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잇따르는 요즘…시민 불안 가중
범죄 저지르고도 심신미약 주장하면 어쩌나
심신미약 인정되려면 정신질환 입증돼야
재판부, 묻지마 범죄 강경 대응 입장

서울 신림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을 일으킨 조선(33) 씨는 체포 당시 “마약(펜타닐)을 복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마약 간이시약 검사를 했으나 음성이었다. 조 씨는 “술을 마셨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범행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으며, 10년간 정신질환 치료 병력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조 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면서 감형받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부터 ‘묻지 마 살인’, ‘정신병원 입원’ 등을 검색하면서 준비했었고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그는 계획범죄를 인정했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하나같이 ‘심신미약’을 주장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심신미약으로 봐야 할까. 심신미약 상태에 범행을 저지르면 감형해 줘야 하는 걸까. 도내에서 일어난 묻지 마 범죄이자 법정에서 심신미약을 주장한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과 거제 신오교 살인 사건을 살펴봤다. 

4명의 사상자를 낸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4명의 사상자를 낸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 = 2019년 4월 17일 오전 4시 25분 화재 경보음이 진주시 가좌동 가좌주공아파트를 흔들었다. 불길을 피해 달아나던 사람들은 복도와 비상계단에서 안인득(42) 씨를 마주했다. 안 씨는 양손에 쥔 흉기를 휘둘렀다. 불은 30분 만에 꺼졌지만 사망자 5명과 부상자 17명이 나왔다. 

법정에 선 그는 자신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늘어놨다. 검찰은 철저한 계획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으나 변호인은 심신미약으로 방어했다. 안 씨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9명 가운데 2명만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사형을 주장한 배심원이 8명이었다.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형사부는 2020년 6월 24일 살인, 살인미수, 현주건조물방화치상 등 9개 혐의로 기소된 안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원심에서는 사형이 선고됐지만 상고심에서 깨졌다. 재판부가 심신미약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안 씨는 2010년에도 지나가던 대학생에게 흉기를 휘둘렀다가 구속됐다. 그는 지나가던 주민에게 욕을 하거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의 현관문에 오물 등을 섞은 액체를 바르는가 하면 주거지 인근 호프집에서 쇠망치를 든 채 사람들을 때렸다. 자활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을 폭행하는 등 사건의 전조증상은 오래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오랜 시간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심신미약 주장은 쉽게 인정됐다.

방화 살인범 안인득. /연합뉴스
방화 살인범 안인득. /연합뉴스

◇거제 신오교 살인 사건 = ㄱ(20) 씨는 2018년 10월 4일 오전 2시 36분 거제 고현동 신오교 아래 선착장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때 폐지를 줍던 50대 여성이 눈에 보였다. ㄱ 씨는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니면서 때렸다. 무자비한 폭행은 30분 동안 이어졌다. 

그는 여성의 옷을 모두 벗기고, 차량이 지나다니는 도로 한가운데 눕혔다. 여성은 뇌출혈과 턱뼈 골절 등으로 사망했다. 여성은 키 132㎝, 몸무게 31㎏으로 왜소했으며, 지적장애가 있었다. ㄱ 씨는 평소에도 여성을 괴롭히곤 했다. 

ㄱ 씨는 주변에 우울증과 무력감을 호소했다. 주변에서 술을 자주 마셨다는 진술도 나왔다. 그는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자신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보인 행동을 보면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ㄱ 씨는 정신질환이 뚜렷하게 입증되지 않아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되지 않았다. 1심에서 재판부는 ㄱ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다. 그와 검사 모두 양형이 부당하다고 항소했으나 2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ㄱ 씨는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어머니·누나와 함께 살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평범하게 자랐다. 이 사건을 맡았던 김광주 변호사(변호사 김광주 법률사무소)는 “어떻게 보면 순박해 보이기도 했던 그가 이런 범죄를 저지른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며 “순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기 분노에 휩싸여서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 사회 자체가 엄청난 분노를 안고 살고 있다”며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스스로 계급사회라 칭하지는 않지만 가치의 기준이 도덕이나 정의보다는 물질에 많이 치우친 세태가 이런 묻지 마 범죄를 양산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거제 신오교 살인사건을 추모하는 현장. /경남도민일보DB
거제 신오교 살인사건을 추모하는 현장. /경남도민일보DB

◇심신미약, 받아들여야 할까 = 심신미약은 말 그대로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법정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이 심신미약을 주장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는지 확인하고자 범행 전후의 행동까지 모두 살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 

김민오 변호사(변호사 김민오 법률사무소)는 “과거에는 범행 당시 술을 마셔서 만취 상태였다고 하면 심신미약으로 인정되기도 했다”며 “이제는 재판부가 심신미약 주장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정신질환이 있어서 실제 병원에서 진료받은 기록이 있어야 하고,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정신질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며 “범행 전후에도 정상적이라 보기 어려운 행동을 했는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대검찰청은 2017년 폭력범죄에 엄정 대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초범이거나 동종 전과가 없는 경우, 피해자와 합의를 했으면 양형 사유가 된다. 대검찰청은 묻지 마 범죄는 예외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자체로 양형을 무겁게 하겠다는 얘기였다. 

이런 추세에 따라 묻지 마 범죄 재판에서 피고인도 심신미약을 주장하지 않고, 재판부도 엄벌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

ㄴ 씨는 2020년 5월 30일 오전 12시 50분 거창군 거창로터리 인근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승용차를 몰고 다니다가 길을 걷던 20대 여성을 보게 된다. ㄴ 씨는 아무 이유 없이 그를 잡아끌어 넘어뜨리고, 주먹으로 때렸다. 피해 여성은 전치 8주를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재판부는 ㄴ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길을 가던 피해자를 아무 이유 없이 때려 상해를 가하는 묻지 마 범행을 저질렀다”며 “묻지 마 범행은 피해자의 법익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도 누구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언제든지 범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엄벌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판시했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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