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 진정돼도 운동권 제한
격리되면 자립생활 불가능
정부 백신 접종 시기도 달라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263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1%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일상에서 그들을 잘 마주치지 못합니다.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곳, 할 수 있는 일들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못합니다. 비장애인이 느끼지 못하는 유무형의 장벽이 장애인들을 막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이러한 장벽을 더 두껍게 했습니다. 제41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유형이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 코로나19 탓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그들 사연을 들어봅니다.

19일 오전 9시 뇌병변 장애인 박재우(44·창원시 사림동) 씨를 자택에서 만났다. 박 씨는 인지장애는 없지만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거나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밖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일상생활 전반에서 활동지원사 보조를 받고 있다. 박 씨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갑작스레 닥친 코로나19 영향에서 모두가 어려움에 부닥쳤지만, 장애인들은 이중 삼중 불편과 차별을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그가 겪었던 가장 큰 상실감은 좋아하던 운동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는 경남장애인보치아연맹과 창원시장애인보치아연맹 소속 '보치아' 선수다. 보치아는 패럴림픽(국제 신체 장애인 체육 대회)에 정식으로 채택된 구기 스포츠로 대표적인 장애인 체육 종목이다. 가죽으로 만든 공을 던지거나 굴려 표적구에 가까이 붙일수록 점수를 얻는다. 거의 매달 경기가 있고, 10월에는 전국체전도 있어 일주일에 5일 정도는 체육관에서 연습에 매진하곤 했다.

▲ 복지관으로 향하는 박재우 씨.  /이창우 기자
▲ 복지관으로 향하는 박재우 씨. /이창우 기자

지난해 2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체육관들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그의 일상도 무너졌다. 처음에는 모두에게 닥친 재난인 만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산세가 꺾여 경남지역 사회적 거리 두기가 1.5단계로 내려갔을 때 비로소 비장애인과의 '운동권(운동할 권리) 차별'을 느꼈다. 자주 찾던 체육관이 자체 교육과정을 정상 운영하는 반면, 체육관 대관은 방역·위생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방침 탓에 보치아 연습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보치아연맹에서 활동지원사들을 관리·감독자로 인정해달라는 뜻을 전달했지만, 체육관 측은 인정하지 않았다. 박 씨는 "수영·헬스 등 체육관이 운영하는 교육과정은 자체 고용 인력으로 관리·감독이 가능하지만, 대관까지 관리할 인력은 없다는 이유였다"라면서 "비장애인들은 확산세가 꺾일 때마다 참아 왔던 운동을 할 수 있었지만, 나를 비롯한 장애인은 그렇지 못해 답답했다"라고 말했다.

19일 뇌병변 장애인 박재우(44·사림동) 씨가 창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실내 체육관에서 '보치아'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이창우 기자
19일 뇌병변 장애인 박재우(44·사림동) 씨가 창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실내 체육관에서 '보치아'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이창우 기자

지난해 초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던 상황도 잊을 수 없다. 정부가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으로 '공적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해 대리구매가 허용되기 전에는 장애인들도 약국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다. 박 씨는 "휠체어에 탄 채 경사로에서 줄을 서는 일도 힘들었지만, 막상 약국에 들어가려면 계단이나 턱이 가로막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어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백신접종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활동지원사를 포함한 돌봄종사자와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2분기 백신 접종 대상에 들어갔지만, 자립생활을 하는 장애인들은 그렇지 않아서다. 그는 "시설 밖 장애인들은 코로나 확진은 물론, 자가격리에만 들어가도 삶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며 "활동지원사 도움 없이는 반나절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만큼, 중증 장애인들에게 코로나19 감염은 비장애인, 심지어 시설 거주 장애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두려움"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29일부터 그는 주 2회 다시 보치아를 할 수 있게 됐다. 창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이 체육관을 다시 열어서다. 인터뷰를 마치고 체육관에서 보치아 공을 던지는 그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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