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고 정착하는 우리네 삶바닷물 섞인 섬진강과 닮아
강가에 사는 바다 사나이
하동포구에서 보면 섬진강은 이미 강이 아니다. 오랜 골재 채취로 모래가 사라진 자리를 바닷물이 치고 들어와 채웠다. 그래서일까. 하동포구 공원 앞 조그만 어선 선착장에서 만난 황 씨 할아버지(76)는 얼핏 바다 사나이 같기도 했다.
"전에는 여기를 걸어서 강을 건너다니고 그랬어요. 지금은 수심이 한 2m 50㎝ 정도 되겠네. 바닷물이 많이 들어오면 보통 3m 정도는 돼요. 사리 때는 4m까지 올라가요. 여기가 다 재첩 생산지라. 근데 바닷물이 올라오면서 재첩 생산지도 계속 강 위쪽으로 올라가요. 요즘 재첩은 해감(바닷물 찌꺼기)을 많이 빼요. 원래 갯물이 50%, 민물이 50% 정도 돼야 하는데 지금 여기(하동포구)는 갯물이 70% 정도 돼요. 그전에 여기 재첩 말도 못하게 많았어요. 물이 너무 짜니까 많이 죽어요."
객지 사람 품은 하동포구
고향을 묻자 할아버지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신장과 콩팥이 안 좋아 고생을 한다면서도 담배는 끊지 못하겠단다. 오랜 객지 생활이 남긴 버릇이다.
"고향은 이북이래요. 6·25 때 넘어와서 서울·인천 전국에 안 다닌 데가 없어요. 예전에 '하동 장비'란 말이 있었는데, 부산에서 여기(하동포구)까지 장비가 다닐 때 여기로 왔어요. 박정희 시절 병역 기피자 잡으러 다닐 때 피해서 도망왔어요. 결국은 잡혔지요. 잡혀서 두서너 달 유치장에 있었지. 그러고 여기서 결혼도 하고 정착을 했지. 여기서 결혼을 해도 인천 가서 외국 가는 배를 많이 탔어요. 원양 화물선이요."
고향 그리고 재첩 잡이
외국을 떠돌던 그에게 돌아올 곳은 하동뿐이었다. 할아버지에게 하동은 아내의 고향이자 이제 자신의 고향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그 일을 더 못해서 하동으로 왔어요. 하동 와서는 바로 재첩을 채취했어요. 배는 큰 거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작년 가을에 팔았어요. 나이도 많고 그래서 것도 더 못하겠더라고. 요즘 뭐하냐면, 강 위에 하얗게 부표 떠 있죠? 부표 저쪽이 전라도고 이쪽이 경상도예요. 그거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내가 책임지고 있어요. 요즘은 재첩이 돈이 되니까 잘 못하면 칼부림 나요. 날이 더 따뜻해지면 밤에 여기서(선착장 컨테이너) 자면서 도둑놈 지키고 그래요. 밤에도 지켜야 해요. 안 그러면 다른 배가 와서 몰래 재첩 긁어가고 그래요. 잠 못 자요. 밤에 서너 번을 순찰해요. 밥도 여기서 해먹고."
말씨까지 똑 닮은 이웃 동네
경상도와 전라도가 섞인 하동,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섬진강은 고향도 객지의 구분도 섞여버린 황 씨 할아버지의 삶을 닮았다.
"전라도 사람들, 광양 사람들이 하동 장을 자주 봐요. 장날 가면 전라도 사람이 더 많아요. 우리는 늘 들으니까 잘 모르는데. 모느는 사람 오면 전부 전라도 말씨라. 나도 가끔 부산에 가면 사람들이 나보고 전라도 말씨라 그러지 경상도 말씨라고 안 그래요. 하동에 친척이라곤 전혀 없어요. 명절 때가 제일 외롭지요.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요. 이산가족 찾기도 해봤는데, 못 찾았어요. 그래도 살다 보니까 하동에 정착을 했고 여기서 내 인생을 마감하겠지요. 다 그리 저리 살아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