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관계성·변화 흐름에 순응하는 농사
이해타산 아닌 근원적 영역으로 회복을
'망종(芒種)'은 자연의 변화에 때맞춰 농사(農事)하려는 옛사람들 마음의 시간표에 적혀 있는 비밀신호였다. 자연의 변화를 예감하여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옛사람의 우주철학적 발견이기도 했다. 농사는 하늘의 일을 땅에서도 이루어내려는 신앙적 요소가 들어 있어 자못 상서롭기도 했다. 농사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끊임없는 관계와 변화로 이루어진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위의 여정이기도 해서, 단순한 육체적 노동과 약간의 먹거리를 장만하는 행위로 규정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농토에서 거두는 수확물이 먹고사는 양식이 되고, 시장에서 농산물 아닌 다른 생활에 드는 물건을 장만하는 데 필요한 대체수단이 되고, 국가 영역에서는 국가의 경영과 유지를 위한 정치 목적의 필요품이며, 특히 전쟁을 치르는데 꼭 필요한 생존, 승리의 조건이기도 했다.
정치 영역이 확대되면서 농사의 신앙적 요소가 얼마간 옅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신앙적 요소는 본디 모습으로 회복되어 농사짓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감싸주었다. 긴긴 시간 동안 농사하는 사람들은 부족한 양식과 추위 막아 줄 옷감 부족으로 늘 가난과 배고픔과 추위의 두려움 속에 살았지만,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감싸며, 나누는 마음으로 행복했다. 자연의 관계성과 변화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깨닫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농업(農業)이 경제적 조건을 중요하게 여겨 이해타산을 앞세워 '경제발전'이라는 정치적 수단으로 변했고, 이른바 부(富)의 축적을 위한 일차적 수단으로 식량가격의 조작과 조절정책으로 급변했다. 이때부터 농민들의 구조적인 노동력과 이익 수탈이 감행되었다. 이익은 노동력과 원가를 더해서 생산된 결과물을 시장에서 판매해 자본가의 손에 쥐어지는 결과물이다. 농민이 생산한 곡물의 판매상은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곡물 생산자인 농민은 구조적 빈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곡물상의 착취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금 시대 우리는 신앙만으로도 경제만으로도 행복하기 어려운 세상에 던져진 꼴이다. 그러면서 농사가 지닌 작디작고, 흔하디흔하며, 하찮게 여겨온 것들끼리의 관계와 변화로 자연과 우주가 시작되고 유지되는 저 신비스러운 힘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불행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출현과 성장과 노화, 죽음은 물론 모든 생명체들의 시작과 끝남에 이르기까지 눈여겨보면, 작고 하찮아 보이고, 흔해 빠진 것들의 복잡한 관계망 형성과 변화라는 에너지의 이동을 통해서 자연이 되고, 우주가 되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농사'가 신비와 기적의 상징이며, 신앙에서 종교까지 아우르는 정신의 근원이 그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경제적 이해타산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