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3.15의거 학술 심포지엄

의거 의미·판결문 함의 조명
이장희 창원대 법학과 교수
"관련자 처벌 실질적으로 실패
헌정 파괴 범죄에도 승승장구
그 틈타 5.16쿠데타 세력 준동"
윤 대통령 12.3 내란 사태 개탄
내란죄 사면 금지 등 목소리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시민 다수는 이승만 정권이 휘두른 몽둥이와 총탄에 목숨을 잃거나,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렇지만 이들을 해한 가해 주체 대부분은 충분한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독재정권이 몰락하고 6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찬가지다. 가해자 상당수는 벌을 받기는커녕 사죄 뜻조차 밝히지 않았다.

5월 26일 조사 종료를 앞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3.15의거를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3.15의거 65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3.15의거의 현대적 의미'다. 참석자들은 3.15의거 의미와 부정선거 가담자 법원 판결문이 지닌 함의를 조명했다. 이와 함께 반복되는 내란의 역사를 성토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3.15의거 65주년 기념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진실화해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3.15의거 65주년 기념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진실화해위원회

◇부정선거 관련자 형사처벌 실패 = 발제자로 나선 이장희 국립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과거 부정선거가 그야말로 조직적이고 노골적으로 자행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승만이 민심에 못 이겨 4월 26일 사퇴를 선언하고 5월 29일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뒤로도, 3.15부정선거 관련자 처벌 진척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특별재판소에서 총 103건, 피고인 263명을 상대로 한 재판과 수사가 있었지만, 5.16쿠데타 발발로 중단됐습니다. 1961년 박정희는 장도영(육군참모총장)을 앞세워 제2공화국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국가기구 일체 기능을 군사혁명위원회에서 집행하도록 했어요. 이후 군사혁명위원회를 개칭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제정했고,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에 따라 기존 특별재판소및특별검찰부조직법을 폐지했습니다. 대신 혁명재판소에서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위반죄를 재판하도록 했어요. 혁명재판소는 특별재판소에서 진행 중이던 모든 공판을 중단시켰습니다."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도 주요 책임자에 한정해 총 41건, 111명 혐의자에 대한 재판만 처리했다. 3.15부정선거 관련자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수형 관계 자료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유일하게 사형을 선고받아 집행된 최인규 내무부 장관을 제외하면 그랬다. 그나마도 이강학 내무부 치안국장이나 발포 책임자 박종표 마산경찰서 경비주임과 자유당 총무부장 박용익 등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나머지 15년 이하 유기징역형을 받은 수형자들과 더불어 1963년 5월 15일 자로 대거 사면됐다. 대부분이 면죄부를 얻어 과거를 털어냈다.

"혁명재판소는 당시 3.15부정선거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 법 감정을 외면하기 어려운 처지였지만, 미흡한 처벌이라는 결과를 남겼어요. 게다가 박정희 정권은 3.15부정선거 관련자들을 대거 사면하고 공직에 다시 임용했습니다.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 계승이라는 헌법적 정의 요구에 역행한 셈입니다. 민주 헌정을 재차 퇴행시킨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3.15부정선거 관련자 처벌은 실질적으로 실패했고, 오히려 헌정 파괴 범죄에도 살아남아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이장희 창원대학교 교수가 '3.15 부정선거 판결문의 현대적 함의'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이장희 창원대학교 교수가 '3.15 부정선거 판결문의 현대적 함의'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면죄부 그 끝은 어디까지 = 손석래 마산경찰서장은 3.15부정선거 직후 도주해 8년간 도피 생활 끝에 국가에 재봉사할 기회를 얻겠다며 1968년 8월 27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자수했다. 그는 1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마산시청 정문에서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박종표에게 시위 군중을 향한 최루탄 발사를 지휘하고, 그중 1탄이 김주열 안면에 박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피고인 손석래에게 인명 살상 고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 났다.

다만 법원은 피고인 손석래가 마산시청 일대와 마산경찰서 남성동파출소 일대에서 시위대를 강제 해산할 것을 기도해 부하 경찰관 등에게 총기 사용을 허한 사실은 인정했다. 실탄 발사에 따른 시위군중 살인미수도 인정했다. 그렇지만 법원은 "피고인이 본건 이후 사회에서 격리된 은신 도피 생활하면서 한창 일할 수 있는 인생의 황금 기간을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구금 생활 못지않은 고통과 불안 속에 지낸 데다 자수한 사실이 있다"며 징역 3년 6월형을 내렸다.

