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찰의 의미와 그 배경

전국 사찰 수는 2만 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1987년 제정)'에 따라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을 전통사찰로 지정한다. 2014년 12월 26일 기준으로 전국 전통사찰은 944개다. 경남은 101개로 경북 176개, 전북 113개보다는 적다.

하지만 경남의 사찰은 숫자 이상의 무게가 있다. 역시 우리나라 '3대 사찰'을 빼놓을 수 없겠다. 세 가지 보물이라는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두 개가 경남에 있다. 불보사찰(佛·부처님 진신사리 봉안)인 양산 통도사, 법보사찰(法·부처님 말씀 담은 팔만대장경 보관)인 합천 해인사다. 나머지 하나는 전남 순천에 있는 승보사찰(僧·한국 불교 전통 계승) 송광사다.

오늘날 국내 7개 사찰을 묶어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려는 노력이 진행 중인데, 통도사가 포함돼 있다. 해인사는 1999년 일본 총리가 방문해 팔만대장경에 관심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일본인 관광객이 몰린다. 통도사, 해인사 아닌 곳에 눈 돌려도 부족함이 없다.

김해 장유사·은하사, 하동 칠불사, 밀양 만어사는 '남방전래설'이 담겨 있다. 하동 쌍계사는 불교 음악 발원지이며, 함양 벽송사는 선불교 종가라 불린다. 사천 다솔사는 한국 차 문화 대중화로 상징되며, 산청 대원사는 대표적인 비구니 수행처다.

남해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4대 해수관음 기도처'로 꼽힌다.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라 하여 소원을 빌려는 이들이 몰려든다. 4대 기도처는 양(陽) 기운이 많다는 바위산에 자리하고 있고, 마음을 평온히 하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찰은 본사(本寺), 그에 속해 있거나 떨어져 나온 말사(末寺)가 있다. 조계종 기준으로 전국 25개 본사 가운데 경남은 통도사, 해인사, 쌍계사가 해당한다. 많은 이가 찾는 밀양 표충사가 통도사 말사라는 점은 새롭게 다가온다.

'총림(叢林)'은 승려들의 종합수도장, 즉 교육기관으로 치면 종합대학에 비유된다. 흔히 '8대 총림(조계종)'이라 하는데, 이 역시 경남에 세 곳 있다. 양산 통도사(영축총림), 합천 해인사(해인총림), 순천 송광사(조계총림), 예산 수덕사(덕숭총림), 장성 백양사(고불총림), 그리고 2013년 하동 쌍계사(쌍계총림), 대구 동화사(팔공총림), 부산 범어사(금정총림)가 추가됐다. 총림 최고 어른을 '방장'이라고 하는데, 최근 해인총림은 방장 선출을 놓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한편으로 불교 신자 통계에서도 유의미한 점이 있다. 한국갤럽(조사 전문 기관)이 지난해 조사한 '한국인의 종교 실태'를 보면, 불교신자 비율에서 경남·부산·울산 지역이 42%로 전체 평균 24%보다 월등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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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경남지역에 사찰이 흥하고 신자가 많은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쪽 지역은 불맥이 끊긴 적이 없다.

신라·통일신라시대 권력 중심은 경상도였다. 불교 역시 국가적 지원 속에서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신라 대표적 승려 원효(617∼686)·의상(625∼702)의 주 활동 지역은 이쪽이었다. 오늘날 경남지역 웬만한 사찰은 이 두 승려에 연결고리를 둔다.

고려시대에는 권력 중심에서는 멀어졌지만 명승이 많이 머물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지리적 특성이 언급된다. <경남의 사찰 여행> 저자인 안순형(44)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과 인도 예를 들면 승려들이 농사 안 짓고 얻어먹는 것에 의존합니다. 사찰이 깊은 산 속에 있으면 굶어 죽는 거죠. 수행을 위해 안락한 곳이면서도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접근성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깊은 산과 시내 중간에 자리하는 게 좋죠. 강원도는 산세가 너무 험하고, 경북도 그런 편입니다. 전라도는 평야 지대입니다. 경남은 그 중간으로 사찰이 자리하기 좋은 조건인 거죠. 해인사, 통도사도 조금만 내려오면 평지입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옮겨졌다. 불교를 천시하는 유교 사회에서 그 명맥을 이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조선 후기에는 벽송사, 표충사에 주목할 수 있다. 유명 승려 가운데 벽송사를 거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임진왜란 때 역할을 한 사명대사(1544∼1610)를 모신 표충사에는 국가가 면세권을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성철(1912∼1993)·자운(1911∼1992) 같은 존경받는 스님들이, 6·25 전쟁 때는 위쪽에서 밀려온 승려들이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 경남·부산에 머물렀다.

오늘날은 사찰 주변이 곧 주요 관광지 중 하나다. 특히 양산은 지역명보다 통도사가 더 유명할 정도다. 별도 고속도로 나들목(통도IC)이 있으며, 통도사 말사는 양산에만 19개나 된다. '양산은 곧 통도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양산, 그리고 합천 사람들은 유명한 사찰 때문에 지역 내 다른 자산이 가려지는 것 같다며, 때때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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