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프롤로그: 검증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검찰은 법을 근거로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맡은 기관입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합의한 최소한 정의를 실현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그 엄격함은 안팎이 없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분석한 검찰 예산 집행 자료를 보면 검찰 안에 정의는 없어 보입니다. 검찰은 예산 집행 기준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았고 내역도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검찰 예산은 국민 세금입니다. 하지만 불투명한 예산 오남용 문제는 이 기관의 고질병으로 지적되곤 합니다. 대검찰청은 물론이고 지방검찰청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창원지방검찰청과 5개 지청(마산·진주·통영·밀양·거창지청)에서 예산 집행 자료 3만 장을 받았습니다. 먹칠과 가리기로 낱장만 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자료가 대부분입니다. <경남도민일보>가 2개월 넘게 들고 씨름한 경남지역 검찰의 ‘하얀 장부’를 공개합니다.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이 2017년 사용한 업무추진비 영수증은 시간이 지나 내용 대부분이 휘발돼있었고, 상호명을 가린 먹칠만 남아있었다.

2017년 4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음식점에서 안태근 검찰국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팀 간부와 검찰국 과장에게 돈 봉투를 건넸다. 봉투에는 70만~100만 원이 담겨 있었다. 이 돈은 ‘특수활동비’다. 검찰은 기밀 유지가 필요한 사건을 수사하거나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특수활동비로 분류해 예산을 집행한다.

이 사건으로 말로만 떠돌던 검찰 예산 오남용 문제가 실체로 드러났다. 검찰은 자체 감사를 벌였다. 검찰국 과장은 수사 업무가 없어 기획재정부 지침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검사는 수사 업무를 담당하기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사하는 검사에게 특수활동비는 어떤 용도로 쓰이든 상관없다는 논리였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법무부와 검찰은 2017년 8월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책을 내놨다. 검찰은 투명한 검찰 예산 집행을 약속했다. 그러나 개선책은 기존 지침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현금보다는 카드 사용을 권하고, 증빙서류를 별도 서류철에 보관하라는 수준에서 그쳤다.

 

돈 봉투 만찬 이후, 검찰은 달라졌을까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 3곳은 2019년 11월 검찰을 상대로 예산 집행 세부 내역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공개 대상 예산은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이다.

이들은 검찰 예산 공개가 검찰 개혁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되고 나서 공공기관 정보공개 의무는 강화됐다. 대부분 기관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예산 집행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하지만 검찰은 늘 사각에 존재하려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1심에서 검찰에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문 중(2022년 1월 11일) 

    수사과정에서 소요되는 경비를 공개한다고 해서 곧바로 구체적인 수사활동의 기밀이 유출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들은 이 사건 비공개 심리 과정에서 이 부분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는바, 위와 같은 특수활동비의 일반적인 특성만으로는 이 부분 정보가 공개된다고 해서 향후 수사 업무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행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장애를 줄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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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자료가 없고, 수사 기밀이라면서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고 재판은 3심까지 이어졌다. 3년간 공방 끝에 검찰 예산 집행 자료를 공개하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누구나 검찰 예산 집행 자료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 예산 공개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검찰 예산이 굉장히 불투명하게 집행된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워낙 만만치 않은 집단이라 누구도 집요하게 매달리지 않았었지요. 어려운 소송 과정을 거쳤지만 검찰 같은 권력기관도 정보공개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대법원 확정 판결 직후 행정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이 내놓은 평가다.

<뉴스타파>는 대검찰청 예산 집행 자료를 들여다봤다. 검찰은 달라지지 않았다. 돈 봉투 만찬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오남용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문제는 대부분 자료가 해석이 어려울 정도로 오염된 상태였다.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 영수증의 61%가 백지였으며, 법원 판결과 다르게 업무추진비 카드 전표에서 상호와 시간대를 가리고 공개했다.

2017년 상반기에만 특수활동비 74억 원이 집행됐으나 이 기록이 모두 사라졌다. 매월 거액의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받는 이들도 있었다.

 

공동취재단 결성… 검찰 예산 검증 시작

막연한 숫자들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패턴이 드러났다. 지출 시기나 기간, 규모, 항목 등이 특정 경향을 보이는 숫자로 모이기 시작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숫자는 전국 67개 지방검찰청과 유의미하게 연결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검증 대상을 전국 지방경찰청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이 검토됐다.

<뉴스타파>는 지역언론과 협업으로 전국 검찰 예산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7월 1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리영희홀에서 열린 회의에서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이 구성됐다. <경남도민일보>(경남)를 비롯해 <뉴스민>(대구·경북), <뉴스하다>(인천·경기), <부산MBC>(부산·울산), <충청리뷰>(충북·충남) 등 5개 매체가 공동취재단에 참여했다.

<경남도민일보>는 창원지방검찰청과 5개 지청(마산·진주·통영·밀양·거창지청) 예산 집행 자료 검증을 맡았다.

창원지방검찰청과 5개 지청에 요청한 자료는 2017년 1월~2023년 4월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장부다. 진주지청(7월 13일), 거창지청(7월 17일), 밀양지청(7월 19일), 통영지청(7월 20일), 창원지검·마산지청(7월 21일) 순으로 자료를 넘겨받았다.

검증은 서류 수령 과정부터 진행했다. 자료를 받은 장소에서 A4 용지에 복사한 자료 수천 장을 검수했다. 검찰은 전자파일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일부 기간 자료가 아예 없기도 했다. 지출 의결과 집행, 영수증으로 이어지는 증빙 서류는 상당 부분 정보를 가린 채 부실하게 제공됐다.

창원지방검찰청 2017년 2월 특정업무경비 지출내역 기록부와 영수증 일부.

해독할 수 없는 영수증 복사본은 원본 대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원본도 잉크가 휘발돼 내용을 알 수 없는 사례가 많았다. 법원이 공개하라고 한 내용을 가린 채 보여주면서도 근거를 설명하지 않았다.

부실한 자료에 대한 해명도 피했다. 자료 인계 업무를 맡은 직원도 검찰 예산 지출 구조를 파악하지 못했다. ‘수사 기밀’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남도민일보>는 창원지검과 5개 지청에서 받은 자료를 모두 입력해 전자파일로 만들고 예산 분석을 진행했다. 지방검찰도 예산 오남용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승환 경남도민일보 시민사회부장은 “특수활동비는 현금으로, 업무추진비는 일반 예산으로 전혀 검증받지 않은 채 쓰고 있었다”며 “합리적으로 예산을 쓰는지 확인하고자 가까스로 자료를 받아냈더니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내놨다”고 지적했다.

7월 17일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에 방문해서 받은 검찰 예산 관련 서류를 확인하고 있다(왼쪽 사진). 창원지방검찰청과 5개 지청에서 수령한 서류. /경남도민일보 DB
7월 17일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에 방문해서 받은 검찰 예산 관련 서류를 확인하고 있다(왼쪽 사진). 창원지방검찰청과 5개 지청에서 수령한 서류. /경남도민일보 DB

서류 3만 장에 흩어진 숫자는 2개월 동안 분석을 통해 유의미한 유형을 드러냈다. 이는 창원지방검찰청과 5개 지청이 적지 않은 예산을 불투명하고 무분별하게 집행했다는 단서로 정리될 것이다. 검찰이 내놓은 ‘하얀 장부’는 명확한 기준에 근거해 더욱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시민 감시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당연한 명제가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의 지향점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지역에서도 최고 권력기관인 지방검찰청 예산이 공개된다면 지역사회 민주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며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모든 곳은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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