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호 옆 청동기 전문박물관, 몰 대평유적 유물 전시·관리
농경문화 보여주는 전시품 눈길·야외에 여러 형태 움집 복원
전망 좋아 가족 나들이에 제격…VR 등 아이들 즐길 체험거리도

일상 탈출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도심에서 30여 분만 내달려도 고요한 자연 속에 쉴 곳이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을 돌아가는 덕천강과 경호강이 만나 남강으로 흘러가는 진양호는 초록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평화가 깃든 진양호는 이름만 떠올려도 푸근합니다. 아름다운 풍경 너머 진양호에는 물에 잠긴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까마득한 옛날 우리 조상들의 삶터를 재조명하는 청동기 전문박물관이 있습니다. 진양호에 자리한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이 호수를 따라가는 고즈넉한 길입니다.

진양호 둘레 길은 연둣빛에서 초록을 지나 녹색을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상쾌한 마음에 박물관에 이르자 하늘을 찌를 듯이 뾰족하게 솟은 청동검이 입구에서 먼저 반깁니다. 청동검을 지나면 우리는 모두 연어가 됩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옥 모양 목걸이, 체험의 열쇠 = 박물관에 들어서자 옥 모양의 체험 목걸이를 건네받았습니다. 어떤 체험이 기다릴지 설렘을 안고 전시장이 있는 2층으로 향하는 발길을 발아래에서 붙잡습니다. 청동기 유적이 발견된 진주지역 지도가 타일에 새겨져 발아래를 둘러봅니다.

계단 한쪽, 남쪽은 진양호를 안고 갑니다. 잠시 박물관에 왔다는 사실을 잊게 합니다. 2층에 이르자 전망 좋은 한쪽에 쉬어가기 좋은 쉼터가 발길과 눈길을 먼저 이끕니다. 창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전망에 즐겁게 숨을 고릅니다.

상설전시관으로 향합니다. 마치 신세계로 향하는 듯 검은 벽면 사이로 옅은 황톳빛 네모 기둥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걸음걸음 함께합니다.

▲ 아름다운 풍경 너머 진양호에는 물에 잠긴 마을이 있다.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은 청동기 시대 대평마을을 재조명한다. /김종신 시민기자
▲ 아름다운 풍경 너머 진양호에는 물에 잠긴 마을이 있다.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은 청동기 시대 대평마을을 재조명한다. /김종신 시민기자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간다 = 상설전시관으로 들어서면 가라앉은 비밀을 시작으로 1관 '대평, 그 이전', '실감 영상관', 2관 '풍요, 농경생활', 3관 '기술, 대평공방', 4관 '영원, 무덤과 의례', 증강현실(AR) 드론 관측실, 가상현실(VR) 목공방, '대평의 기억'이 우리를 청동기 시대로 시간 이동을 시켜줍니다.

'가라앉은 비밀'에 들어서자 양 벽면에 물살이 거칠게 우리를 삼킬 듯 밀려옵니다. 물살이 지나자 선사 시대 사람들이 그린 듯한 그림들이 벽면에 가득합니다. 걸음을 옮기자 신석기 시대 집터에서 발견된 '상촌리 14호 옹관' 등 유물들이 눈길을 끕니다. 옹관 내부에서 불에 탄 어른 뼈가 확인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화장해 옹관에 매장하고 집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 글에는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이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새김 덧띠 무늬 토기'가 나옵니다. 토기 입구 바깥쪽 바로 아래에 덧띠라고 하는 점토를 붙이고 위쪽에 사선 무늬를 깊이 새겨 넣은 형태의 토기가 붉은 간 토기와 함께 농경사회로 접어드는 청동기 문화를 엿보게 합니다.

◇'벌거벗은 남자는 누구인가?' = 좀 더 안으로 가자 '벌거벗은 남자는 누구인가?'라는 도발적인 안내문 제목이 붙잡습니다. 보물 제1823호 재현품 농경문 청동기입니다. 농경문 청동기는 폭이 12.8㎝로 아랫부분은 결실돼 남아있지 않지만, 농사짓는 모습과 항아리에 인물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머리 위에 긴 깃털 같은 것을 꽂고 벌거벗은 채 따비로 밭을 일구는 남자와 괭이를 치켜든 인물이 있습니다. 왜 옷을 입지 않고 밭을 가는 모습을 담았을지 궁금합니다. 전시물은 조선시대 선비 유희춘의 문집 <미암선생집> 내용을 소개합니다. 풍년을 기원하고자 함경도나 평안도 등 북쪽지역에서 행해지던 벌거벗고 밭을 가는(나경·裸耕) 세시풍속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감 영상관에 발을 들여놓자 180도 파노라마로 영상이 펼쳐집니다. 하늘을 날아오른 새 날갯짓에 펄럭펄럭 청동기 마을로 향합니다.

