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강민첨 장군, 고향에 식수
고목까지 가는 산행길 다채로워
대숲 지나 눈 시리게 훤한 산세
마침내 나타난 너른 풍채 감흥
산청군 단성면을 한참 달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하동군 옥종면입니다. 지난번 사천시 곤명면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요. 옥종면은 이렇게 산청과 사천과 하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문득 어디를 기준으로 나뉘었나 찾아보니 덕천강입니다. 지리산 깊숙한 곳에서 발원해 남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지요. 지리산 일대에서 덕(德) 자가 들어간 지명은 거의 남명 조식과 관련됐다고 보면 됩니다. 덕천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청군 단성면에서 덕천강을 지나면 옥종면의 북쪽 두양리입니다. 두방산(斗芳山·569.7m) 아래 양지쪽에 있기에 두양(斗陽)이라 했답니다. 두방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정개산(520m), 서쪽으로 우방산(494m)이 감싼 골짜기에 마을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두양리에 마을이 크게 세 곳인데요, 정개산 끝자락에서 이어진 덕천강변에 숲촌마을이, 우방산 남쪽 산발치 양지바른 곳에 두양마을이, 그리고 골짜기 가장 깊은 두방산 자락에 두방마을이 자리 잡았습니다.
◇두양리 은행나무
두양마을을 지나 두양리 은행나무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두방마을에 닿기 직전 두방교 옆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오릅니다. 우방산 자락입니다. 이 안에 두양리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다니다 보니 옥종면에는 유달리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동군을 상징하는 군목(郡木)도 은행나무죠. 두양리 은행나무는 고려시대 은열공 강민첨(963~1021) 장군이 심었다고 합니다. 15세까지 진주 향교에서 공부를 하다 고향 옥종으로 돌아와 이곳에 은행나무를 심고 무술을 연마했다지요. 강 장군은 문과로 급제했지만 전공을 많이 세우면서 높은 벼슬에 오른 분입니다. 대표적인 업적으로 강감찬(948~1031) 장군과 함께 부원수로 참전해 거란 대군을 무찌른 일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하동에는 두 장군이 함께 등장하는 설화가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강민첨 장군과 함께 하동을 지나게 되었는데, 날이 어두워 읍내 시장터에서 머물렀답니다. 그런데 밤에 모기가 너무 많아서 잠을 못 잘 지경이었는데, 참다못한 강감찬 장군이 벌떡 일어나 '모기들아! 썩 꺼져라!' 호통을 치자 모기가 모두 사라졌다는, 그야말로 신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은행나무까지는 800m 산 속 오르막길을 걸어야 합니다. 길 초입은 대나무 숲으로 이어집니다. 양편으로 곧게 솟은 대나무들이 마치 호위 무사 같습니다. 대밭을 지나면 문득 주위 풍경이 탁 트입니다. 햇살이 와르르 쏟아져서 눈을 가늘게 뜨고 걷습니다. 계곡물 소리만 아득하게 들리는 산길, 간혹 까마귀 떼 소리에 정적이 깨집니다. 눈 아래 계곡을 따라 계단식 논과 함께 펼쳐진 마을은 이제 겨우 점심때가 지났을 뿐인데 산그늘이 짙습니다. 시골 공용버스 한 대가 조용히 들어와 차를 돌립니다.
한여름 우거졌을 덩굴들이 만지면 부스러질 듯 바짝 마른 채 늘어져 있습니다. 그 옆 양지바른 곳에 외롭게 무덤 하나가 겨우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건너편으로 정개상과 두방산 산자락이 선명해집니다. 세 번째 대숲을 지나면 굽잇길 너머 예사롭지 않은 가지들이 허공에 나타나는데 바로 두양리 은행나무입니다.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합니다만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기에 그다지 큰 감흥은 없죠. 두양리 은행나무는 달랐습니다. 900년이 넘는 나이,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풍채! 나무 끝을 보려면 고개를 쳐들어야 하지만, 마음은 이미 깊이 고개를 숙이고 예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은행나무를 위한 듯 주변이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나무 주변을 찬찬히 거닐며 오래오래 머물렀습니다.
◇두방재와 모한재
두방교에서 2㎞ 거리에 두방재(斗芳齋)가 있습니다. 강민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아까 산 위에서 본 그 산그늘이 진 마을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을 회관을 지나면 곧 '진주 강씨 두방 성지' 표지판이 보입니다. 두방재를 말하는 거지요. 강 장군은 진주 강씨 은열공파 시조입니다. 산 속이지만 제법 주차장이 넓고 주변이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강 장군 영정은 안으로 들어가서도 다시 계단을 올라야 하는 두방영당이란 건물에 있습니다. 두방영당 계단에서 뒤돌아보니 두방재 건물들이 상당히 단정하게 잘 지어진 느낌입니다. 주차장 한편에 강민첨 장군과 그 후손들을 새긴 비석군도 인상적이네요. 진주 강씨 문중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다시 길을 나섭니다. 두방재에서 차로 15분 거리 옥종면 안계리에 모한재(慕寒齋)가 있습니다. 조선 중기 학자인 겸재 하홍도(1593~1666)를 모신 사당입니다. 양지바른 곳에 길쭉하게 들어선 안계마을 지나 산길을 조금 가면 나옵니다. 두방재와 달리 주변은 소박하고 호젓합니다. 건물 자체는 촘촘하고도 위엄 있게 지어져 있습니다. 겸재는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바로 이곳에서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모한이란 이름에는 주자가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을 수양하던 한천정사를 사모한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모한재 앞에도 늠름하고 반듯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도 400년이 넘었네요. 은행나무 아래서 가만히 바로 앞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듣다가 돌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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