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등 공공기관을 당사자로 하는 건설공사에서 원도급업체의 체불 등으로부터 하도급업체를 보호하고자 시행해오고 있는 '하도급지킴이' 제도가 해군교육사령부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 감사 등 상급기관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군교육사령부(이하 해교사)가 원·하도급사 대금 지급 흐름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등 하도급지킴이 역할을 해야 함에도 이를 방치한 탓에 한 하도급사 공사 대금이 떼일 위기다.
◇준 사람 있는데 받은 사람 없어 = 교육사는 2021년 진주 소재 ㄱ 종합건설사와 '해군부사관후보생 교육관 시설공사' 원도급 계약(68억 7900만 원)을 맺었다. 완공 시점은 2023년 5월이었는데, 추가 계약으로 9월 30일까지 연장됐다. 교육관 공사가 막바지던 올해, ㄱ사는 창원 소재 ㄴ 전문건설사와 교육관 내 '정신전력전시관' 하도급 공사 계약(3억 6300만 원)을 맺었다.
ㄴ사는 5월 22일 공사 선급금으로 ㄱ사에서 8000만 원을 받았고, 9월 1일 교육사에서 7828만 원을 직접 받았다. 9월 지급분은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에서 원도급사 기성금 지급이 늦어지자, 발주처·원하도급사 3자간 '직불합의계약'을 맺고 나서 받은 대금이다. 미지급 금액은 2억여 원이다.
원·하도급사가 주고받은 공문을 보면, ㄴ사는 9월 25일 발주처·원도급사 감독관 입회하에 준공 검사를 받았으니 미지급 대금 2억여 원과 추가금액을 정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ㄱ사는 아직 발주처에서 준공금을 받지 못했고, 하도급공사 준공신청 서류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지체상금(공사 지연에 따른 배상금)을 청구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그런데 해교사·국방시설본부에 확인한 결과, 해교사는 9월 12일 자로 ㄱ사에 교육관 공사대금 전액을 기성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남은 금액은 소액의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조정(에스컬레이션) 금액'뿐이다. 원도급사는 대금을 받았는데, 하도급사는 실제 공사비는커녕 계약상 정당한 대금도 못 받은 셈이다. 현재 ㄴ사는 공사에 동원된 노동자 임금도 지급하지 못해 항의를 받고 있다.
게다가 해교사는 9월 26일 교육관 본 공사 준공검사까지 마쳤다. 하도급사가 교육관 내 전시관 준공검사를 받았다고 주장한 다음 날이다. 즉, 발주처가 전체 준공검사를 마쳤다는데 원도급사는 하도급사 준공을 인정 안 해주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스템 활용커녕 미지급 사태 유발 = 발주처인 해교사는 이러한 상황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다. 공사 대금청구·입금이 모두 조달청 '하도급지킴이' 시스템에서 진행된 까닭이다.
시스템에서 발주처는 원도급 청구 내역에 붙은 하도급사 청구 내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하도급 간 계약 금액과 잔액에 비춰 청구 적절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발주처는 원도급사가 하도급사 몫을 마음대로 빼 갈 수 없도록 통장을 구분해 지급한다.
해교사가 9월 12일 ㄱ사에 남은 공사대금을 입금할 때도 청구 내역 확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당시 청구 내역에 ㄱ사와 다른 하도급사 몫은 반영돼 있었지만, ㄴ사 몫은 없었다. 시스템에서 지급 청구는 하도급-원도급-발주처 순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ㄱ사가 ㄴ사에 알리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해교사에 지급을 청구해버려서다. ㄴ사가 3자 직불합의계약을 맺은 이유는 대금 지급 지연을 우려해서였지만, 교육사가 ㄱ사에 남은 대금을 모두 줘버린 시점에서 이미 소용없어졌다.
국토부 '전자조달시스템 등을 통한 공사대금의 청구 및 지급 등에 관한 고시'를 보면, 발주자는 수급인이 공사대금을 구분 청구하지 않거나 누락할 경우, 청구 내용을 보완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조달청 하도급지킴이 교육 자료에도 '원도급 청구 내역에 하도급 청구 내역이 빠져 있으면 청구를 반려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해교사는 ㄴ사 미지급금이 빠진 부적절한 청구라는 점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원·하도급 계약 금액에서 이미 지급된 금액을 빼면 간단히 계산된다.
조달청 전자조달기획과 관계자는 "원도급사가 하도급사와 맺은 계약금액·하도급률은 모두 발주처에 통보하게 돼 있고, 하도급지킴이 시스템에도 등록된다"라며 "발주처는 당연히 그 비율대로 지급되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부주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구하는 대로 지급할 거라면 하도급지킴이 시스템을 굳이 쓸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발주 업무 이원화, 유기적 소통 안돼 = 하도급지킴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데는 군부대 특유의 발주 업무 분담 체계도 한몫했다. 이 공사 발주처 업무를 수행한 기관은 해교사와 국방시설본부 두 곳이다. 현장 감독, 준공검사, 자금 집행 등 실무는 국방시설본부 경상시설단이, 교육사는 계약 체결과 하도급지킴이 시스템 승인·집행 결재 등 행정 업무를 분담했다.
보통의 공공기관처럼 한 곳에 발주 업무가 집중돼 있다면, 굳이 시스템상으로 일일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지급 내역에서 ㄴ사 몫이 빠졌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다. 현장 감독, 준공검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도급 업체 수, 기성 상황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다.
결국 국방시설본부와 해교사 간의 사유로 하도급업체 피해를 막지못한 셈이다.
해교사 측은 "해당 하도급사는 8월 31일 직불대금 청구 이후 추가적인 지급 청구 혹은 공사 수행 내역을 교육사에 보내준 일이 없어, 원도급사에 기성금을 제외한 공사대금을 지급한 것"이라며 "직불청구 계약에 따른 하도급사 지급청구 역시 없었기 때문에 소모되지 않은 대금을 원도급사에 지급한 일은 적법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교사는 물가변동 계약조정 금액을 지급 시, 원도급사가 미지급한 하도급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ㄴ사 측은 "대금 지급 지연 문제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도급지킴이 시스템, 그리고 교육사와의 3자 직불합의가 아니었더라면 공사를 진작 중단했을 것"이라며 "원도급사가 군부대 발주 관리·감독의 허술함을 파고들어 하도급 대금을 떼먹는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피해를 볼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나 국방부 등 관련 부처가 나서 전수조사, 감사 등으로 손대지 않으면 우리 같은 하도급사 피해는 반복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편, ㄱ사는 이 문제 관련 <경남도민일보>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ㄱ사는 문제가 된 공사 이외에도 군 시설 공사 여러 건을 수주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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