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학대, 아동학대 중 가장 큰 비중
"피해 아동 진술이 재판에서 중요하게 작용"
애매한 아동학대 기준, 어떻게 봐야 하나
때리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를 '아동의 복지나 아동의 잠정적 발달을 위협하는 넓은 범위의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신체적이든 정서적이든 아동의 발달을 저해하는 행위라면 학대다.
202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주요 통계'를 보더라도 정서적 학대가 32.8%(1만 2351건)로 가장 많다. 정서적 학대는 다른 학대(신체 학대·성적 학대·방임)와 함께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 학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정될까.
◇정서적 학대 기준은? = 창원지방법원 제1형사단독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 씨에게 벌금 300만 원,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그는 김해의 한 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
ㄱ 씨는 2022년 5~7월 학생 ㄴ을 꼬집어 공개적으로 학대했다. 그는 "너희는 ㄴ이다. 왜냐하면 못생겼으니까", "프린터를 가져오지 않았으니까 ㄴ이다"라고 말했다. 수업에 사용할 뽑기 용지에 '꽝' 대신 'ㄴ'이라고 쓰기도 했다.
지난해 4월 6일 창원지방법원 제7형사단독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으로 재판에 넘겨진 ㄷ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명령했다. ㄷ 씨는 2020년 7월 저소득층 자녀 대학생 멘토링 사업을 하면서 만난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
그는 2020년 9월 피해 아동의 어머니와 다투면서 멘토링을 그만두게 됐고, 그해 10월 15일 피해 아동에게 "너는 기초생활수급자", "공부도 못해 돈도 없어 못생기고 뚱뚱해", "엄마 닮아서 공부를 못하는구나"라고 4회에 걸쳐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재판부는 위 사례 모두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를 했다고 판단했다. 박미경 경남아동보호기관장은 "정서적 학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서 학대 후유증을 피해 아동 혼자 감내해야 한다"며 "피해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아 주변 사람 개입이 늦어지는 특징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관장은 "아이들이 정서적 학대에 노출되면 자존심이 낮아지는 등 학대 후유증이 누적될 수 있다"며 "전교 1등을 하던 아이가 엄마를 살해하고 몇 달 동안 방치한 사례도 아동학대가 누적돼서 일어난 일"이라고 덧붙였다.
◇항소심에서 뒤집힌 아동학대 = 김성돈 변호사(법무법인 대한중앙)는 "재판부는 성인의 입장이 아닌 피해 아동 처지에서 아동학대 사건을 판단한다"며 "피해 아동의 진술이 재판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뜻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진술이 오히려 피의자 가해를 덮는 사례도 있다. 창원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으로 재판에 넘겨진 ㄹ 씨 항소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무죄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ㄹ 씨가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고 봤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ㄹ 씨는 2021년 4월 사천의 한 공원에서 피해자에게 "너 몸매 예쁘고, 키 크고 예쁘니까 이리 와봐라"고 말했다. 당시 13살이었던 피해자에게 5만 원을 주려고 했다. 피해자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하지는 않았지만 공포심과 불쾌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ㄹ 씨가 피해자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성적 행위를 연상할 표현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며 "피해자와 다른 학생들과 신체 접촉도 없었다"면서 원심을 파기했다.
김유순 경남여성인권상담소장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써야만 성적 학대가 인정된다는 것은 피해자가 피해자답게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피해자 몸매를 평가하기 위해 몸을 훑는 것 자체가 성희롱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도 13살짜리 아이들이 쓰는 단어가 아니므로 진술에서 나오기도 어렵다"며 "어른들이 사용하는 법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적 학대가 아니라고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애매한 정서적 아동학대 = 정서적 아동학대의 피해는 크지만 확인이 어렵다. 넓은 범주에서 인정하기 때문에 판단 기준도 애매하다. 아동학대 혐의로 법정에 선 가해자들이 '훈육' 목적이라고 말하면서 처벌을 피하는 사례도 많다.
박 관장은 아동학대 가해자로 많이 지목되는 부모들의 양육 지식이 부족한 문제를 짚었다. 그는 "아이가 들었을 때 위협적이고, 자존심이 무너지는 훈육은 훈육이 아니라 학대"라며 "아이를 가르쳐 주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모라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고 위협하면 그걸 당하는 상대는 사랑이라 느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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