "휴게 공간 없는 도시는 광대 없는 서커스단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냇물도 있는데 더 많은 녹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반가웠다. 무엇무엇을 '하라!'라든가, '결사반대'라는 글귀에 익숙한 내게 신선했다. 시구절 같았다. 밋밋해 보이지만 부드러운 설득력이 있다. 보봉마을은 현수막 글귀마저 달라 보였다.
시민들은 요구만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보봉마을의 공유 공간의 일부는 자동차가 없는 시민들이 자동차 주차 공간으로 하려던 부지를 내놓아 공공의 레크리에이션 장소로 쓰는 곳도 있을 정도다. 공공 목적으로 땅을 내놓는 시민정신이 돋보인다(보봉마을 5번 지구).
프라이부르크가 생태도시로 우뚝 서고 독일 사람들이 가장 이사 가고 싶은 곳으로 꼽히게 된 것은 독일 녹색당이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집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16년 동안 녹색당의 '디터 잘로몬' 시장이 재임하는 기간에 패시브 하우스(외부 에너지 없는 에너지 자립 주택), 플러스 하우스(에너지 자체 생산이 남아서 파는 집), 열 병합 발전소가 들어섰다.
관공서의 업무용 차량 외에는 아예 차량 통행을 금지했는데 자영업자들과 영업소들이 초기에는 반발했으나 장기적으로 매출이 올라가면서 지금은 자동차 없는 마을 확대를 요구한다고 한다. 놀이터와 녹지가 많아 아이 키우기에 좋다. 차가 없어서 안전하고, 공기가 맑다. 주택가에도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서 시원하다. 녹색이 눈 피로도 없앤다. 원목과 그물,모래 등으로 만들어진 자연 놀이터가 곳곳에 있다. 쉬어 가기 좋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정겹다. 그러니 이 마을 인구수가 계속 늘어난다. 그 유명한 헬리오트로프(Heliotrop·비 오는 날에도 해가 있는 쪽으로 도는 자전형 태양전지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고장인 장수군 인구감소 지역 대응 인구정책 추진위원회 민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지난달 회의에서 보봉마을과 같은 개념의 생태 마을 조성을 발제문까지 만들어 제안했다. 모든 농촌 지역들이 인구 감소 대책으로 편의 시설을 만들고 출산 지원이나 청년 유인책을 앞다투어 내놔도 효과는 없어 보인다. 인구를 늘리기보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 없고, 다투고 갈등하지 않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보봉과 같은 기후 위기 대응 생태 마을이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본다.
/전희식 작가
이 놀라운 도시, 어떻게 생겼나.
프라이부르크나 보봉마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많은 정보가 있다. 유튜브에도 많다. 나는 마을의 구성도와 주요 공간의 배치, 그리고 운영을 살폈다. 아래 조망도를 중심으로 마을 구성을 보자.
1구역 : 마을의 자치구 센터다. 문화센터 역할. 어린이 모험농장도 있다. 지역협회가 이 센터를 운영한다.
2구역 : 알프레드 도불린 광장. 커다란 광장은 지역의 활기 있는 중심이 되고 있다. 주민들이 행정의 의견을 받아들여 매주 수요일에는 장터가 된다. 자유시장이다. 주민들이 수제품을 가지고 나와 거래하는 소통의 공간도 된다.
3구역 : 패시브 하우스 단지. 살림집과 일터가 통합되어 있다. 1999년 준공. 성공적인 공존 추구 생활과 일을 결합했다. 현재는 시민 주도로 30개 이상의 단지가 준공되었고 한 지붕 아래 생활과 일을 조화롭게 결합한 모델로 꼽힌다.
4구역 : 열병합 발전소. 보봉 주민들에게 열과 전기를 공급한다. 열펌프와 열저장 장치가 있다. 재생연료인 목재를 사용한다.
5구역 : 버드나무 궁전이 있는 녹지. 차 없는 주민들이 자금(재정)을 지원해서 녹지공간 확보. 공공 레크리에이션 장소로 활용. 이웃 차고를 위한 예비 공간 역할.
6구역 : 그린시티 호텔 '보방'. 현대건축과 생태마을 사회적 기준을 결합.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의 절반을 제공.
7구역 : 선십(sun ship). 세계 최초의 플러스에너지 상업용 건물이다. 주변에 주택과 작업장, 상점을 결합한 다용도 개념의 지역이다.
8구역 : 지역 차고. 보방(Vauban)주차장. 차 가진 투숙객을 위한 주차 공간.
9구역 : 플러스에너지 주택 단지.
10구역 : 헬리오트로프. 세계 최초의 플러스에너지 하우스. 소비하는 에너지의 3배 생산. 회전 메커니즘으로 햇볕 포착.
/전희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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