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한결같이 아내 바라기 대구 씨
필순 씨에게 남편 있는 지금이 극락
필순 씨는 술도가를 하던 아버지의 여자밝힘증이 저지른 과오의 설움덩어리였다. 때로는 오물덩이처럼 이리저리 아이고 떠밀려 다니면서 술도가 종년처럼 자랐다. 필순이란 이름은 아비 말에 반드시 복종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18살 되던 해에 남의 집 머슴살이하던 순한 총각한테 시집가서 올해로 66년 함께 산다. 필순 씨는 84세, 남편 김대구 씨는 87세. 필순 씨는 허리가 기역자인데, 보행보조기 없이는 나다니지 못하며 김대구 씨는 무릎과 허리가 탈이 나서 걷지 못해 바깥나들이 때는 전동차가 있어야 한다. 집안에서도 앉아서 움직여야 하고, 목욕도 필순 씨가 시켜주어야 한다. 딸만 다섯을 낳아 모두 출가시켰다. 논 800평과 세 칸짜리 시골집 한 채, 낡은 경운기 1대가 전 재산이다. 대구 씨는 28년을 남의 집 머슴살이로 농사를 지었는데, 필순 씨가 살림을 야무지게 살아서 논 너 마지기를 장만할 수 있었다.
대구 씨의 체력이 날이 갈수록 마르게 되고, 시력이 가고, 귀도 가고, 정신도 자꾸 간다. 필순 씨가 농사를 돌보려고 집을 나서면 대구 씨가 금방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한다. 비가 올 때나 추울 때도 그렇게 따라와서 필순 씨가 기역자 허리를 꺾고 일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먼저 집에 들어가라 하면 몹시 서운하고 두려운 표정이다. 어떤 때는 혼자 전동차를 운전해서 가다가도 돌아온다. 무섭단다.
거의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이라서 필순 씨한테 한번 물어보았다. 영감님이 너무 따라다니니까 불편하지 않으냐고.
대답은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다.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필순 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고, 짜증도 났단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영감님을 혼자 집에 두고 나가거나, 아기 돌보듯 해주지 않으면 후회될 것 같았다고 했다. 혼인하여 남의 집 아래채 방 한 칸을 얻어 살 때 대구 씨는 같은 마을이 아닌 제법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머슴살이를 하기도 했는데, 단 한 번도 집에 오지 않고 바깥에서 잠을 잔 적이 없었다고 했다. 늦게 오면 항상 아내가 무서워하거나, 걱정하는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어쩌다 먹을거리가 생기면 반드시 싸와서 아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좋아했다.
아들 하나를 얻고 싶었지만, 딸만 다섯을 낳았어도 단 한 번 서운해한 적 없었고, 그 숱한 고생을 하면서도 딸들을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면서 딸들에게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라고 진심을 담아 가르쳤단다. 어디 먼 곳을 다녀올 때마다 반드시 아내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며, 비록 싸구려일지라도 옷가지를 사와 선물했다고 한다. 둘이서 밥상을 마주하면 단 한 번도 먼저 먹는 일이 없고, 꼭 아내를 챙겨서 같이 나눠 먹으면서 66년을 살아왔다고 했다. "나이들수록 고맙게 느껴지지요. 날 혼자 두지 않으려 애썼고, 함께 내외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극락보다 더 좋다고 생각되지요."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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