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의 독재부역 근거 요구에 답함…픽션으로 산 역사를 대신하려는 격
지난 칼럼('소설독법과 일부 지역문인들의 기막힌 뽀샵질', 5월 28일 자 10면)에 대해 지역의 원로문인께서 반박(6월 4일 자)을 하셨지요. 반가운 일입니다. 민주주의의 성지 마산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더 말할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진실에 눈 뜨시라'는 말 앞에 꽤나 오랜 시간 생각을 했습니다. '진실' 그렇지요. 이즈음은 정말 진실이란 게 무슨 파충류 이름처럼 읽히는 시대 탓이겠지요. 그래서 먼저 지역의 원로문인께서 하신 말씀부터 인용해야겠습니다. "…(중략)…그래서 그냥 넘어가는 게 좋을 거라는 주변 지인들이 있다. 말 같지 않은 말은 그냥 흘리는 게 상책이고 글 같지 않은 글은 무시하는 게 약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 뒤의 말을 인용하면 더욱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이 3·15 위세에 눌려 아무 반론을 하지 않아서 오늘날까지 노산 선생이 3·15의 반역으로 몰려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는 생각한다"란 말입니다. 역사, 그것도 이 나라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역사를 한 개인의 생각만으로 분석하고 말할 수 있는 건지요. 그리고 감수를 하다니요. 웃기지 않은지요? '말도 되지 않는 픽션으로 산 역사를 대신하려는 어리석음'이란 거지요.
그리고 "3·15와 4·19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을 옹호했다니 이 부분도 증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원로문인에 대한 예우로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밝혀 드려야겠네요. '진실'을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우선 많은 자료 가운데 1960년대와 1970년대 이 나라 잡지를 대표하는 <사상계>와 <뿌리깊은나무>에 실린 글의 일부만 인용해 드리지요. <사상계>를 보면 '부정선거와 예술인의 지성'이란 제목으로 이런 탄식부터 시작됩니다. "41년 전 우리가 독립만세를 절규하던 때 조선인한테는 감히 왜놈들도 행하지 못했던 집단적 총격(銃擊)을 대한민국경찰관이 마산에서 감행하여 젊은 학생들을 죽이기까지 한 이 나라 현실에서 예술가니 문학자니 소설가니 시인이니 하는 위인들이 민족의 마음을 배반하고 가는 곳은 어딘가?" 당시 소설가 김팔봉의 일침이지요. 그는 당시 서울신문을 인용, 이런 내용을 밝히고 있지요. "대구에서 개최되었던 자유당 유세강연회에서는 이은상 씨가 지금 시국을 임진란에 비교하고서 이순신 같은 분이라야 민족을 구하리라… 그리고 그 같은 분은 오직 이 대통령이시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이번 3·15선거에 춤추고 나팔 불고 한 사람은 물론 이은상 김말봉 양씨만이 아니다. …(중략)…사회의 부정을 폭로하고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고 어디까지나 정의와 자유와 진실과 인권을 부르짖으며 민중과 함께 웃고 울고 노래해야 할 예술인들의 본연한 자태는 어떻게 되었는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잡지 <뿌리깊은나무>에도 이은상 관련 글은 있지요. "…(중략) 그러나 이은상 개인의 체험에서는 고향의 배반은 훨씬 더 나중에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일어났다. 우리가 사일구라고 부르는 역사의 저 소용돌이 곧 1960년 3월과 4월에 이 땅에 일어났던 한 줄거리의 민중봉기가 몰고 온 변화가 그것이다. 사일구가 마감되었을 때의 마산 사람들은 그 시절까지 마산의 자랑일 수 있었던 위대한 시인을 잊어버리려고 했다. 이를테면 '성불사의 밤' '가고파' '옛 동산에 올라' 같은 노래의 시가 독재자에게 찬미를 바친 시인의 손에 지어졌고 또 그 시인이 마산에서 태어났음을 부끄럽게 여긴 탓이다. 그래서 한동안 마산 사람의 입에서는 이들 노래가 사라져 있었다."
진실이 이런데도 "우리가 볼 때 노산 선생은 균형을 유지한 문인으로서의 애국적 삶을 살았다고 본다"고 말씀하실는지요? 3·15와 4·19, 5·18정신의 단순한 망각을 넘어 사실 자체에 대한 악의적인 덧칠과 왜곡이 횡행하고 이를 바로잡을 역사교육조차 부실한 오늘, 부디 진정으로 이은상의 문학을 사랑한다면 역사적 과오를 먼저 사죄하는 게 순서가 아닐는지요.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말도 되지 않는 픽션으로 산 역사를 대신하려는 어리석음'은 이은상의 문학마저 죽이는 일이란 걸 왜 모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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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은 <사상계> 창간 7주년 권두언에서 이렇게 썼지요.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부정과 불의에 저항은 못할망정 오히려 야합하여 춤춘 일부 종교가 작가 예술가 교육가 학자들의 추태다. 선거통에 한몫 보자고 지조 없는 예술가들이여 너희 연기를 불사르라. 부정에 항거할 줄 모르는 작가들이여 너의 붓을 꺾으라. 너희들에게 더 바랄 것이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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