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경남을 읽다 (10) 이옥의 패관소품에 담긴 합천 풍경

고백하건대 나는 합천 여행 불매 중이었다. 가야산과 해인사만으로도 여러 번 가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2007년부터 발길을 뚝 끊었다. 합천군에서 '생명의 숲'을 전두환의 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바꾼 게 그해이다. 전두환의 업적을 기린다고 했다. 학살자를 기리겠다고 발상한 당시 군수가 한나라당 심의조이다. 욱했고 감정 조절에 실패했고 급기야 선언했다. '일해'란 이름이 있는 한 합천에 발을 딛지 않겠다! 나의 선언이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랐으나, 예상대로 영향력은 전혀 없었다. 키보드워리어도 못되는 깜냥이라 이미 예상했던 바이긴 했다. 여하튼 이젠 합천 여행 불매를 중단했다. 나의 불매가 영향력이 없어서 10여 년 동안 순고하게 지켜온 불매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합천을 다시 가게 된 까닭은 이 글 때문이고, 5월이기 때문이고, '이옥' 때문이다.

이 글은 연재하는 글이다. 때가 되면 어떻게든 써내야 한다. 출판인들은 원고를 보내는 것을 출고한다고 하더군. 좀 있어 보인다. 언제가 되든 합천에 대한 글을 출고해야 하니 이왕이면 5월에 답사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올해 5월은 좀 특별하다. 지난해 11월에 광주의 학살책임자 전두환이 죽었고, 앞서 10월에는 전두환의 동료 학살자 노태우가 죽었다. 학살자의 두목격인 자들이 죽었으니 이제는 좀더 정의로워질 때도 되었다.

합천 가는 길에서 볕은 따스하고 산은 연두연두했다.

◇글로 벌한 정조와 글맛을 알아버린 이옥 = '이옥'은 왕으로부터 문체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 이옥을 미워한 왕은 개혁 군주로 평가되며 대왕으로까지 불리는 정조이다. 정조는 유행하는 패관소품체의 글을 걱정하며 고문체로 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규장각을 설치하고 패관소설과 잡서의 수입을 금지하는 등 문체반정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패관소품의 글을 쓴 이들에게 스스로를 꾸짖는 자송문을 지어 바치게 했다.

김조순은 재빠르게 자송문을 지어 바쳤고 정조는 흡족해했고 김조순은 승승장구한다. 김조순은 세도정치의 시발이 되는 인물로 평가된다. 패관소품체의 원조 격으로 지목된 이는 연암 박지원이었다. 박지원은 죄가 너무 커서 자신의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다며 자송문을 안 쓴다. 현대로 상황을 옮겨 보면 학생이 '선생님, 제 잘못은 반성문으로 쓰기에 너무 많으니 반성문을 안 쓰겠습니다'라고 한 셈이다. 이렇게 박지원은 개겼고 정조는 이걸로 퉁쳤다(?).

 

정조 눈에 마뜩지 않던 이옥 글
합천으로 쫓겨 '군복무' 벌 받아
지역 자연·사람 등 이야기 담아

그런데 유독 정조는 이옥에게는 가혹했다. 임금의 거듭된 하교에도 문체를 고치지 않는다 하여 이옥을 충군하게 한다. 충군은 조선 시대에 죄를 범한 자에게 벌로써 군역에 복무하게 하는 제도이다. 1795년에 이옥은 복무하러 합천으로 오게 된다. 합천 삼가에서 1800년까지 충군하였다. 그 사이에 과거에도 응시하여 장원에 뽑혔으나 문체를 다시 지적받으며 꼴찌로 조정되었다. 충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는 했으나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했다.

<봉성문여 鳳城文餘>는 삼가에서 쓴 이옥의 글 모음집이다. 합천에서 사람, 자연, 기물 등의 이야기를 듣고 썼다. 이 문집에 실린 두 곳, 합천 8경으로 유명한 황계폭포와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외토리 쌍비를 보러 갔다.

