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규탄운동에 도내 문인 드물어…분연히 나서는 학생보다 못한 행태

"지난해 대선이 과거 공작정치 원흉이던 국정원과 새누리당, 경찰이 깊숙이 개입한 '3·15 부정선거' 판박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조합원 대다수가 비정규직과 특수고용 노동자로 이뤄진 민주노총 소속 산별·연맹별 노조 대표 약 20명이 지난 17일 오전 11시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선거개입은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중대 사태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통령 책임을 촉구한다"는 시국선언을 하면서 쏟아낸 말이다. 이들은 "도내 1만 비정규직·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일터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지만 교수·대학생에 이어 고교생까지 진상규명 촉구대열에 참여하는 마당에 더는 침묵하기 어려워 이렇게 뜻을 모았다"고 선언 취지를 설명했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어려운 마당에 눈물겨운 일 아닌가. 조합원 수가 1만여 명에 이르는 이들의 시국선언은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민주주의 근간을 짓밟은 행위이자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뭉갠 행위"에 대한 울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들의 울분이 곧 민주주의의 힘이며, 아직도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라는 말을 모기소리 만하게나마 건넬 수 있는 작은 위안이기도 하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국가정보원 대통령 선거개입 규탄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경남지역 촛불문화제와 함께 대학 민주동문회, 천주교 사제 등으로 각계 시국선언이 확산하고 있다. 도내 3개 대학 민주동문회도 지난 28일 공동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 꽃을 꺾어 짓밟아버린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대선개입을 규탄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경남대학교 동문공동체, 마산대학 용담동우회, 창원대학교 창우회 회원 556명이 참여했다. 이 같은 분노는 지금 어처구니없는 이 나라를 살아내는 민중들의 상식이며, 경남지역 60여 개 시민·사회·노동단체와 야당들이 '국정원 부정선거 규탄 민주 수호 경남시국회의'를 꾸려 지난달부터 창원을 비롯해 도내 곳곳에서 촛불문화제와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산청간디학교 학생들, 변호사, 시·군별 시민단체, 대학 민주동문회에 이어 천주교 사제들도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나섰다. 천주교 마산교구 소속 사제 77명도 지난 29일 국정원 불법선거개입 시국선언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촛불과 함께 타오르는 이즈음의 시국선언 속에 언제 어디서나 이 나라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앞장서던 문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건 경남지역의 심각한 이상 징후가 아닌가. 행여 지난 9일 '빨갱이 타령'으로 얼룩진 이은상 시비 보전 집회에 모여 말도 되지 않는 픽션으로 산 역사를 대신하려는 어리석음에 동참했던 건 아닐까.

지난 칼럼('진실과 추태 사이, 춤추고 나팔 불고'- 7월 2일 자)에서 당시 최고의 잡지인 <사상계>와 <뿌리 깊은 나무> 등의 자료를 통해 진실을 밝혔는데도 말이다. 하긴 진실은커녕 상식마저 통하지 않는 경남문단이며, 문인들의 수준이다.

지난 29일 최근 절필을 선언한 안도현 시인(52·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선택을 지지하고 국정원의 국기문란 행위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한 자리에서도 경남 지역 문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절필이 강요되는 시대, 우리는 함께 싸운다'는 제목의 성명에는 소설가 출신인 이창동 감독, 소설가 박범신·윤흥길·이순원·공선옥 씨, 시인 도종환·정호승, 평론가 염무웅·이명원 씨 등 217명이 서명했지만 경남에서는 두어 명이 고작이다.

   

하긴 아직도 "노산이 3·15 의거에 대해 불합리 불상사라고 한 건 정부와 경찰을 지칭한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하는 문인들이 현재 경남지역문인단체의 장을 대부분 맡고 있거나 원로행세를 하며 헛기침을 하고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겠는가. 그렇다. 이건 뭐 여자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화장품, 바느질 기구, 패물 등의 간단한 물건들을 팔러 다니는 방물장수들도 아니고, 어쩔꼬?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두메산골 산청간디학교 학생들보다 못한 문인들이여. 가엾어서 어쩔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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