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 이야기…항일정신 기려 서원 세우고 제사 모셔, 자허 성관 스님 "일제 일부러 격하"

일제강점기인 1942년 당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은 해인사 사명대사 석장비와 건봉사 사명대사 기적비를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대장이었는데, 일본과 대적한 일화와 전설이 가득한 그야말로 항일정신의 상징이 될 만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밀양에 있는 표충사는 조선시대부터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고, 서원을 세워 그 뜻을 이어왔던 곳이다. 일제는 한일합병 시기부터 이런 표충사를 억누르거나 격하하려고 애썼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표충사에서 총무 소임을 맡은 자허 성관 스님으로부터 이와 관련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자허 스님은 16세 되던 지난 1979년 표충사로 출가했다.

"1911년 일제가 전국 사찰을 정리하려고 사찰령을 내릴 때 표충사에 삼대성사(서산대사·사명대사·기허대사) 사당이 있기에 일부러 통도사 말사로 넣어버렸어요. 사명대사 정신을 말살하려는 거지요.

밀양 사명대사 유적지 내 동상. /경남도민일보 DB

표충사는 한때 암자만 해도 15개가 넘었던 곳이에요. 산세니 건물이니 보면 역시 이 절이 통도사 말사 할 자리가 아니었어요. 일제는 진주, 창원, 마산, 창녕에 흩어진 표충사 말사들을 쪼개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로 나눠 귀속시킵니다. 현재 확실한 것은 사찰령 이전, 사천 다솔사가 표충사 말사였고 진주에 있는 3사 즉, 청곡사, 의곡사, 연화사도 여기 표충사 말사였어요"

현재 이를 증명할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자허 스님은 나름 자신만의 근거를 제시했다.

"여기 산세를 보세요. 지금은 산 이름이 재약산이지만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나온 비문을 보면 이전에는 재악산이라고 돼 있거든요. '악(岳)'자를 쓸 정도로 산군(山群)이 컸어요. 쌍계사보다 더 컸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제는 재악산 주변 봉우리들에 각각 산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산군 자체를 쪼개버렸어요. 그만큼 철저하게 표충사의 사세(寺勢)를 줄여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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