▲ 황계폭포 전경. 합천군 용주면에 있다.  /조재영 기자
▲ 황계폭포 전경. 합천군 용주면에 있다. /조재영 기자

◇황계폭포 = 폭포에 도착해보니 큰 바위가 우뚝 솟아 병풍처럼 둘렸는데, 높이가 10여 길이나 되고 폭포가 바위 위에서 날아 내린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폭포가 거쳐 오는 길에 옛날에는 돌부리가 있어서 마치 기름장수가 기름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폭포 물이 멀리 날아가 더욱 기이하였는데, 주민들이 감사와 고을 원이 놀러 오는 것을 괴롭게 여겨 그것을 쪼아 무너뜨렸다"고 한다. 지금은 쪼은 흔적과 다녀간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어떤 곳이든 원래 정주하는 주민이 있다. 정주하는 사람과 들르는 사람은 다르다. 들르는 사람이야 어쩌다이겠고, 정주하는 사람은 맨날이겠다. 벼슬아치는 어쩌다 황계폭포를 구경 왔을 터이고 황계 주민은 맨날 벼슬아치들이 들이닥치는 격이었을 터이다. 벼슬아치들을 막아설 수 없으니 오는 원인을 제거해버린다. 쪼아 무너뜨렸다. 쪼아 무너뜨린 흔적을 찾아보았으나 전혀 모르겠다. 다만 지금도 '기름을 쏟아붓는 것' 같은데 '물이 멀리 날아가' 햇빛에 부서지며 무지개를 그린다면 맨날 보고 싶은 선경이었을 듯싶다.

이옥은 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종이 만드는 조지소(造紙所)가 많았다고 적었다. 글 쓰는 사람이었으니 하고 많은 것들 중에 조지소가 눈에 들어왔나 보다. 자실령과 두려암을 지나 돌아가려 했으나 동행한 이들이 지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자실령과 두려암이 궁금했으나 확인하지 못했다. 마중 나온 두려암 스님들의 도움으로 겨우 마을에 이르렀고 마채국과 밥을 먹고 힘을 차렸다고 했다. 마채국은 냉잇국이다. 나도 냉잇국이 먹고 싶었으나, 끼니때가 아니어서 아쉽다.

▲ 외토리 쌍비. 오른쪽이 글자 없는 백비다.  /문화재청
▲ 외토리 쌍비. 오른쪽이 글자 없는 백비다. /문화재청

◇외토리 쌍비 = 외토리 쌍비에 대한 글 제목은 '백비(白碑)'이다. 글을 간추려 옮겨 보면 이렇다. 삼가에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청백하고 염직한 행실이 많았다"라고 스스로 말했다. 이에 왕이 청렴하고 강직한 그를 위해 글이 없는 비를 세웠다. 글이 없더라도 그 사람을 칭송할 수 있기 때문에 비만 세우고 글을 짓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를 일컬어 '백비'라고 한다. 이렇게 써놓고는 이옥은 "일찍이 당나라 때 '몰자비'가 있어, 이 일과 유사하다고 들었으나 나는 고루하여 기억하지 못한다"라고 덧붙인다.

 

외토리 쌍비 중 글자 없는 백비
허우대만 멀쩡한 몰자비 닮아
폭압 포장한 '일해공원'겹쳐

사람들이 칭송할 만큼 널리 알려졌기에 글을 짓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알지 못했다. 글의 말미에는 백비가 몰자비(沒字碑)와 닮았다고 적는다. 몰자비는 허우대만 멀쩡하고 알맹이 없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글은 마음에서 비롯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글은 몰지비나 다름없다. 글 때문에 충군하여 합천에 온 이옥이다. 합천 백비에서 이옥은 무엇을 보았을까? 마음을 잃고 세도를 얻는 자와 글로 벌 받고 충군하는 자신?

합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백비에서 '일해'가 보였다. 5월 광주에서의 학살은 명백한 제노사이드였다. 그 학살의 원흉은 전두환과 노태우 패거리들이다. 그 분명한 사실에 침묵한 이들과 심지어는 대중의 눈을 가려 사실을 감추려한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왜곡하는 자와 선동하는 자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노태우 장례위원을 맡고 '최소한의 예의' 운운한다. 그 시절을 권위주의 시대였다고 에둘러 말하곤 하는데, 나는 이런 표현도 싫다. 명백히 폭압의 시대였다. 그럴싸한 말과 글로 뭉개려는 모든 시도들은 백비다. 허울만 그럴싸한 몰자비일 뿐이다. (또 욱했네.)

전각에는 효자비와 백비가 나란히 서 있다. 안내판에는 백비에도 글자가 있었는데 닳아 없어졌을 거라고, 효자비와 같이 있으니 효비가 아니었겠냐는 짐작을 적고 있다. 이옥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백비이니 말하는 사람마다 마음대로 얘기한다. 내 마음은 이옥 편이다. 비에 글자가 없으니, 가다 만 듯하고 하다 만듯하고 만들다 만 듯하고, 허우대만 멀쩡해 보인다고 할까. 여하튼 그렇다.

10여 년 만에 들른 합천의 하루는 매우 아쉬웠다. 가야산, 해인사, 최치원, 이주홍 등 합천의 장소와 인물의 이야기 속을 걸으려면 몇 날을 더 다녀야 할 듯싶다. '일해'란 이름이 없는 합천에서 몇 날을 더 머물며 놀고 싶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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