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의 정체성은 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유신 무너뜨린 시민정신두고 우둔하다니
조영파 창원부시장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27일 '노산 이은상 시조선집 가고파 출판기념회'에 참석, "마산문학관을 노산문학관으로 바꿔야 마산이 산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데 대해 사과를 한 것이다. 조 부시장은 지난 23일 시청을 방문한 김영만 시비철거대책위 공동대표에게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로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준 건 잘못했다. 앞으로는 (이은상 논란과 관련해) 동조하고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당연한 일이다. 마산역 광장에 설치된 이은상 시비 철거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은 일부 지역문인들이 시대에 편승해 얄팍하게 내놓은 사이비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감수를 맡은 이의 말을 빌리자면 마산시민은 정신이 '우둔해'(?) 읽지 못한다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노산의 그림자. 등장인물들은 이 그림자를 추종하는 일부 지역문인들. 이 그림자를 팔아 돈을 벌지 못하는 마산시민정신이 우둔하다는 전 대학교수이자 평론가를 모셔 등에 업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 아닌가. 마산은 독재를 물리치고 이 나라에 민주주의 불러들인 3·15의거와 부마항쟁의 뜨거운 정신이 살아있는 곳으로, 마산의 정체성은 곧 이 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3·15의거를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규정했던 노산이 마산에 뿌리내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일부 지역문인들이 쓴 사이비소설의 내용은 해괴망측하기 짝이 없다. 노산 이은상의 3·15 폄훼 발언으로 지목되는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는 대목을 "3·15 의거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으로 이 사건이 촉발되었음을 지적한 것"으로 우기며 '노산 선생은 애국지사이며 민족시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얼마나 가당찮은 '뽀샵질'인가. 시비철거대책위의 반박처럼 '마산 사건이 촉발된 근본원인은 무엇으로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당시 김팔봉처럼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선거를 부정하게 치른 까닭이다"라고 답변하지 못한 기회주의자의 그럴듯한 입을 소설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4·19혁명의 단초가 된 3·15의거와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부마항쟁의 숨결이 서린 곳, 이 나라의 역사를 바꾼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 마산에서 과연 나올 수 있는 소설일까.
가당치도 않은 이 사이비소설의 감수를 맡은 윤재근 한양대 명예교수는 "가고파는 마산시민에게 1년에 몇백만 원씩을 갖다 줄 수 있는 상품"이라며 이런 엄청난 상품을 가지고 있으면서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산시민정신이 '우둔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둔할 수도 있겠다. 이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마산은 3·15 정신과 가고파의 서정성을 융합해 잘사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말까지 쏟아진다.
이은상 논란은 마산역 광장에 설치된 시비철거를 둘러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의 대표적 작품인 '가고파'를 상업화해서 시민이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돼먹지 못한 자본논리가 아니다. 해방 이후 한결같이 권력의 편에 섰던 노산이다. 3·15의거와 4·19혁명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을 옹호했으며 박정희의 5·16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는 곧바로 민주공화당 창당 작업에 참여했다. 1972년 10월 유신헌법 제정 이후에는 '유신만이 살 길'이라며 독재정권을 소설처럼 미화하고 찬양했다. 1979년 부마항쟁과 10·26사태가 지난 뒤 박정희 추모시를 썼을 뿐 아니라 1980년 전두환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를 '혼란기에는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호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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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산을 복원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출판기념회장에서 마산시민정신이 우둔하다니! 아무리 시대에 편승한 일부 지역문인들의 얄팍한 사이비소설이라지만 심하지 않은가. 그렇다. 이건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려는 '뽀샵질'일 수밖에 없다. 4·19혁명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의 12·12 군사변란을 불법으로 규정한 사법부의 판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산 이은상의 작품을 좋아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제발, 마산문단에서 방귀깨나 뀌신다는 분들이라면 소설은 그만 쓰시고 역사부터 좀 읽는 게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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