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지도자 권력 장악·처단 욕망이
죽음의 역사에도 여전함을 일깨운 12.3

"현재의 삶을 틀 지우고 미래의 삶에 방향을 부여하는 역사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다면 우리는 과거가 만들어온 자장(磁場) 안에서 역사의 수인(囚人)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정수복, 2021)."

이 말은 우리가 역사의 자장을 느끼는 순간마다 섬뜩하게 되살아난다. 과거를 통해 배워야 미래가 있다는 말이 이제는 진부하다고 말하기엔, 우리가 진정 이 말을 절절하게 느끼고 깨닫고 있는가 자문한다면 여전히 너무나 많은 역사의 '반복'을 목격하고 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온 제주 4.3의 봄, 세상은 4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로 시끄럽다. 사람들은 8 대 0 탄핵 인용이 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데에 열을 올리지만, 나는 그 문제가 중요하면서도 중요치 않다고 느낀다. 계엄령이라는 비상식이 난데없이 일상을 침투하며 우리의 일상은 이미 망가졌고, 우리는 현재 내란을 살고 있다. 12.3 내란 사태는 사람들 안에 잠자고 있던 과거의 숱한 계엄과 연이은 학살의 트라우마를 요란하게 깨우는 사건이었다.

나는 이 겨울의 모든 혼란 속에서 4.3의 자장을 느낀다. 대한민국 계엄령의 역사는 4.3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계엄은 4.3 진압을 거부한 군인들의 '여순사건'을 통제하고자 내려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4.3이 발생한 제주에도 계엄령이 선포됐다. 계엄령은 곧 학살의 신호탄과도 같았고, 제주에서 7년여 동안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다.

4.3의 대학살은 제주 사람들을 '빨갱이'라 낙인찍고 '비인간화'했기에 가능했다. 이승만은 군·경과 극우 세력으로 하여금 제주 사람들은 빨갱이들이고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논리를 설득했고, 그것을 자기 신념으로 삼은 이들이 같은 국민을 학살하게 했다. 12.3 계엄이 상기시킨 트라우마는 다름 아닌 누군가를 쉽게 빨갱이와 불순분자로 낙인찍고 함부로 죽일 수 있었던 역사의 트라우마이다. '빨갱이'는 반세기가 훨씬 넘은 한국에서 계엄령의 '반국가 세력'이라는 단어로 부활했다.

그의 계엄 시도는 좌절됐지만, 이후 수차례의 공식적 자기변호로 "계엄은 정당했다"는 논리를 설파한 윤석열은 '자기 세력'을 규합해 내는 데 성공했고, 윤의 체포와 탄핵을 목전에 둔 그들의 위기감이 극단으로 치달아 상대 진영을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증오가 스스럼없이 표출됐다. 내란 시도를 규탄하는 이들을 '빨갱이'라 일컫는 이들이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욕지거리를 하고, 법원을 부수고, 학살의 아픔이 있는 광주에 가 계엄 옹호 집회를 한 이 모든 상황은 4.3을 가능케 했던 학살의 논리가 현재에도 유효함을 보인다.

나에게 12.3은 여전히 이 나라의 지도자에게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계엄을 통해 '처단'하고자 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감히 상상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 욕망이 이 숱한 죽음의 역사를 통해서도 좌절되지 못했다는 것을, 이 나라가 이러한 지도자의 욕망이 여전히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었다는 것을 비참하게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제야 과거의 상흔에 대한 치유를 말하는 와중이었다. 결코, 무고한 피 흘림으로 얼룩진 과거의 자장 속에서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역사를 반복할 수 없다. 이제, 4.4는 4.3에 응답하라.

/백소현 프리랜스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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