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과 맞닿은 많은 지역 중에서도 하동 사람들은 유난히 강을 끼고 산다. 강을 한껏 품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다. 하동 섬진강이 품은 자산 중에 먹을거리가 많은 이유다. 하동 관광의 출발점인 화개장터, 봄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십리 벚꽃길,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평사리 악양들판과 오랜 내력의 녹차, 모두 하동 섬진강이 껴안은 보물들이다.

봄, 바다에서 피는 꽃 '벚굴'

벚굴은 하동 섬진강의 봄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자라는데 하동지역 섬진강에서만 볼 수 있다. 벚굴이 나오는 시기는 2월에서 5월 초까지다. 양식을 할 수 없어 이 시기 외에는 맛보기 어렵다. 보통 날이 따뜻해지면 속이 차기 시작한다. 그때가 바로 섬진강에 매화가 피고 지고, 벚꽃이 피고 지는 시기다. 이 시기엔 벚굴 껍데기 색깔도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한다. 벚꽃을 닮았다는 소리가 그래서 나오는 거다. 일반적인 굴을 생각하고 벚굴을 본다면 그 크기에 놀랄 것이다. 일반 굴의 5~10배, 최대 30배까지 큰 것도 있다. 채취 후 하루 동안 해감을 빼는데, 바닷물과 민물을 동시에 머금어서 그런지 일반 굴보다 비린 맛도 덜하다. 하동 주민들은 벚굴을 '섬진강에 사는 비아그라', '살아있는 보약'이라고 부른다. 아미노산과 비타민이 풍부해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벚굴은 주로 생으로 먹는다. 하지만 하동 섬진강 주변 전문 식당에 가면 찜이나 구이로도 먹을 수 있다.

크기는 작지만 가치는 작지 않은 조개 '재첩'

재첩은 아주 조그만 조개다. 모래가 많고 진흙이 적당한 강에서 많이 나는데, 섬진강의 끝자락 하동지역이 딱 그런 곳이다. 재첩은 술 많이 먹고 담배 자주 피우는 이들에게 좋은 음식이다. 원래 간장약으로 쓰이던 것이라 한다. 빈혈에도 좋다. 메티오닌과 타우린이란 성분 덕이다. 보통은 부추와 함께 국을 끓여 먹는다. 회로 먹어도 괜찮은데 하동 섬진강 주변 식당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하동 섬진강에서 재첩은 4월 중순에서 10월 정도까지 채취한다. 섬진강에 모래가 많던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강에 들어가 캤는데, 모래가 많이 사라진 요즘은 주로 어선을 이용한다. 현재 하동지역에 재첩 어선은 100척이 넘는다. 어선은 갈고리로 강바닥을 긁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 한여름인 7, 8월에는 재첩 수확을 하지 않는다. 햇살이 뜨거워 끌어올린 재첩이 금방 상해버려서다. 1급수에서만 사는 재첩은 그만큼 민감한 생물이다. 장기 보관할 때도 아주 꽁꽁 얼려야 한다. 그래서 요즘 중국에서 들여오는 재첩은 방부제 처리를 많이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동 섬진강 재첩은 6월이 절정이다.

풍요의 상징 '악양들판'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악양벌판은 섬진강에 맞닿은 곳으로, 주변에서 보기 드문 풍요의 땅이다. 강 쪽을 빼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 들판은 83만여 평(274만 3800㎡)으로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넓이다. 들판 한가운데 부부송이란 소나무는 독특한 매력이다. 악양이란 이름은 중국에 있는 악양에서 따왔다. 중국 악양에는 동정호가 유명한데 이를 따라 하동 악양들판에도 동정호를 만들었다.


근처에 있는 최참판댁 대문간에서 바라보면 너른 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뒷짐을 지고 악양들판을 보고 있자면 박경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만석꾼이라도 된 기분이다. 더욱 압도적인 풍광은 고소성 가는 길목에 있는 전망대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악양들판 대부분과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을 한 장면에 담을 수 있다.

아름다운 길 '십리벚꽃길'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따라 쌍계사로 가는 도로, 5㎞ 정도 되는 이 구간은 벚나무가 성성하게 자라 머리 위로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십리벚꽃길이다. 이 길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위에 든다. 특히 4월 초 벚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전체 100곳의 이 아름다운 길 중에도 단연 1순위로 떠오른다. 이즈음 주말에 십리벚꽃길을 찾는다면 벚꽃만큼이나 많이 북적이는 인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요즘에는 화개천 옆과 상·하행 도로 가운데에 인도를 설치해 걸어다니기 좋도록 해 놓았다. 더 좋은 풍광을 위해서는 화개천 옆보다 도로 가운데 나무데크길을 추천한다. 십리벚꽃길은 낮에도 좋지만, 밤에도 훌륭하다. 어둠을 배경으로 조명을 받은 벚꽃 터널은 오히려 낮보다 환하다.

화합의 상징 '화개장터'

하동군 화개면 화개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옛 시골장터, 하지만 지금은 그저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곳, 조영남의 노래로 영호남 화합의 상징이 된 화개장터. 이전에는 경상도보다 전라도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경상도, 전라도 사람도 아닌 외지인이 더 많은 듯하다.

지난겨울 화재로 큰 피해를 봤다. 조영남을 포함해 각지에서 위로와 격려, 성금이 잇따랐다. 지금은 새로 건물을 지어 재개장했다. 시장 복원 기간 임시 천막에서 장사를 하던 약재 상인들도 모두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전보다 자리가 좁아진 게 조금 불만이다. 새 건물은 기와지붕을 올리고 번듯한 모습이다. '덕분'에 옛 정취는 더욱 사라지고 명실 공히 하동 대표 관광지로 거듭났다. 장터 근처 옛 화개우체국 건물에 들어설 조영남 갤러리 카페도 곧 명소가 될 듯하다.

우리나라 녹차의 시작 '하동녹차'

하동군 화개면 일대는 우리나라 최초 차 재배지로 유명하다. 정확하게는 쌍계사 주변이다. 하동 섬진강을 따라가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다 보면 곳곳에 야생 차밭이 보인다. 특히 봄날 섬진강을 찾는다면, 푸른 차밭 위로 매화나 벚꽃이 드리워져 운치가 있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차문화센터가 있어 하동 녹차 문화와 차 제조 과정을 알 수 있다. 쌍계사에 도착하면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차나무 시배지도 만날 수 있다.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도심마을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있는데 수령을 500년에서 1000년 사이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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