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해안별신굿 기록한 앨범〈넋 노래 정영만〉발매
"굿은 그리움에서 시작해 조상과 자연을 믿는 종교"
미신이라 핍박 받던 시절에도 지켜온 전통
"제자들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파"
300년을 이어온 남해안별신굿을 최초로 담은 앨범 <넋 노래 정영만>이 세상에 나왔다. 남해안별신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2-4호로 지정된 우리 지역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현재 통영에서 활동하는 정영만(67) 선생이 예능보유자다. 지난 16일 통영예능전수관에서 정영만 선생을 만나 대를 이으며 지켜온 굿과 그의 삶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별신굿은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는 굿을 말한다. 남해안별신굿 하면 거제·통영·남해를 중심으로 매년 음력 정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제의다. 부산, 전라도 여수 같은 남해안 지역에서도 행해졌다. 현재는 거제 죽림마을, 통영 죽도마을에서 2년에 한 번씩, 통영 사량도 양지리 능양마을에서 10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린다. 별신굿이 열리면 마을이 축제 분위기가 되는데 옛날에는 4박 5일, 길면 7박 8일까지도 이어졌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주로 1박 2일로 진행된다. 주민들은 이 굿을 "개(바다)를 먹인다"고 불렀다. 바다가 평화롭고 풍요롭길 비는 굿이기 때문이다. 동해안 지역에서도 별신굿 전통이 있다. 동해안별신굿이 타악기 위주라면 남해안별신굿은 주로 향피리 2, 대금, 해금, 장구, 북 등 삼현육각으로 구성되고 또 즉흥 연주인 시나위로 진행된다. 그래서 마을굿이 아니라 더러 일반 공연으로 열리기도 한다.
◇삶의 자양분이 된 소리들 = 앨범 <넋 노래 정영만>에선 정 선생과 이수자들이 함께 남해안별신굿의 노래와 음악을 들려준다. 한국문화재재단이 기획·제작하고 (사)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가 후원한 이 앨범은 전체 10곡 1시간 38분 길이로 구성됐다. 크게 1부 넋을 불러 신을 청한다와 2부 혼을 불러 흥을 청한다로 구성됐다. 1부 제목을 신청(神廳)이라 붙였는데, 이는 옛날 굿과 음악을 가르치던 일종의 전통예술학교였다. 2부 제목은 산수계(山水契)인데 이는 '통영 신청'을 중심으로 모인 세습무계 모임을 일컫는다. 이렇게 제목을 붙인 것은 신청과 산수계가 정영만 선생 삶과 음악에 큰 양분이 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1부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해원시키는 음악인 '불림', 예와 격식을 갖춰 굿 시작을 알리는 '통영삼현육각 중 길군악', 남해안 굿을 대표하는 '선왕풀이', 굿 마지막 부분에 연주하는 '수부 시나위', 통영 신청에서 전승돼 온 풍류 음악 '통영 삼현육각 중 영남대풍류' 5곡을 담았다. 2부에는 굿 반주음악인 시나위에서 비롯된 산조를 살린 '굿산조', 모든 액운을 바다에 띄워 보낸다는 의미가 담긴 '가래소리', 정영만 선생만의 시나위 가락 '구음시나위',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은 '망향', 상례를 치르는 소리 '상여소리' 5곡이 실렸다.
◇무당이라 핍박받던 시절 = 남해안별신굿은 1981년 문화재연구소라는 곳에서 풍어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기 전까지는 전승이 끊긴 것으로 인식이 될 만큼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연구소 조사를 통해서 거제도,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등에서 별신굿이 행해지는 것이 알려졌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정영만 선생의 스승인 정모연(무녀) 선생이 초대 예능보유자다. 당시 박복률, 배중렬 그리고 2대 예능보유자가 되는 고주옥(악사) 선생 등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타계하면서 정영만 선생이 예능보유자를 이어받아 현재 활발한 전승과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정영만 선생은 세 살 때 무악을 배우는 신청에 건네졌다. 여덟 살 되던 해에 그는 굿판에서 '피리 부는 새끼무당'으로 소문났다. 그만큼 정 선생에게 굿은 태어나자마자 정해진 운명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당의 길은 쉽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던 시점 정부와 언론은 굿을 미신으로 치부했다. 거기에 기독교인들까지 힘을 더해 무당 차별에 나섰다. 기독교인들에게 무당집 아들이란 이유로 왼쪽 귀를 잃을 때까지 얻어 맞기도 했다. 정 선생은 본디 종교란 사람들을 편하게 해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종교를 빌미로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여긴다. 그에게는 전통이자 역사인 굿이 미신으로 전락하고 천시된 사실은, 종교를 이용해 이익을 챙겼던 권력에 자신의 삶이 희생된 결과다.
◇그리움에서 시작한 종교 = 정 선생은 굿을 그리움에서 시작되는 종교라 설명했다. 기독교는 사랑을, 불교는 자비를 이야기한다면 무당은 정을 노래한다. 굿은 다시 말해 조상을 믿는 행위다. 조상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민족정신을 믿는다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힘든 일이 생길 때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 나 좀 도와줘. 나 좀 잘 지켜봐 줘.' 하고 기원하게 된다. 이 마음이 굿의 시작이다. 죽은 자를 기리며 산 자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고, 삶의 길을 새롭게 열어주는 게 바로 굿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결국 굿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또, 굿은 자연을 숭배한다. 당산나무를 예로 들 수 있다. 과거 당산나무에는 아무나 접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무는 몇백 년을 살아있을 수 있다.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가 대두된 오늘날 생태 감수성이란 말이 유행처럼 떠돌고 있다. 굿은 이미 5000년 전부터 자연을 아끼며, 자연과 생명에 깃든 혼을 섬겨왔다. 그래서 굿은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의 종합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대사산이에게 남은 숙제 = 현재 정 선생은 남해안별신굿 '대사산이'를 맡고 있다. 굿판을 주도하는 이들은 지모(무녀)와 산이(악사)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대사산이(큰 악사)는 굿을 전반적으로 관장하고 지모와 산이를 길러내는 스승으로 따르는 이들에게 큰 산과 같은 어른이 돼줘야 한다. 항상 모범을 보이고 똑바로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는 이런 역할을 해낼 역량이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고 한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벌써 대를 잇고 있는 세 명의 자식을 비롯해 이수자 17명이 그를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굿은 크게 신병을 앓아 내림굿을 받은 후 신이 실리는 강신무와 무업을 배우거나 대물림하는 세습무로 나뉜다. 정영만 선생 일가는 현재 영남권에서 유일하게 세습무 전통을 잇고 있기도 하다.
정 선생은 제자들을 보면 대견하고 보물 같다고 했다. 앞으로 제자들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그에게 남은 숙제다.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람들이 무악과 우리 정신을 제대로 알게끔 만들려 합니다. 우리가 설 자리,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과 같은 기회도 늘어나야겠죠. 사실 저는 문화를 지키는 파수꾼일 뿐입니다. 저를 과시하고 싶은 욕심 같은 건 없어요. 다만, 굿에 대한 편견이 더욱 없어지고 남해안별신굿이 대중들에게 친근히 다가설 수 있길 바랍니다."
정영만 선생은 굿을 할 땐, 자신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온 정성을 다해 굿에 참여한 사람의 안위와 평화를 염원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은 굿할 때뿐만 아니라 정영만 대사산이 자기 삶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백솔빈 기자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