▲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상설전시실의 토기 유물.  /김종신 시민기자
▲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상설전시실의 토기 유물. /김종신 시민기자

◇대평마을, 집마다 경계 따로 없이 = 본격적으로 농경 시대로 접어든 청동기 유물들이 두 눈앞에 펼쳐집니다. 원반 형태의 석기 한쪽을 쳐서 만든 오목한 홈이 있는 석기 등이 걸음을 옮기는 전시대에 가득합니다. 돌이 돌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집은 재산 증식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을지 더욱더 궁금하기도 합니다. 기원전 1000년 대평마을은 집마다 경계가 따로 없이 나란히 배치돼 있는데 집의 규모로 보면 서너 가족 정도 모여 살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농경사회의 기본적인 노동 단위인 가족 공동체가 유지된 셈입니다.

농경사회로 진입은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답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수공업품을 생산하는 장인은 물론이고 내부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지배층이 등장합니다.

신비로운 푸른 빛 옥을 만드는 과정 등이 아름답게 재현돼 있습니다. 생산력 증대와 장인의 등장은 마을과 마을 사이 갈등의 씨앗이 되어 외적을 막으려고 목책과 환호, 망루 등을 설치합니다. 대평마을도 많은 노동력으로 내부 면적 4만 4000㎡ 규모의 환호가 만들어진 '청동기 시대 도시'로 변합니다.

▲ 180도 파노라마 영상으로 청동기 시대 대평마을을 보여주는 실감 영상관.  /김종신 시민기자
▲ 180도 파노라마 영상으로 청동기 시대 대평마을을 보여주는 실감 영상관. /김종신 시민기자

◇남강 스타일과 대평 스타일 무덤 = 덩달아 강남 스타일 이전의 남강 스타일과 대평 스타일의 지배층 무덤이 나옵니다. 권력이 무덤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드디어 옥 목걸이를 사용할 기회가 왔습니다. 옥모양 구멍에 맞춰 넣자 안내하는 '호봇'이 나와 비행을 시작합니다. 별을 보며 풍요를 빌었던 대평마을을 찬찬히 둘러보게 합니다.

체험실이 나옵니다. 증강 현실 체험실이지만 이용이 낯섭니다. 안내원이 상세히 설명해줘 체험을 마쳤습니다. 이런 증강 체험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더 반가운 공간이 될 듯합니다. 집을 하나둘씩 만들자 한쪽 벽면에 나만의 청동기 마을이 나옵니다. 마을 이름을 '해찬솔'이라고 지었습니다.

기획전 '별을 보며 풍요를 빌다'는 당시 사람들이 고인돌에 별자리를 새겼던 구멍(성혈)이 재현돼 우리를 별나라로 이끕니다. 생년월일을 입력하자 해당 별자리와 절기를 소개하는 화면이 나옵니다. 관람객이 그린 별이 스크린에서 빛나는 모습이 신비롭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체험 공간일 듯합니다.

박물관을 나와 호숫가로 향하자 탐조대처럼 보였던 초가가 보입니다. 'XR망원경'입니다. 망원경이 향한 곳에서 물에 잠긴 대평마을이 다가옵니다.

◇물에 잠긴 대평마을, 땅 위에 솟았다 = 이제는 땅 위에 재현된 대평마을로 향하는 시간입니다. 목책을 지나자 커다란 토기 탐험 조형물과 당시의 집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지무늬 토기를 본뜬 토기 탐험 전시실에 들어서자 타임머신을 타는 양 시간을 거슬러 갑니다. 청동기 시대의 집으로 향합니다. 먼저 향한 집은 말각방형 움집입니다. 옥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 청동기 주거지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야외 전시장.  /김종신 시민기자
▲ 청동기 주거지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는 야외 전시장. /김종신 시민기자

창고를 지나자 '진주네 집'이 나옵니다.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집인데 청동기 전기에 짧게 유행한 형태라고 합니다. 이웃한 '대평이네 집'으로 향합니다. 대평에서 청동기 시대를 연 사람들이 살던 집입니다. 내부가 150㎡ 이상이고 출입구가 두 곳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호봇이 나와 이곳에서 살았던 대평이와 진주의 삶을 스크린으로 보여줍니다.

움집 밖에서 대평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반깁니다. 목책 옆으로 난 문을 나섭니다. 사람과 신을 연결해주는 새를 형상화한 돌로 만든 솟대가 눈길과 발길을 이끕니다.

무덤들이 주위를 에둘러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 가호동 무덤이 이곳에서 재현돼 삶의 마지막을 배웅합니다.

◇진양호서 과거가 이어진 오늘을 걷다 = 무덤을 지나자 호수가 더욱 가까이 다가옵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전망대가 나옵니다.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갈 듯한 배 앞모양을 한 전망대에서 호수를 구경합니다. 시원한 풍경과 함께 몸과 마음이 개운해집니다.

진양호 넉넉한 품에서 여유를 즐깁니다. 기원전 1000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삶이 물 위로 떠올라 오늘날 우리의 삶이 겹치고 과거가 이어져 오늘을 걷습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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