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원한 담아두면 행복 멀어질 뿐
참회·용서해야 평온 되찾을 수 있어

우리 삶은 매우 작고 하찮은 것들로 이뤄진다. 행·불행도 지극히 사소한 것이 그 바탕이다. 그 사소함의 밑바닥에 욕심이 깔렸다. 권력욕구가 채워지는 것을 막는 것이 있다면 먼저 욕하고 비방하다가 폭력을 쓴다. 폭력은 전쟁의 씨앗이다. 전쟁은 인간을 증오와 원한으로 내몰고, 증오와 원한은 행복을 빼앗아버린다. 문제는 욕심이다. 인간의 모든 것이 욕심을 어찌할 것인가에 달렸다.

신라 때 원효(617~686) 스님과 진표(760년대 활동) 스님이 삼국통일전쟁이 끝난 뒤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 당한 백제와 고구려 생존자들에게 온몸으로 외쳤던 '행복론'을 간추려 전해보려 한다.

원효 스님은 신라 귀족불교의 화려하고 정치적인 보호막을 찢고 나와서 12년 동안 백제, 고구려 땅을 돌면서 신라가 저지른 만행을 용서하라고 외쳤다.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남편, 자식을 죽이고, 삶을 지탱해주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불태워버린 처절한 폐허에서 울부짖는 백제, 고구려 생존자들에게 신라를 용서하라고 외치며 돌아다니는 원효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원효는 돌멩이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닦거나 피하지 않았다. 살해 위협을 줄곧 받으면서도 12년 동안 광활한 고구려 땅과 피에 젖은 백제땅을 밤낮없이 걸으면서 신라를 용서하라고 외쳤다. 그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백제·고구려 생존자들이 마음속에 신라를 향한 증오와 원한을 담아두고는 잠시도 평온하고 행복할 수 없으므로 용서하라는 것이었다.

똑같은 말을 12년 동안이나 했다. 지금 내가 원수를 용서하면, 그 원수가 스스로 참회할 수 있는 매우 큰 힘을 선물하게 되고, 이쪽저쪽이 '화쟁(和爭)'의 공간에서 영원할 수 있다는 결코 쉽지 않은 설법을 했다. 얼핏 예수님을 보는 것도 같다.

또 한 분은 진표 스님이다. 신라 경덕왕 때는 760년 앞뒤에 살았다. 그 760년은 이른바 삼국통일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진표 스님은 본디 백제 사람이다. 백제가 신라공격으로 멸망한 뒤 경주에서 수행하다가 원효의 화쟁철학을 듣고 깨닫고서 고향 전라도 금산사로 돌아와서 참으로 전설 같은 삶을 살았던 스님이다. 그가 고향 백제인들에게 외친 것은 '과거도 내 탓이오, 현재도 내 탓이오, 미래도 내 탓이다!'라는 말이었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 있고, 그 관계의 절반은 내 탓으로 생겨났으므로, 신라를 증오·원망하면서 불행하게 살지 말고, 내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공격할 생각을 한 것이고, 그 공격의 근원적인 책임은 나한테 있으니, 끊임없이 참회하며 원한과 미움의 감정을 녹여 없애라는 법문이었다. 이 법문 또한 고향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와 좌절감을 먼저 드러내게 했다. 엄청나게 위협을 받고, 모진 폭행도 겪었다. 그러면서도 '내 탓이오'는 깨달음의 목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다시 2023년 현재로 돌아와서, 우리 앞에 쌓여 가는 저 증오와 원한의 태산 같은 무게가 우리의 행복을 힘들게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옛 백제·고구려 생존자들이 원효를 박해하고, 진표를 두들겨 팼던 그 안타까움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영원한 진리에 나는 전적으로 귀의한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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