손 서장은 뒤이은 재판에서 파출소 주임 김종복으로부터 위와 같은 보고를 받은 일도 없고, 또 동인에게 발포할 것을 명령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발포 명령이 있었을 때는 마산시청 경비에 여념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법원은 손 서장 주장을 받아들여 살인미수 부분 무죄를 선고했다. 끝내 상고가 기각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반면 서득룡 부산지검 마산지청장은 3.15부정선거 직후 도주했다가 11년이 지난 1971년 대구지방검찰청에 자수했다. 1심 재판부는 11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 죄책으로 행복한 가정생활과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한 데다, 사회에서 격리된 은신 도피로 고통을 겪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서 지청장에게 징역 4년만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발포 지휘 관련해 '예비음모' 적용을 놓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허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는 검사 상고가 기각되면서 최종 확정됐다.

1960년 3.15 부정선거 규탄 전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60년 3.15 부정선거 규탄 전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내란 역사 청산 실패 대가는 헌정 파괴 반복 = 이 교수는 3.15부정선거가 본질상 내란 행위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또 관련자 형사처벌이 충분하지 않은 결과 5.16쿠데타의 발발을 막지 못했고, 제2공화국의 헌정이 무너졌다고 강조했다. 최인규 내무부 장관과 한희석 자유당 기획위원 정도가 사형 판결받았지만, 대부분이 5.16쿠데타 이후 형벌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으며, 사면받은 자도 많고, 심지어 10년 넘게 도피하다 유신체제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자도 있다고 밝혔다.

"만약 3.15부정선거 관련자들에게 엄정한 내란죄 처벌이 곧바로 이루어졌다면, 과연 박정희의 군인들이 사회적 혼란을 구실로 감히 5.16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질문에 진지하게 답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15부정선거에 대한 내란 처벌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5.16쿠데타 세력이 그 틈을 타고 다시 준동한 것이 아닐까요? 법원 판결은 확정돼 모든 사건이 종결됐지만, 그렇다고 모든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습니다. 역사의 법정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진실을 확인하고 정의를 회복·유지하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교수는 3.15부정선거 영향으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엄정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이 닦였다는 점도 거론했다. "오랜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지금은 세계가 칭송하는 'K선거관리' 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3.15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으로 얻은 소중한 제도적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 당일 마산시 남성동 파출소 앞 사거리의 어수선한 모습. 땅바닥에 서류 무더기가 흩뿌려져 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 당일 마산시 남성동 파출소 앞 사거리의 어수선한 모습. 땅바닥에 서류 무더기가 흩뿌려져 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엄중 처벌·내란죄 사면 금지 필요 = 3.15부정선거를 내란이라 규정한 이 교수는 12.3 내란 사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선진국 반열에 오른 데다, 세계적으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섰지만, 윤석열 대통령 12.3 비상계엄으로 온 나라가 헌정 위기에 빠져들었다고 개탄했다. 또한 과거 내란의 역사에 비춰볼 때 이 사건에서도 엄정한 형사처벌, 그리고 내란죄 사면 금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 1980년 5.17쿠데타를 저지른 전두환과 노태우는 역사상 처음으로 내란죄로 기소되면서 마침내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중요한 선례를 얻었으나, 그마저도 1997년 사면되고 말았습니다. 국헌 문란의 내란 행위, 헌정 파괴 행위에 대한 미온적 처벌과 사면은 미래에 또 다른 헌정 파괴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란 등 헌정 파괴행위에 대해 엄중히 처벌하고, 탄핵·정당해산 등 헌법수호 장치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특히 '국민의 헌법수호 의지'는 민주주의 헌법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3.15부정선거 관련자에 대한 특별재판소와 혁명재판소의 판결은 나름의 성과도 있었고 또 절반의 진실이라도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그 나머지 진실을 계속하여 밝혀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의에 저항한 4.19민주이념 계승, 즉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의 헌법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 진실의 확인과 불의의 청산 노력을 통해 가능합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진실화해위원회와 3.15의거 진상규명'을 주제로 발제했고, 이은진 경남대 명예교수와 권혁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이 토론에 참여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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